88만원 세대에게 '놀이'란.

진정으로 놀 수 있는 주체인 '호모 루덴스'에 대한 정의를 20대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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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영(akdong7146)등록 2014.05.29 18:51
필자는 대학교 4학년이다. 또래의 친구들과 알고 지냈던 언니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인턴이나 어시스턴트로 일을 배우고 있는 그들에게 '그 일은 할 만한 일인가'라고 물어보면 대답은 99%가 '아니'였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음에도 그런 대답은 수두룩했으며 나는 그런 대답을 받고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놀면서 사는 삶이란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던지지도 못했다. 서울에 막 상경해 집값으로 수십만 원을 지불하고 밥 먹듯이 이어지는 야근에 지친 그들의 목소리는 '호모 루덴스'라는 단어 자체의 뜻을 이미 잊었을 것이다.

단지 퇴근 후 놀 수 있는 '클럽'이라는 곳에서 고작 남자의 번호를 따고 몸이나 흔들어대는 것에 만족하며 자신을 '가짜 호모 루덴스'라고 치부해 버릴지도 모른다. 과연 나와 그들, 우리들에게 순수한 호모루덴스의 삶이 가능할까.

바야흐로 88만 원 세대이다. 사회 초년생의 초봉은 일정치 않고 임대해야할 집값은 치솟는다. 온전히 내 집도 아닌 곳에 뿌리는 월세는 50만 원을 육박한다. 빚을 권해 신용을 창출하는 대한민국에서 주름이 깊게 파이고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일해도 보장된 삶이란 그림의 떡이다.

이곳에서 우아한 방법으로 늙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돈이라는 도구를 많이 생산해내고 차지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일하고 동료를 넘어서야 한다. 도구를 생산해내기 위해 진화했지만 오히려 도구(돈)에게 지배받기 위해 산다. 시장 경제에 내던지듯 살아가게 된 우리들이 주체를 갖고 자아의 해방을 도울 '놀이'를 찾는 것은 아마 '철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주체라는 사회적 생물이 '호모 루덴스'로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작 이십 몇 년을 살았을 뿐인 나는 완벽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제대로 놀아 보지도 못한 이들에게 현 시대를 사는 사회인으로서 제대로 노는 것에 대해 묻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대한민국의 청소년으로 자라온 표본인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에게는 그러한 물음조차가 우스갯소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늘 주제에 대한 답을 내리려면 논설문을 쓰기 전에 '내가 제대로 놀아보았는가' 혹은 '사회를 배제하고 온전히 즐겨본 적이 있는가' 에 대한 자기질문부터 시작해야한다.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놀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자연스레 확립된 것인지 사회체제 주입으로 완성된 것인지 의심하는 것이 놀이로 가는 첫걸음이 된다.

네이버(사회체제)는 '놀이'와 '일'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일정한 목적달성을 위해 고통을 제약된 상황아래 참여하는 활동은 일이다.'

놀이는 생활상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목적이 없는 활동으로써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활동 이다.'

네이버의 해석은, 일과 놀이가 완전히 분리되는 의미로 전해진다.

하지만 밤낮을 쪼개가며 보이지 않는 내일에 대한 준비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우리들에게는 맞지 않는 결론이다. 일과 놀이가 병행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은 견고해지고 그곳으로 들어갈 준비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우리들에게는 가능한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적 불안 속에 내던져진 20대들에게 '놀이'란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이 멈춰서는 안된다. 놀이에 대한 정의를 단지 '네이버'가 정의한 틀에 맞춰 해석한다면 주체(나)는 영영 '놀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적어도 놀이 앞에서는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에게 포상하는 놀이의 자유를 느껴라. 놀이의 다양성에 집중하여 나만의 놀이를 만들고, 나만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놀이에만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후련한' 놀이를 시행하라는 뜻이다. 후련한 놀이의 예로, 얼마전부터 한국에서 시행된 '컬러런 코리아 페스티벌'을 들 수 있다. 마라톤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면서 특색 있는 마라톤들이 차츰 생겨나는데, 컬러런의 경우는 마라톤을 하는 도중 한 구간에서 서로에게 물감이 든 물총을 쏘아 페인트 범벅이 되게 하는 '뜀박질'이다. 서로의 사회적 체면, 예의는 모두 벗어 던지고 온전히 놀이라는 개념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마라톤으로써, '승화'의 개념이 강하다. 이는 서울이라는 도심 한 복판에서 진행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로써 사회에 속해 있지만 시스템에 위배된다. 그 곳에 속해있는 자들은 언제든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벗어던질 준비가 되어 있지만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을 'color'속에 내던질 뿐이다.

당신은 제대로 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만약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그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 해답은 싹 다 거짓말, 위선이다. '나'가 정신없이 놀이를 즐기고 있는 도중 갑작스레 자신에게 질문해라. 그 해답으로, 'YES'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 행위가 어떤 것이든 당신은 그 순간 진정으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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