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소설] 검은 모세(Moses the Black) - 시작하기 전에

모세는 유태인을 이끌고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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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warzone)등록 2014.10.21 14:55
2005년에 모세에 대한 소설을 연재하다가 삶의 문제로 인해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뭐, 이제는 기억할 분도 없겠지만요. 그 9년 전의 소설을 드디어 완성해서 다시 연재하려고 합니다. 그때는 액자소설 형식이었지만, 그런 방식이 본문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액자를 없앴습니다. 액자소설에서 말하려고 하는 건 주석을 달아 설명할 것입니다.

10년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했던 예수에 관한 소설을 몇 년 전에 (지금은 문닫은) <야후>에서 재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댓글의 4분의 1은 긍정적인 내용이었지만 반 이상은 본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욕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죠.

성경을 신화라 보는 이들은 성경을 그리스 신화와 동급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내용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반대로, 성경을 절대 경전으로 여기는 사람은 성경과 다른 내용을 참을 수 없어 합니다. 성경을 역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오히려 성경을 역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람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교회를 다녔거나, 혹 유일신을 믿거나, 또는 성경을 위대한 경전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일점 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뺄 수 없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신에 의해 기록된 완벽한 텍스트인 성경을 강조하는 말인데, 정작 이 말이 성경에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아는 일반인은 없습니다. 당연히 성경에 이런 말은 없으니까요.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바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앞부분만을 인용한 말입니다. 성경이 교육용으로 좋다는 말이지, 성경이란 텍스트의 완전함을 말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는 예수께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모세가 야훼께 받은 율법을 말하는 거지, 성경이란 텍스트의 완전무구를 일컫는 게 아닙니다.

신명기에는 야훼께서 내리신 율법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지 말고 온전히 지키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신명기에 이런 명령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은 더하거나 빼는 것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경이란 텍스트 자체의 완벽함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성경 텍스트의 완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기대어 부와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교회에서 목사들이 남한의 원수인 북한을 사랑하라는 얘기를 합니까? 북한은 마귀 사탄이고 마귀 사탄을 사랑하라고 예수께서 말한 적이 없으니까 북한을 증오하도록 부추깁니다. 북한 주민은 사랑하지만 북한 지도자는 증오하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0장의 하늘나라 비유를 압니다. 포도원 주인은 각기 다른 시각에 고용한 다섯 부류의 일꾼들에게 동일한 품삯을 지불합니다. 일한 시간이 얼마든 간에 하늘나라에서의 은상은 동일하다고 비유하지만, 교회 목사들은 헌금이 많을수록 하늘나라의 은상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헌금을 조금 내면 천국에서 월세나 전세에 살게 되고 많이 내면 좋은 집에 산답니다.

성경이란 텍스트에 자기 의도와 맞도록 가감을 행하는 일은 현대의 목사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예수께서 살아있을 당시에 일반 대중들은 율법학자로부터 이웃은 사랑하지만 원수는 미워하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럼 성경에 원수를 미워하란 율법이 존재하는 걸까요? 성경에는 원수를 하느님이 쫓아주거나 흩어 버려 주시지, 원수를 미워하거나 원수를 갚으라는 율법은 없습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는 오히려 원수를 갚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성경의 기록은 신화일까요, 역사일까요? 성경의 기록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를 증명해주는 고고학적인 증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트로이의 목마를 예로 들자면, 하인리히 쉴리만이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이 트로이의 목마를 신화로 생각했습니다. 쉴리만이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한 이후 신화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화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순간 역사로 바뀔지 모릅니다. 그럼 고고학적인 증거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모두 신화로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는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를 압니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신화에는 우타나피슈팀이란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를 대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도에도 홍수 신화가 있는데 마누란 사람이 배를 만듭니다. 하와이의 홍수 신화에는 누우란 사람이 커다란 배를 만들어 홍수를 피합니다. 아즈텍에서는 타타와 네나란 부부가 통나무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자기 아들과 며느리인 데우칼리온과 피라를 커다란 나무상자 속에 넣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촉토 족, 크리크나체스 족, 모하베아파치 족, 크리 족의 신화에서는 뗏목이나 카누를 탑니다. 이렇게 전 세계에 있는 홍수 신화를 보면 고대의 어느 시점에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걸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신화가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신화적인 부분과 역사적인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그럼 어떤 텍스트를 신화인지 역사인지 판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로지 고고학적 증거가 전부일까요? 우리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머리가 9개인 드래곤 히드라를 죽인 일을 압니다. 또한 로마신화에서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가 늑대젖을 먹고 컸다는 것도 압니다.

신화는 이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히드라 머리가 실은 9개가 아니고 7개였다든가, 로물루스가 먹은 젖은 늑대젖이 아니고 곰젖이었다는 반론을 제기할 필요도 없고 실증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화야말로 일점 일획의 가감없이 이야기 있는 그대로를 들으면 그만입니다.

저는 교조주의자 목사들이 성경 텍스트를 일점 일획 완벽한 텍스트라 칭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교조주의자 목사들의 말대로라면 성경은 역사가 아닌 신화가 되어 버립니다.

목사들이 자기 이익에 맞게 예수의 말을 변형한 것처럼,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아전인수로 해석한 것처럼 성경이란 텍스트 자체도 기록자의 의도대로 변형이 되면서 편집된 '역사의 기록'입니다. 성경을 신화라 생각한다면 성경이란 텍스트가 변형되고 편집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신화가 되어버린 현실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구멍난 난닝구'를 입고 소탈하게 막걸리를 마시며 모아놓은 재산 하나 없으며 청렴결백하게 경제 개발을 이룩한 박정희의 모습은 신화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신화는 구멍동서란 극단적인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는 메이저 언론사들이 함께 이루어 놓은 진짜 신화입니다.

이 신화가 역사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변하는 걸까요? 압도적 권력으로 남의 재산을 빼앗고, 밤이면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가 바친 여자를 양옆에 끼고 시바스리갈 양주를 마시고, 물가상승률 10%로 서민들이 뻑뻑한 삶을 이어나가는 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성경에서 역사적 접근이 필요없는 부분은 신화적인 부분입니다. 이브가 아담의 어느 뼈로 만들어졌는지는 논쟁할 필요가 없는 신화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과연 진짜로 유태인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했는지,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하고 땅을 차지하는 것이 역사적 종교적으로 정당한지는 텍스트를 분석함에 있어, 다른 증거가 드러날 수 있는 역사가 됩니다.

저는 위에서 성경이 완벽무구의 텍스트라는 점을 성경 스스로 주장한 적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성경이 누군가의 의도대로 일부러 왜곡되게 편집되고 구성될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를 잘 분석한다면 패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승자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을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객관적인 사실에 접근하는 것은, 역사뿐만이 아니라 성경에도 적합한 접근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현대의 이스라엘이 모세를 들먹이며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는 것이 근거가 없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현대의 한국 교회들이 모세 율법을 들먹이며 부와 권력을 모으는 것이 모세와 아무 상관 없음을 역사적으로 밝히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은 제게 경전도 아니고 신화도 아니고 역사 자료일 뿐입니다. 다음 회부터 시작될 모세의 얘기를 기대해 주세요. 초월적 존재인 신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역사 소설 '검은 모세(Moses the Blac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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