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원 일기

검토 완료

한민호(coiw123)등록 2014.06.07 16:06
"민호 씨, 오늘 5시까지 양강중학교! 잊지 않으셨죠?"
시의원 입후보예정자님의 문자였다.
"아 죄송해요. 저 수업이 좀 늦게 끝나서 한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ㅠㅜ"
"오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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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이었다.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짐만 되는 건 아닐까?' '혹시 나 때문에 망하는 거 아냐?'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거운동에 임해야 할까?' 등등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탄 버스는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양강중학교 정류장에 정차했고, 나는 서둘러 회의장소로 향했다. 회의를 하고 있는 장소는 <은행정 책마당>이란 곳으로,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인 <민중의 집>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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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정 책마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선거본부의 뜨거운 회의의 기운이, 약간이지만 늦은 나를 더욱 민망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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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 민호 씨 왔어요? 이리 와요. 저 빼고 다 처음 보는 분들이니 소개부터 합시다. 우선 이쪽 본부장님부터..."
"안녕하세요. 저는 양천구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본부장을 맞게 될 정성욱이라고 합니다."
"저는 양천구 당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선거에서는 사무장과 회계 파트를 맞게 될 이태중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민호 씨는 후보인 저와 함께 직접 선거운동을 하는 수행 팀을 맞아 주실 거고요. 민호 씨와는 우리나라의 정치관계법의 문제점에 대해서 공부하는 모임에서 만난 게 인연이 돼서, 이렇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수행 팀의 한민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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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역구의 전체적인 개요부터 함께 알아봤다. 우리 지역구는 양천구 제4선거구로 신월2동, 신월6동, 신정3동, 신정4동 네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9,358세대, 127,196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예비후보로 등록된 사람은 현직 시의원인 이명영 씨를 포함해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세 명, 새누리당에서 한 명, 통합진보당에서 한 명, 총 다섯 명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쪽은 경선을 통해 조만간 한 후보로 단일화가 될 것이고 우리도 조만간 예비후보 등록을 할 것이니 다른 변수가 없는 한 실질적으로는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통합진보당, 노동당에서 각각 나와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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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양천구의 인구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이유는 뉴타운 때문에 쫓겨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원주민들 다 쫒아내고 일부만 배불리는 뉴타운을 해제하고, 공공개발의 성격을 갖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전환하자는 것에 초점을 맞춰 선거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본부장님, 어때요?"
입후보예정자가 물었다.
"응 그렇지. 그럼 이번 선거 슬로건을 정해야하는데... 이도저도 안 되고 있는 뉴타운은 해제하고, 진정으로 주민을 위하는 도시재생사업으로 가자는 의미를 한 눈에 들어오는 문구 안에 담아야하는데 말이야."
"음... '실패한 뉴타운 해제, 주민 위한 도시재생사업으로' 어때요?"
한참을 고민하던 사무장님이 의견을 냈다.
"뭔가 와 닿지가 않는 것 같아요. 좀 길기도 하고요."
입후보예정자가 답했다.
"그런가요? 그럼 '뉴타운 저격수'와 같이 비유를 들어서 하는 건요?"
"그것도 좀... 이 지역구에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니 좀 진중하게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아예 '내 가족이 행복한 마을 공동체' 뭐 이런 식으로 마을 공동체를 강조하는 건 어때요?"
"아냐. 그래도 우리가 가장 크게 밀고 나갈 공약 '뉴타운 해제'이니 뉴타운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봐. 민호씨는 혹시 뭐 좋은 아이디어 없어요?"
'혹시 이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막 들던 차에 타이밍 좋은 본부장님의 질문이었다.
"음 글쎄요... 축약적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확 와 닿는 문구라면 '뉴타운 떠나고 도시재생 시작'어떨까요?
"오 좋은데요? 아, 그 얘기 듣고 방금 생각난 건데요, 거기서 좀 더 센스있게 바꾸자면 영어 좀 써서 '굿바이 뉴타운 도시재생 스타트'어때요?"
입후보예정자가 테이블을 탁 치며 말했다.
"그건 저도 좋네요. 확 와 닿고, 길지도 않고요.
사무장님도 동의하며 말했다.
"좋아. 나도 찬성이야. 그럼 이걸로 결정하도록 하자고. 이의 있는 사람 없지?
"좋아요." "동의합니다." "저도 찬성."
이렇게 나의 첫 제안에 영감을 얻어서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쓸 대표 슬로건은 <굿바이 뉴타운 도시재생 스타트>로 결정됐다.
"좋아. 그럼 그 슬로건이 들어가야 할 게 뭐 뭐가 있을라나? 선거 사무소 건물에 달 외벽 현수막, 각 동별 현수막, 명함 그리고..."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보낼 공보물, 벽보 그리고 만약에 하게 된다면 문자메시지 정도까지가 되겠네요."
입후보예정자가 덧붙였다.
"그렇겠네. 그럼 거기에 대표 슬로건 이외에 어떤 공약들을 넣어서 주민들에게 다가갈 것인지 얘기를 해보자고. 대표 공약은 뉴타운 반대지만 그거 외에도 두, 세 개는 더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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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뉴타운 해제' 공약 외에도 문용린 교육감 이후 계속 축소될 위험에 놓여있는 혁신학교 축소 반대, 그리고 요즘 한창 불안한 방사능에 대한 안전급식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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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큰 그림을 그리다보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마지막으로 우리 후보가 다른 후보와 어떤 차별화된 이미지로 선거를 치러야할지 고민해보자."
막 11시를 가리킨 시계를 보며 본부장님이 말했다.
"일단 젊죠. 이제 서른이니...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최고 대학을 나왔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인 것 같아요."
사무장님이 대답했다
"글쎄요. 나이는 제가 서른이긴 하지만, 통합진보당 쪽에서 나오는 후보도 서른다섯이라고 하더라고요. 새정치민주연합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후보도 서른아홉이라고 하고... 그냥 젊다는 이유만으로는 그다지 변별력이 없을 것 같아요."
"그건 내 생각도 그렇긴 해. 근데 젊은 후보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유권자들 만나는 건 분명히 이점이 있기도 하거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경선을 통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통합진보당 후보는 지금까지 지역 활동을 했다는 얘기를 못 들어 봤어.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앞으로 선거운동 기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젊다는 이점을 살릴 기회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다른 건 또 뭐 없을까?"
"우리가 밀고 나가야 할 것은 당선되면 하겠다는 분명한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후보들 현수막이나 명함 보세요. "깨끗한 정치"아니면 "성실한 일꾼"이런 식으로 하나마나한 말들 밖에 없어요. 아니, 본인이 성실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는 후보가 어디있냐고요. 우리처럼 "뉴타운 반대", "혁신학교 확대" 이런 식으로 지향점을 확실히 말해줘야지."
갑자기 사무장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쩝 그러게 말이야. 이 쪽, 저 쪽 표 다 받으려고 그러는 거지 뭐. 근데 후보는 초중고 모두 양천구에서 나오지 않았어?"
본부장님이 물었다.
"네. 그건 맞아요. 근데 제가 다시 이사 온지가 얼마 안돼서요."
"그래도 어릴 때 이 지역 출신이라는 메리트는 무시 못 하지. 내 생각엔 명함에 초중고대학까지 다 넣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건 저도 동의해요."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입후보예정자와 사무장님이 차례대로 동의했다.

"이젠 정말 시간이 늦었네. 막차는 타고 가야지. 이걸로 회의를 마치고 이제 본 선거운동까지 한 달도 안 남았으니까 다들 좀 더 신경 쓰자. 혹시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면 바로바로 공유하고."
"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조만간 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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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 후보와 가장 가까이서 함께 선거운동을 하고, 후보가 선거운동 이외에 다른 부분에 대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 선거본부는, 후보를 제외한 선본원이 실질적으로 실무 한명, 수행원인 나 한명, 2명이어서 수행원을 맡은 내가 동선, 일정, 조직, 기획 등등 모든 걸 하는 게 맞긴 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제 막 선거를 시작한 초짜가 무엇을 알겠는가? 물론 프로의 세계에서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처음엔 그냥 후보님을 따라다니면서 명함을 나눠드리는 일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조차 제대로 못했다. 예비 선거운동 기간부터, 선거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2주정도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주는 듯 마는 듯 했던 것 같다.

명함을 받지 않거나, 받자마자 버리는 사람들을 보고 상처도 꽤 받았다. 주민들께 명함을 나눠드리다가 정말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물론 기운을 북돋아주시는 말씀도 많이 들었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약간 관심이 있어 보이는 주민 분께 열심히 공약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을 때였다.
"됐어. 이제 투표 안 할 거야. 어차피 다 거짓말인데 뭐."하시는 말씀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생각했다. '더 열나게 선거운동해서 우리가 당선된 다음, 그게 꼭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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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억에 남는 것은, 명함을 받은 주민 분이 후보님의 이름을 보고 하는 말씀이었다.
"어디 황씨여? 창원 황? 장수 황?"
"아 아닙니다. 저는 평해 황씨입니다..."
"그려? 난 창원 황씨인디, 평해 황씨가 젤로 오래된 황씨의 큰 형 아니여. 열심히 혀라고. 이번에 도와주것구먼."

이런 혈연 외에도, 주민 분들은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잘생긴(?) 우리 후보님에게 나이와 외모에 대한 말씀 혹은 평가을 주로 하셨다. "이젠 젊은 사람들이 해야 돼."라거나 "이쁘게 생겼네. 열심히해봐."라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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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들을 보면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과 공약보다 역시 외모나 학연 등 전체적인 이미지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내놓는 명확한 정책을 철회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재개발로 인해 당장 쫓겨나게 생긴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나, 자녀가 혁신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매우 높은 부모님들은 우리의 공약을 하나하나를 설명할 때마나 귀를 쫑긋 새워주셨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직접적인 당사자인 이런 분들을 제외하면, 다른 분들은 누가 당선이 되든지 정치의 영역이 본인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 거것은 지금까지의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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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본 선거운동 6일 째이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것과 같이, 정치는 현실이다. 인간이 하는 것이다. 정책과 공약보다 유권자들에게는 다른 부분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필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정치가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길로 가는데, 그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유권자'가 문제라고만 말한다면, 우리가 '나라'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유권자'를 바꿀 것인가? 결국엔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정책의 차별화를 보여주고, 그러면서도 호감을 얻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실천으로 인정 받아야한다. 이번 지방선거, 그리고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모든 진보정당들의 약진을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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