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아포리아

왜 꼭 정답과 오답이 있어야 해?

검토 완료

신가영(akdong7146)등록 2014.05.31 17:41
1950년 겨울, 한국 전쟁이 한창인 곳에서 한 이야기가 탄생했다. '웰컴 투 동막골' 이 그 이야기이며, 그곳에서는 이념적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기에 정치적 무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동막골의 이데올로기는 촌장의 이념아래 완성된다.

단지, 마을 사람들이 '배부르게 잘 먹이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표이자 가치이다.

앞서 언급한 이데올로기의 뜻은 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 역사적ㆍ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로, 보통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적 집단이 그들의 사상을 순화시켜 '이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그로 인해 어떠한 '성격'을 띄게 되고 실재를 '초월'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상징하는 표현을 얻기 위해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초월해서 하나의 '어떤 것'으로 정의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약속인 언어로 인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러므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사회적 약속에 의해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언어를 지배하는 사상에게 억압받게 된다. 언어를 사용해서 '어떤 것'을 표현하지만 실재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자연스레 결여되어 있다.

여기서 바로 아포리아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픽션'인 동막골이 어째서 아포리아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포리아의 사전적 의미는 통로나 수단이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하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의미하고, 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두 개의 서로 다른 합리적 의견이 제출될 때 아포리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현대에 둘로 가를 수 없는 논리적 난점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이 해석을 참조에 앞서 던진 물음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동막골은 어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갖지 않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 곳에서는 남과 북의 정치적인 이념을 가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념 때문에 전쟁으로 물든 대한민국 국토에 있는 작은 마을로, 만약 그들을 사회적 지배자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그 작은 마을의 이념마저도 가르고 정답을 매겨야 한다.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의 잣대로 그들을 갈라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그 당시의 사회상으로는 (지금과 다를 바가 없지만) 구축된 사회의 명령에 의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포리아'를 가지고는 상징계의 삶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을 가르려는 자들에게 의해 동막골이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동막골에 불시착한 전쟁병사들은, 동막골을 지킴으로써 한국사회의 사회적 동물로써의 삶을 포기한다. 그들만의 '아포리아'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 한 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사회의 아포리아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옳고 그름을 가르지 않는 자들은 그저 '어정쩡한' 사람으로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다. 당신은 1과 2를 가르려는 사회적 본능을 한 번이라도 의심해본 적 있는가.

우리는 본래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야한다. 완벽히 나뉘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완전히 올바른 답이란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아포리아)을 들여다보고 의심해야 한다.
'상징'되는 모든 것에 물음을 던지자.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