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태안군 김덕자씨 지난 27일 오후 햇살이 간간이 식당안으로 들어오는 시각 그녀의 일터 ‘밀국’에서 김덕자(47ㆍ태안읍 상옥리)씨를 만났다. ⓒ 이미선
추위가 한차례 몰려올라치면 쌀쌀해진 바람이 그 소식을 먼저 알린다.
어릴 적엔 뜨거운 국물에 반죽된 밀가루를 송송 썰어 넣은 엄마표 칼국수가 제일이던 시절도 있었다. 엄마의 사랑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맛있는 영양분이었으리라.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고향 (경남)함양을 떠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시집 올 때 가지고온 손수건의 눈물자국은 이미 마른지 오래다.
그땐 뭐가 그리도 좋았을까. 남편과 함께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올해로 25년째 충남 태안에서 장사로는 이미 굵어질 때로 굵어진 그녀의 손마디가 추운 겨울을 예고하는 10월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다.
김덕자(47ㆍ태안읍 상옥리ㆍ밀국 대표ㆍ사진)씨는 오늘도 새벽에 남편 박대원(49ㆍ심마니ㆍ농업)씨가 반죽해 놓은 밀가루를 썰며 감자, 호박, 대파를 육수에 우려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을 내놓는 일을 하고 있다.
남편과는 인천에서 만나 스물둘의 어린나이에 태안으로 시집왔다.
"그땐 그냥 장사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한테도 (남편 고향인)태안에 내려가서 장사를 하자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나이에 참 용감했다 싶어요. 호호호"
그렇게 시작된 분식집. 그땐 음식에 대한 기술도 경험도 부족했던 나이라 그저 떡볶이와 라면으로 태안중학교 학생들의 배고픔을 달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나그네포차' 자리에 전세 2500만원을 주고 들어가 2년간은 정신없이 일했어요. 그러다 이곳(태안읍 시장5길 34 1층)으로 이사와 10년간은 더 분식점을 했죠."
당시에는 배달과 가게 일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참 많이도 고단하고 힘들었단다.
그러다 '심야토론'이라는 이름의 호프집으로 업종변경을 하고 12년 뒤인 올해 여름 또 다시 '밀국'이란 이름으로 칼국수집을 열게 됐다.
밀국은 칼국수를 일컫는 이 지역 사투리로 태안사람들이 밀것에 유래해 부르던 옛 이름이다.
"참,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분식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14년간의 분식점 운영으로 몸은 지칠 때로 지쳐있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안면근육마비까지 오게 됐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토바이 사고까지 나게 되면서 분식점을 접었지만 12년이 흐른 뒤 또 다시 밀가루 반죽을 잡게 된 기구한 사연도 소개했다.
"당시에는 오토바이로 배달 일까지 겸하다 보니 전화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어요. 지금은 배달은 하지 않지만 부쩍 나빠진 경기 탓에 장사가 어렵네요."
그저 사람들이 좋아 시장 골목을 지켰고 지금은 25년째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 골목의 안방마님이 됐다.
한 10년 뒤쯤에는 남편과 함께 나무도 심고 먹을 만큼의 농작물도 심어 완벽한 시골생활로 접어 들 계획이라는 김씨는 '고향이 그립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치의 생각도 없이 입을 연다.
"경상도에 갔다가도 빨리 태안에 오고 싶어요. 서산을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바닷내음이 저에게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줘요. 이제는 태안이 제2의 고향이죠 뭐."
지난해에는 대구에 살고 있는 오빠와 10년 만에 상봉하게 됐다는 얘길 꺼내며 본인도 어이없었던지 헛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짐짓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젊음을 돌이킨다.
"이곳에서도 서너명의 친구를 사귀었는데 지금은 다 태안을 떠나고 이웃집에서 옷가게를 하는 친구만와 저만이 태안을 지키고 있다"며 1년에 한번은 가던 고향을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더더욱 찾지 않게 돼 아쉬움이 크다고도 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드는지 옛 학창시절 친구들이 그립더라고요. 해서 작년에는 처음으로 동창회도 참석했어요. 이게 나이가 먹는다는 증거겠죠?"
앞으로 소원이라면 남편과 시어머니, 아들, 딸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젊은이들에게는 간단한 한 끼를,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는 옛 기억의 향수를 전하는 그녀의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칼국수 한 그릇. 그녀의 소박한 식탁에는 언제고 따뜻하게 맛볼 수 있는 그녀의 옛 추억과 칼국수 한 그릇이 보기 좋게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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