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는 삼풍백화점보다 더한 범죄였나

<논픽션 다이어리> 시사회 후기

검토 완료

정광채(eeriekwang)등록 2014.07.10 14:26
2014년 7월 9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씨네코드 선재. 아는 단체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시사회를 갈 수 있었다.

영화는, 3가지 사건, 즉 지존파 사건과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 이후의 사후 대책과 판결에서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음을 규명하고자 했다. 내용의 중심은 지존파 사건 위주이다.

영화의 요지는 이렇다. 확실히 지존파 사건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납치하고, 시체를 불태우고, 이를 암매장하는 등의 끔찍한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고와 비교했을 때, 후자의 두 사건의 책임자는 징역살이만 하고 풀려난 반면, 지존파는 조직원 모두 사형에 처했다. 이는 단순히 가시적인 살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극형에 처했는가?

확실히 본 작품에서는 지존파 사건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다룬다. 사건의 배경인 전라남도 영광군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지역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조직원 개개인의 불우한 성장환경 등.. 확실히 지존파의 살인사건은 악행(惡行)이다. 그러나, 언론보도 미공개 영상 등을 보면, 그들은 너무나 당당하다. 죄목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자백하고 더 이상 숨길것이 없다는 반증(反證)이었다.

오히려 겁을 먹은 것은 사법부(와 정치권력)이었다. 왜 그들은 굳이 지존파를 사형시켜야만 했을까? 작품 중 인터뷰이 중 한명이었던 한완상(前 통일부총리)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민감한 사람이었다. 언론보도에 대해 굉장히 민감했고, 더군다나 차기 대통령으로 김대중이 약속된 상황에서 자기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했고, 결국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이들(지존파)를 '이용했다'.'

그렇다면 삼풍백화점은 더 큰 실수와 행정적 착오(난지도 매립지에서 시체 발견 해프닝) 등 수많은 피해를 양산했음에도 총책임자는 왜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았는가? 영화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다. 한 인터뷰이(김형태 변호사)의 말처럼, '직접적인 살해방식, 즉 근대적인 방법인 둔기나 칼 등으로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적 살인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에 안 처했는지, 문제의식을 품는다.

시점을 1994년에서 현재로 되돌려보자.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배후로 지목된 유병언(前 세모그룹 회장)은 체포를 못하고 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유벙언 일가는 자금줄을 대고 있는 곳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리 검찰/경찰의 수색 일정과 도주로를 누군가가 알려주고 있다는 설이 나돈다. 만약 그가 체포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분노와 희생자의 목숨값에 응당한 처벌을, 사법부가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비록 1997년 이후 실질적 사형집행이 없는 우리나라이지만, 그 차선책으로 무기징역을 내릴 것인지, 아니면 형을 때리고 차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게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집행유예를 내릴 것인지, 사법부의 행보가 궁금하다.

끝으로, 지존파와 복역생활을 하면서 그들과 접촉했던 목사, 수녀, 교도관 등을 인터뷰하여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이들의 내면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존파 조직원들은 참으로 순진했고, 종교를 통해 이들을 교화(敎化)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끝끝내 사법부는 그들을 사형에 처했고, 사형장에서 지존파는 오히려 담담한 자세로 올라갔다고 한다.

영화상영을 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이 적극적이었다. 영상의 내용이나 발언이 관객을 자극시킬만한 것도 있었지만, 내레이션 없는 날것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관객들은 현장에서 몰입하고 판단하고 이것이 분노로 표출되었다. 헛웃음과 비웃음, 그리고 야유와 비난의 목소리까지.. 여지껏 많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지만, 이 정도는 처음이었다.

이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준 자유인문캠프에 감사의 표시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추신. 영화의 끝은 자료화면으로 인용된 ‘KBS 심야토론’의 끝부분이다. 시청자 의견을 받는 중에 부산의 모 대학생이 팩스(FAX)를 보내왔다.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강남의 오렌지족과 야타족, 그리고 지존파로 20대 전체를 매도하지 마라. 대다수의 청년들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대한의 건아다. 본인도 9년동안 한부모 가정이었는데, 살면서 그 흔한 사고 하나 친 적이 없다. 그들과 대다수를 동일시하지 마라.’
글을 읽고 나서 토론의 사회자는 박수를 친다. 나는 순간 그 영상을 보며 화가 났다. 분명 그 당시 팩스를 보낸 대학생은 맞는 말을 했다. 그리고 더 하고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마치 그들을 배척하고 외부인으로서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사회라고는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동정하지는 못할망정, 어떠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그들과 나를 일찍이 벌써부터 격리시켜놓은 것은 아닐까?
영화를 만든 제작진이 왜 이 장면을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시청자와 지금의 내가 비슷한 연배, 그리고 같은 대학생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화가 난다. 마치 기성세대가 원했던 모범답안을 내놓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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