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영환(61ㆍ충남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ㆍ청산어촌계장)씨. 기영환(61ㆍ충남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ㆍ청산어촌계장)씨. ⓒ 이미선
왕년 어디 주인공이지 않은 청춘이 있었겠냐마는 이 남자의 기구한 인생을 듣고 있노라니 시간은 결코 허송세월의 나약함을 주진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고향 충남 태안군 남면 진산리를 떠나 지금은 태안군 원북면 하고도 한적한 바닷바람만이 자리하고 있는 청산리 나루터 인근에 터를 잡은 기영환(61ㆍ원북면 청산리ㆍ청산어촌계장ㆍ사진)씨.
한때 해태업과 마른김 공장을 운영, 친형님과 사업체를 번성시키며 잘나가던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아내 김종숙(55)씨와 두 내외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횟집을 운영하며 유유자적 지내고 있지만 계속 번창할 것만 같았던 무지개빛 꿈도 어느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1997년 IMF 경제위기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그 시기. 기씨의 김사업도 부도에 이르렀다. 여기저기 사업체를 늘리며 끌어다 쓴 빚으로 거리에 나앉게 생기면서 죽음을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부인과 하나뿐인 아들을 보며 쓰디쓴 소주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러길 몇 해. 그래도 어디 태안천지 한 가정 발 뻗고 쉴 곳 없으랴. 해태업을 했던 걸 계기로 원북면에 둥지를 틀게 된 기씨는 아내와 같이 붕장어(아나고) 장사를 시작했다.
직접 잡아온 붕장어를 늦은 밤까지 구워가며 차츰차츰 살림을 늘리게 됐고 이제는 장사하던 터를 사들여 어엿한 가게도 열게됐다.
"끼니가 없어 라면만 먹고 살 때도 있었어요"
그새 눈가가 촉촉해진 기씨 옆을 말없이 서있던 아내 종숙씨가 당시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며 짐짓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2011년 그렇게 번창하기 시작한 곳이 이제는 두 부부가 노년을 함께 할 공간으로 눈에 익어간다.
그렇게 바다와 연이 많은 기씨는 6년 전 이곳 청산어촌계장으로 일임하며 34명의 계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데 올해 13ha, 50ha의 공동어장에 바지락과 굴양식장을 운영하며 이제는 마을의 생계도 걱정하고 있다.
기씨와 인터뷰하는 중에도 어업과 관련한 여러 서류로 손에 쥔 계원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만나기를 즐기는 그는 늘 사람중심에 있다.
살면서 가장 보람됐던 일이라면 집터이자 식당터인 이곳을 넓힌 일이며 아들이 장성해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일이다.
여름한철 뱃일이다 식당일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 후 찾아온 잠깐의 휴식이 오늘도 그를 바다에 머물게 한다.
내년 계획이 있다면 굴양식장 8ha 가량을 바지락양식장으로 변경하는 것과 해상크레인을 설치해 어촌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여러 말보다 흰 백발의 솔직한 모습으로 말없이 이곳을 지키는 기씨와 그의 아내 종숙씨의 행복한 노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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