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과 통폐합,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숙명여대의 무용학과의 시위현장에서 현재 대학사회를 보다-

검토 완료

이형탁(arbitrary1)등록 2014.07.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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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 그곳에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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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대학시절>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기형도가 시를 쓴 때는 1980년대였다. 당시 시민들은 그동안 억압되었던 민주화를 요구했다. 이에 전두환은 군화와 총으로 시민들에게 응답했다. 그 중에 어떤 대학생들은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어떤 대학생들은 거리의 맨 앞에서 시민들의 입이 되었다. 하지만 국가는 그들의 배에 물을 채웠고 머리엔 수류탄을 박았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얘기다. 기형도는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고 한다. 한 세대가 지난 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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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4일 이틀간 숙명여대 근처에서 풍악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이 학교 정문이었다. 최근 국방부장관 후보자 한민구 씨의 딸이 교직원 채용에 있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학교이다. 방학이어서 그런지 학교에 학생들은 적었다. 적은 학생들은 계절학기 수업을 들으러 정문을 통과했고, 그 옆에선 풍악을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풍악은 축제의 소리가 아니라, 항의의 소리였다. 이들은 숙명여대 무용학과 학생들이다. 이들은 재학생, 대학원생, 졸업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제개편을 반대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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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학제개편은 컴퓨터 공학, 나노물리학과 등 총 10개로 이뤄진 이과대학에서 무용학과와 체육교육과를 독립시켜 예술체육 독립학부로 통합하겠다는 게 주 내용이다. 한양대, 세종대와 같은 경우, 예술체육대학이란 단과대학 내에 무용학과와 체육학과가 같이 편제되어 있다.

그러나 숙명여대 경우, 학문적 성격이 전혀 다른 '이과대학'에 무용학과와 체육교육과가 편제되어 있는 실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 측이 내놓은 학제개편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그런데 왜 무용학과 학생들은 학교의 이러한 예체능 독립학부제 추진을 반대하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무용학과 학생C양은 "이번에 학교에서 발표한 학제개편은 학생들의 의견수렴과 토론 없이 몇 명의 체육교육과 교수와 몇 명의 무용과 교수의 비공개적 논의 이후에 학생들에게 결과만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 것이며, 학생의 자치권 또한 빼앗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양은 "체육교육과와 무용학과가 '이과대학'에서 나와 예술체육 독립학부로 개편될 때, 학부 존속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며 "체육교육과는 현재 학과 정원이 30명뿐이 안 되며, 무용학과는 현재 학과 정원이 40명뿐 안 된다. 이렇게 학과 정원에 변화가 없으면 괜찮지만 교육부는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대학구조조정을 시행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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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생들은 무용학과가 '폐과'가 될 수 있을 거란 불안감 때문에 집단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불안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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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대학의 학과 통폐합은 유행이 됐다시피 바람이 불었다. 2011년에 부산의 동아대는 무용과를 폐지했고, 올해 청주대는 사회학과 폐지를 전격 결정했다. 배재대는 연극영화과와 관혁악과를 폐지했고, 동의대는 아예 2015학년도 입시에서 물리학과와 불문과의 학생 모집을 중단했다. 지방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수도권대학도 마찬가지다. 중앙대는 2010년 이래 77개 학과를 46개 학과로 통폐합했고, 동국대는 2011년에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을 통폐합했다.

현재 서일대학은 문예창작과와 연극과 등의 통폐합문제, 상명대는 불어교육과를 경상계열의 국제통상학과로 흡수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추계예대, 국민대, 세종대, 상명대는 예술관련 학과의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종합대학들은 교육부가 지정한 '부실대학'이라는 불명예 리스트에 올랐었다. 여기에 통폐합된 학과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초학문, 예술학문이라는 점이다. 숙명여대 무용학과 학생들의 불안감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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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대학은 통폐합을 하는 걸까? 교육부의 당근과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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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별 정원감축 목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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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주기
1주기('14~'16)
2주기('17~'19)
3주기('20~'22)
감축 목표량
4만명
5만명
7만명
감축 시기
'15∼'17학년도
'18∼'20학년도
'21∼'23학년도

(출처 : 교육부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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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올해 1월에 대학구조 개혁을 발표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앞으로 대학 입학자원이 2023학년도에는 현재의 입학정원보다 16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교육부는 대학 정원 감소가 필수적이라 판단했고, 대학정원을 약 10년간 3주기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감소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제 대학들은 2017년까지 교육부 구조개혁정책에 의거해 시행되는 정원감축에 따라야만 한다. 그런데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정원을 축소하면,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가장학금, 학자금대출, 부실대학 선정 등 여러 가지 교육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에 대학들은 쩔쩔맬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교육부가 지원하는'3대 대학 재정지원사업'으로 꼽히는 대학특성화(CK)사업,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학부교육선도대학(ACE) 육성사업이 5년 동안 2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교육부는 당근과 채찍을 고루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학들은 더욱 학과를 통폐합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중에 대학의 가장 만만한 방법은 취업률이 낮은 음대, 미대와 같은 예술학과와 문학, 사학, 철학과 같은 기초학문인 비인기학과의 정원축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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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성화 사업으로 인한 정원감축 규모(안) ]
구 분
'14년 입학정원
'17년 입학정원
정원감축 규모
수도권
72,806
70,082
(△2,724, 3.7%)
지 방
188,935
172,574
(△16,361, 8.7%)
합 계
261,741
242,656
(△19,085, 7.3%)

(출처 교육부 7월1일)

교육부의 지침에 발맞춰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을 통해 경쟁적으로 정원을 줄이고 있다. 위의 자료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3대 대학 재정지원사업' 중 하나인 지방대학 육성 및 대학 특성화사업안의 결과이다.

여기에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 특성화사업 546억원,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에 2,031억원,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에 2,696억원을 투자키로 했고, 108개의 대학이 특성화사업에 동참하여 대학 정원을 2015년에 2.6%, 2016년 6.0% 단계적으로 감축, 2017년까지 총 1만8천85명(7.3%)를 감축하게 된다. 지방대학은 평균 감축률이 8.7%, 수도권 대학은 3.7%이다. 이로써 대학구조개혁 1주기(2014년~2016년) 목표의 약 75%를 특성화사업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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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통폐합으로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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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이 줄어드는 학령인구 대비나 대학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대학정원 감축이 대학 학과의 통폐합만으로 귀결돼선 안 된다. 특히 기초학문인 인문학이나 예술대학 같은 경우, 교육부가 취업률과 신입생 충원률로 평가하는 방법은 개선되어야만 한다. 또한 그것을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여 재정지원으로 겁박해선 안 된다.

오히려 교육부의 대학평가 기준을 변화시켜야 한다. 대학의 평가 항목에 타 대학들과는 차별화되는 특성화 노력이나 구조조정 노력, 학문과 지식의 균형을 위해 비인기과목이나 기초학문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있는지, 취업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학문 및 교육이라는 대학의 고유 기능을 회복하고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 이런 통폐합 현상은 2023년까지 계속 일어날 것이다.

또한 지방대 약화문제는 교육부에서 재정지원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 시행한 특성화사업은 교육부가 20년 전부터 써왔던 전략이다. 한계가 이미 드러났음에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해결책으로는 프랑스와 같은 국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를 조직해야 한다. 전국의 국공립대학에 공동 학위를 부여함으로써 지역의 인재유출을 막아야만 한다. 이는 교육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수도권 비대화를 줄이는 사회적인 측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경제적인 측면 등 많은 부분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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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정원축소는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 교육부의 정책은 많은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정책의 진행방법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기형도의 <대학시절>처럼 군화와 총칼로 학생들을 짓밟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대학 학과 통폐합 사태는, 30년 전과 지금이 무엇이 다른지 생각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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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처음쓰는 글이라 문제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을 시 arbitrary1@naver.com 로 메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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