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_원하는 공약이 없거나, 아예 공약이 없거나
선거 전에 스마트폰에 선거 공약 앱을 설치했다. 종종 그 앱을 들여다보면서 친구와 이야기하곤 했다. 교육감 후보 공약이 업로드된 날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이거 좀 읽어보라고, 조희연 후보 찍으라고 설득했다. 엄마는 팔짱을 끼고 물었다. "내가 니네 교수를 찍어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 몇 가지 공약이 마음에 든다면서도 조희연 선생님을 찍기로 결심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편함에 꽂혀있던 선거 공보물을 들고 온 날, 엄마와 앉아 선거 종류별로 공보물을 분류하고 누구를 찍을지 토론을 했다. 작은 단위로 내려올수록 감정적인 이유에서라도 누구를 찍을지 결정할 수 없는 선거였다.
엄마는 후보자 재산과 병역, 전과기록을 꼼꼼하게 봤다. 나는 누군가 잠실 제2롯데월드 지반 붕괴 위험에 대해 조사하거나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공약을 걸었기를 바랐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그런 공약은 없었다. 어차피 안 찍을 생각이면서도 건축 전문가라는 여당 후보의 공약을 꼼꼼하게 들여다본 건 그래서였다. 건축 전문가라면서요.
어떤 후보는 동네 초등학교 지하에 주차장을 짓겠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체육관 짓는다고 한동안 운동장이 공사장이었고 체육관이 완공된 지금은 운동장이 반 토막이다. 그런데 그 밑에 주차장을 또 짓는다고. 어디서 파고 들어가야 할지 답도 안 나오는 그 주변을 뻔히 아는데. 게다가 주차장이 생기면 아동성범죄를 비롯한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될 텐데.
▲ 공약 한 줄 없는 송파구청장 후보 공보물. 따로 사진으로 찍은 후에 앞면/뒷면을 나란히 놓았다.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송파구청장으로서의 공약이 없다. ⓒ 김서정
구청장 선거 공보물에 공약이라고는 한 줄도 쓰지 않은 후보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비판으로 점철된 공보물이었다. 찍어달라는 거야, 말아달라는 거야. 아빠는 화를 냈다. 지독하게 냉소적이어서 투표를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분인데(나는 아직도 아빠가 투표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른다. 죄다 무효표를 만들어놓고 왔대도 믿을 거다.) 공약이 없다는 건 화가 나셨나보다. "선거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경기도 'ㄱ'시 시장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친구는 선거 일주일 전 "원래 선거 일주일 전에 공약 만드는 거야?" 라고 물었다. 나는 'ㄱ'시의 다른 후보가 당선되기를 내심 응원하고 있었다. 친구는 믿을만한 분이 '믿을만한 후보'라고 추천해서 뛰어든 거였다. 씁쓸했다.
친구들 중엔 진보정당 당원인 녀석들이 좀 있었다. 선배 두 사람이 정의당에 있다. 그 나머지는 녹색당이거나 노동당이었다. 선거 2주 전 즈음, 합정역 앞에서 선거운동 하는 노동당 친구들과 마주쳤다. 일행이 있어 서두르느라, 내가 노동당 후보에 투표하기로 맘을 굳혔다는 말을 해주지 못했다. 사실 어차피 그 친구들이 유세를 돕던 후보는 우리 동네 후보도 아니었지만.
선거 직전 주말에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앞에서 '대체 누구를 찍을지 모르겠는' 구의원 선거 후보자의 딸과 조카가 내게 작은 명함을 내밀며 한 표를 부탁했다. '김근태 재단 기획위원'이라는 그 후보의 이력 중 한 줄이 궁금했다. 딸을 붙잡고 물었다. 딸이라서 잘 모른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평범한 선거운동원은 더 모를 거라고, 딸이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뭐라고 설명을 시도하려다 결국 포기하고 "저는 딸이라서 잘 몰라요" 라고 대답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선거 당일_내가 너희를 버린 것이다
선거날 아침에는 오전 10시에 일어났다. 전날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물론 선거의 설렘 따위는 개나 주라고 하라지. 도저히 누굴 찍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공약이 마음에 드는 것도, 후보자 인상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후에도 구청장 후보와 구의원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 11시 좀 넘어서 투표소에 갔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오랜만에 10년 전의 등굣길을 걷는 기분이 아주 묘했다. 등에 자질구레한 물건이 가득 들어있는 백팩까지 매고 걸으니 더 그랬다. 어느 후보가 이 밑에 지하 주차장을 짓겠다던 그 운동장을 오른쪽에 끼고 투표소로 들어갔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1반이었다. 그 때 우리 교실은 지금 도서실이 되어있다. 바로 그 옆 교실이 투표소였다. 2012년 대선 때는 김순자 후보 투표 참관인으로 바로 이 교실 복도쪽 벽에 붙어 앉아서 투표하는 사람들을 지켜봤었다. 그때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온 투표자들이 많았다. 아기들은 기표소 장막 아래로 머리통까지 꼭 다 보이곤 했다. 조그만 팔다리를 휘저으며 투표소를 온통 헤집는 녀석도 있었다.
신분 확인 절차를 밟고 기표소 안으로 들어갔는데 들고 온 짐을 내려놓자 덜컹, 하는 게 고 조그만 녀석들을 생각나게 했다. 녀석들이 조금만 밀어도 휙 넘어질 것 같았다. 기표소를 종이로 만들어 가벼웠다. 이 신형 기표소, 장애인들의 투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거라고 들은 거 같은데. 장애인 투표는 무슨, 휠체어 들어갈 틈도 비좁을 정도로 다닥다닥 세워놓고 무슨 장애인의 투표권을 보장한다는 소린지. 두 번째로 기표소에 들어갈 땐 기표소가 무너질까봐 더 조심했다. 아니, 확 넘어트려줄 걸 그랬나. 어차피 제일 끄트머리에 서 있는 기표소로 들어갔는데.
▲ 신형 기표소 툭 치면 자빠질 듯 가벼웠던 종이로 만든 신형 기표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두 번째 투표용지 배부를 기다리면서 투표확인증 발급을 요청했다. 선거 사무원들이 다소 당황하는 듯 했다.
두 번째 기표소에서 마지막으로 구청장 투표용지를 놓고 계속 생각했다. 아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사람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주구장창 선거철마다 현수막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적 같은 반 누구 아버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구청장 선거에는 기표봉으로 '기권'이라고 문질러버렸다. 실수나 잘못 찍은 것이 아니고 마음에 들지 않아 후보 너희 셋 다 버린 것이라는 걸, 투표용지를 열어보는 누군가는 알아봐주길 바랐다.
투표 후에 투표 확인증을 발급 받았다. 스캔 앱으로 깨끗하게 찍어 스캔한 뒤에 오후나절 짬이 날 때 SNS 계정에 올렸다. 투표확인증 발급을 요청한 사람이 내가 처음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선거 사무원이 심히 정신없으셨던 모양이다. 나를 1992년생이 아니라 192년생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투표확인증 쓰는 것 좀 뚫어지게 쳐다볼 걸. 192까지만 흘낏 보고 무슨 일련번호겠거니 했던 내가 바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투표확인증 1992년을 192년으로 쓰다니....졸지에 적벽대전 시절에 태어난(설마 BC 192년을 써준 건 아니겠지) 녀자가 되었다. 보라, 이것이 장수(長壽)의 위엄. ⓒ 김서정
<!--[if !supportEmptyParas]--> 선거 종료 후_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박원순 재선 빼고
그날 오후는 하루 종일 너무 분주해서 선거는 잊은 채 보냈다. 저녁참에야 녹초가 되어 학교 실습실에 뻗어 있다가, 실습실 대형 TV에 JTBC 인터넷 개표방송 생중계를 풀스크린으로 띄워놓고 보았다. 저녁 내내 실습실에는 과제하는 후배들이 들락거렸다. 8시쯤, SNS 계정에 우리 학교가 지방선거 최대의 피해자라는 농담이 뜨기 시작했다. 조희연 선생님과 이재정 선생님이 각각 서울시 교육감과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될 것이 유력하다고 나돌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선생님들도 조희연, 이재정 두 선생님의 당선을 축하하는 글을 올리셨다. 학교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재정 선생님과는 아주 짧게 마주친 게 전부였다. 학내 문제로 취재할 때였는데, 수업 쉬는시간에 마주친 선생님께 다짜고짜 '어느 과 누구이고 이러쿵저러쿵한 사건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라고 덤볐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해주신 건 물론이고 추가로 더 취재할 것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주셨다. 내가 선생님께 아주 존중받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실습실에 드나드는 후배들은 개표방송을 다들 한 번쯤 쳐다보았지만, 자기 지역 결과만을 궁금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한둘은 자기가 찍은 후보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는 녀석도 있었다. 부산에서는 뒤집힐 듯 뒤집힐 듯 뒤집히지 않아 갑갑했고, 세종에서는 일단 한 번 뒤집은 이춘희 후보가 계속 우위를 지켜 결국 당선되는 걸 보고 매우 의외라고 생각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는 '대형 정치인으로 더 커나갈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나중에 보니 아니나 다를까 선거 사무실 개소식 때 이미 대선 도전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가 있었다.
친구 하나가 SNS에 ' 기도지사 후보 남경필vs김진표'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남경필에 걸었다. 실습실의 후배들은 멋모르고 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김진표를 응원하는 눈치였지만, 사실 김진표는 '차별금지법 철회' 이후로 내 성소수자 친구들의 원수(?)다. 내가 경기도민이 아니라 서울시민이라서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후보에 투표할 수 있다는 게 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남경필의 우위가 뒤집어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여주, 이천, 양평, 포천 등 경기 동부 쌀농사 지역 사람들은 여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나중에 그 지역의 기초선거 개표 결과가 새빨갛게 뜨자 남자애들 몇몇이 신기해했고, 또 한 녀석은 '새빨간' 자기 동네를 '쪽팔려' 했다. 말해줄 걸 그랬다. 괜찮아, 나도 우리 동네가 쪽팔린 걸.
인천 사는 언니가 '인천ㅋㅋㅋ 안상수 똥 치우느라 바빴던 송영길.. 송영길 똥만 치우다 가나..'라고 카톡을 보냈다. '쥐 오줌만큼 표차 줄고 있긴 하던데' 라고 답했다. 언니는 '북부 (표) 풀려봐야 알 듯' 이라고 보냈다. 사실 일단 1만 표 이상 차이가 나면 뒤집기 힘들다는 속설 나도 알았고, 언니도 알았을 거다. 결국 송영길은 정말로 '똥만 치우다 가'게 됐다.
11시 쯤 친구가 '선거 결과 좋으면 술 마시자' 라고 꼬셨다. 넘어갔다. 12시 쯤 학교로 온 친구와 실습실을 나섰다.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포털 사이트를 통해 개표현황을 계속 확인했다. 단독 출마로 당선 확정된 후보들이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1시를 한참 넘겨서야 맥주 캔을 비우고 친구와 '너를 위해 음담패설을 준비했다'고 낄낄거리며 친구 자취방으로 갔다.
아침에 노동당원인 이 친구는 선거 결과가 암담하다고 말했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진보정당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렇게 좌파적 성향이 투철한 것도 아닌지라 그저 그랬다. 박원순 시장이 재선된 것만 좀 기뻤다. 내게는 여러모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선거였다. 선거 분석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선거가 끝났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