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TV가 아니야> 책표지. ⓒ 이윤기
전국의 여러 YMCA에서 일 년에 한 번씩 1주일 TV를 끄고 지내는 미디어 교육을 합니다. 'TV 끄기 운동'을 앞두고 공부 모임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후배가 제목만 보고 추천한 책을 다같이 읽었는데 참으로 해괴하기 이를데 없는 주장을 하는 책이었습니다.
KBS 아나운서와 방송심의위원을 지낸 저자는 오로지 'TV끄기 운동'에 반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해괴하다고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단순히 저자가 'TV끄기 운동'에 반대하기 때문에 해괴하다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TV가 아니야>가 해괴하다는 것은 첫째,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가 터무니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자가 TV가 유해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내놓은 근거는 TV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기가 커지고 있고, TV끄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지만, 그래봐야 "TV보는 사람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 하나 뿐입니다.
그러면서 TV는 부정적인 면이나 무익함보다 긍정적인면과 유익함이 훨씬 많다고 주장할 때도 그 근거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TV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디어가 아니다. 숨 쉬는 공기를 우리가 선택하고 말고가 아닌 것과 같다"라는 어이없는 주장까지 비약합니다. 어떻게 감히 TV 따위를 숨 쉬는 공기에다 비유할 수 있는지 기가막힐 뿐입니다.
반박하자면 TV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은 그 유해함이 짧은 시간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TV가 업둥이라고... 업둥이가 다른 가족을 다 갈라놓은 꼴
저자는 TV가 가족이라는 비유도 늘어놓습니다. 1961년 12월 31일 밤에 저자의 집에 처음 들여온 업둥이(TV)는 얼마지나지 않아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귀염둥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당당한 가족이 되었다. 종이 달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TV가 우리 가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인 이상 골칫덩어리 또는 문제투성이로 손가락질을 받아도 내치거나 추방할 수도 없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애정도 생기고 차라리 마음도 편하다." (본문 중에서)
즉 TV가 가진 폭력성, 음란성, 중독성, 과소비조장, 어린이 경우 비만, 성조숙증 등 온작 문제가 있어도 '가족'이니까 안보기나 끄기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TV가 유해성도 있고, 폭력성도 있고 중독성독 있다는 것을 다 인정하면서도, "문제가 있다가 해서 외면하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억지 논리를 들이댄다는 것입니다. 왜 문제가 있는데, 외면하고 버릴 수 없다는 말인가요? 마약이나 담배처럼 문제가 있으면 금지하고 규제해야 마땅하지요.
그러면서 모든 문제는 TV라는 기기의 문제, 방송이라는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문제'라면서 본질을 왜곡시켜버립니다. TV시청으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폐해는 사람의 문제로 치부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만드는 사람이 잘 만들고, 보는 사람이 잘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만드는 사람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음란하며 시청자를 TV앞에 붙잡아 둘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장논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TV 앞에 붙들어 두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들여 제작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끌려가지 않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TV를 가족처럼 믿으라고... 정권의 나팔수를?
현대인은 가족과 있는 시간보다 TV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길고, 아이들에게는 TV만한 친구도 없고, 노인에게는 TV만한 효자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미 TV는 집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TV 예찬론은 문득 종교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TV는 세상을 담아내는 거대한 그릇이고,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이 세상이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향계이기도 하다. TV는 한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간다." (본문 중에서)
오늘 날 한국사회에서 TV가 과연 이런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저자가 쓴 글을 조금 고쳐서 한국 사회에서 TV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지 비교해 보겠습니다.
"TV는 세상을 선택해서 담아내는 그릇이고, 주로 부자들의 삶을 선택해서 담아냅니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때체로 왜곡해서 비추는 일이 많습니다. 쌍용차해고노동자의 삶이나 밀양 송전탑 주민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가야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세상이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자주, 반복적으로 부자와 권력자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비뚤어진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쓴 TV 예찬론과 필자가 쓴 TV 폐해론,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TV소리를 들으며" 자랐으니 가족처럼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요? 혹세무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처음 이 책을 펼쳐들면, TV의 유해성을 잘 정리해놓은 책으로 착각하기 십상입니다. 그것은 저자가 인용한 TV의 부정적인 측면과 유해성을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자료들 때문입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하루에 2시간 22분 정도 TV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수명을 80년 이라고 하면, 결국 인생의 10%인 대략 8년이라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하루평균 영국은 3시간 39분, 프랑스 3시간 26분, 미국 4시간 31분, 일본 5시간 11분, 이탈리아 3시간 57분, 독일 3시간 31분....이처럼 21세기를 사는 지구인은 다른 어떤 일보다 TV를 보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거나 투자하고 있다."
"전국 15개 시도에 사는 만 10세 이상 남녀 3천명을 대상으로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는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TV시청과 라디오 청취를 경험했다는 응답자 비율이 93%로 가장 높았다."
"미국 TV끄기 네트워크는 미국인 가운데 TV나 영화가 청소년 범죄와 관련있다고 여기는 비율이 735나 된다는 통계를 내놓고 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연구진이) "14세 때 TV시청 시간이 긴 사람일수록 주의력 장애, 학교생활에 대한 싫증과 부정적 태도, 낮은 학업성적, 상급학교로의 진학 시패 등 위험이 높아지는 것과 연관이 있음을 발견했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 "조사결과 평균 이하인 1.9시간 시청하는 어린이는 학사학위를 취득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2.76시간을 시청하는 경우 고등학교 중퇴, 2.5시간은 고등학교 졸업, 2.3시간은 전문대 과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일수록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비만이 많았고, 담배를 일찍 피우기 시작했으며, 성적 경험도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마약 사용이나 음주가 많았으며 학교성적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3시간 이상 TV를 본 10대는 사춘기나 초기 성인 시절에 보다 심각한 주의력과 학습장애를 겪을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주당 시청 시간이 1시간 미만인 사람에 비해, 2시간에서 10시간인 사람은 66%, 21시간 이상 40시간인 사람은 100%, 40시간 이상인 사람은 3배 등으로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TV를 많이보면 사춘기가 빨리 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중략) 그 결과 과도한 TV시청이 체내 맬라토닌 호르몬의 균형을 깨 사춘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TV와 컴퓨터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과 방사선이 멜라토닌 호르몬의 생산을 억제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모두 이 책에 인용된 연구 결과들입니다. 세계 유수의 대학 연구기관과 병원들이 TV의 유해성을 연구하여 그 위험을 입증한 자료들을 내놓 것이지요.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자료를 인용해놓고도 "TV를 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되며 다만 많이 보는 것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또 다시 억지 논리를 펼침니다.
TV, 과연 적게 보는 것이 가능할까요?
억지 논리라고 평가하는 까닭은 시청자가 TV를 적게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저자가 같은 책에서 적나라하게 설명해 놓은 글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시청자가 TV앞을 떠나지 못하고, 더 오랜 시간을 앉아 있도록 몸을 묶어두고 마음을 붙잡기 위한 포박전략을 짜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빠르다. 손님이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사도 그만 사라고 말리지 않는 장사꾼처럼 편성도 TV를 그만 보라고 권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더 많이 보도록 하기 위해 온갖 머리를 굴린다." (본문 중에서)
저자가 쓴 이 글이 바로 TV의 실체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시청자가 손쉽게 TV를 적게 보는 결단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집에 TV를 두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TV끄기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TV를 없애라고 말하는 것도 TV를 곁에 두고 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TV를 보게 하려는 억지스런 주장을 한 가지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TV가 비만의 주범이라는 의사와 교수들의 연구 결과에 대한 저자의 반박입니다.
"이에 대한 최선의 비책은 TV를 보면서도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따라하거나 평소에 살이 찌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몸을 자주 움직여주는 것이다. 찬 단순하고 쉬운 방법이다." (본문 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TV를 안 보는 것입니다. TV보는 시간을 놀이와 운동으로 보내면 간단합니다. 그 보다 더 단순한 방법으로는 TV를 없애는 방법이 있습니다. TV를 없애고 나면 놀이와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TV를 적게 보면 방송국은 지탱할 수 있을까?
이 책은 TV안보기와 TV끄기를 반대하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습니다. 저자의 'TV끄기 무용론'을 종합적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TV끄기와 TV 안보기는 어렵고 고통스럽다. 힘들게 그러지 말고 그냥 TV를 봐라. 이미 세상 사람 대부분은 TV를 가족처럼 여기고 살고 있다. 우리집만 TV를 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며칠 안 본다고 달라지지 않으며, 나 한 사람 안 본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TV 안 본다고 그 시간을 유익하게 보낸다는 보장도 없다." (본문 중에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입니다. 그래봐야 TV가 대세니까 쓸데없이 힘 빼지 말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정말 위험하고 나쁘면 좀 적게 보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꼬드깁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하루 몇 시간을 보면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습니다.
이책에는 하루 2시간 이상 TV를 보는 것이 위험하다는 연구자료가 자주 인용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처럼 사람들이 모두 TV 시청시간을 30분 미만으로 줄이면 TV로 상징되는 방송 시장과 자본, 광고 시장과 자본이 지탱할 수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방송자본과 방송광고 자본은 사람들이 TV에 중독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TV를 적게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TV와 윈윈할 수 있다는 주장도 거짓입니다. 담배를 줄이는 것 보다 차라리 끓는 것이 쉬운 것처럼 TV역시 줄이는 것보다 끊는 것이 훨씬 쉽고 간단한 대안입니다. TV를 끄면 비로소 곁에 있는 가족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한심한 일은 이런 해괴한 책을 내는데 국민이 낸 세금이 지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낼 수 있도록 <한국언론재단>이 저술 지원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지원한 것도 아니고 이 책이 세 번째 지원을 받은 책이라고 당당하게 밝혀놓은 것이 더 놀라웠습니다.
해괴한 논리로 일관된 책이지만, 그래도 쓸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진 TV가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연구 결과물들을 이 책 한 권에 잘 모아놓았습니다.
저자는 TV의 유해성을 많이 인용해 놓고도 극단적인 선택대신 좀 적게 보자는 타협안을 선택하라고 꼬드겼지만, TV안보기와 TV끄기를 주장하는 단체와 개인들에게는 그 위험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알릴 수 있는 자료로 널리 사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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