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3대 세습의 비밀

[독서공방 4] 이론으로 읽는 북한, 권헌익/정병호의 <극장국가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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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현(raghu2581)등록 2015.01.08 11:30
두 권의 책

와다 하루키의<북조선>을 읽었다면 <극장국가북한>도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와 <반지의제왕 : 두개의 탑>을 봤다면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의개봉소식에 나도 몰래 발걸음이 극장으로 향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극장국가 북한>을 읽었다면 <북조선>도 읽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베트맨> 시리즈를 모두 본 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베트맨비긴즈>를 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10년의터울을 두고 출판된 두 책의 관계는 묘하게 흥미롭다. 문제의식부터가 그렇다. <북조선>의 질문이 북한 체제의 기원을 찾는 것이었다면, <극장국가 북한>은 그렇게 시작된 북한이 처참한 국가운영실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되고 있는지를 묻는다. 두 책이 서로를 보완하고 있기도하다. <극장국가 북한>은 <북조선>의 유격대국가론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그것이 등장했던맥락과 의미를 친절하게 짚는다. 동시에 북한 정치의 정당성이 김일성이 만주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근거하고있다는 와다 하루키의 주장이 <극장국가 북한>의논지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독서공방에서 소개했던 <북조선>을 관심깊게 읽은 독자라면 <극장국가 북한>의 일독을 권한다.

책의문제의식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북한 체제 유지의 비밀을 탐구하고있다. 저자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답변을 골라놓고 하나씩 반박하는 방식으로 관심을끈다. 쉽게 떠올릴만한 답이라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북한에서 3대 세습이 가능한 이유는 북한이 전통적인 왕조국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북한이저렇게 버티는 이유는 국가의 폭력과 감시가 일상화되어 있기 떄문이다.' 또는 이런 것. '비밀 탐구고 뭐고, 북한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친나라야.'

권헌익과 정병호에 따르면 북한은 전통적인 왕조 국가가아니다. 폭력과 감시를 통해 인민들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할수 없는 나라는 더더구나 아니다. 북한은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 뿐 아니라) 상징과 의례, 문화예술을활용한 고도의 현대적 통치행위를 수행하는 나라다. 저자들은 북한 체제가 유지된다는 현상을 통상적인 서구의정치이론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카고대학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에관한 그의 책 제목을 <Another Country>로 정했다. 북한도 그저 또 다른 하나의 나라일 뿐이라는 뜻에서. <극장국가북한>의 관점도 같다.

극장국가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저자들이 북한을 설명하기 위해가장 명시적으로 활용하는 개념이 '극장국가'다. 이 개념의 저작권은 클리포드 기어츠라는 인류학자에게 있다. (저자인권헌익은 베트남 연구로 '기어츠상'을 수상한바 있다.) 그리고 기어츠가 극장국가 개념을 고안하고 주창한 배경에는 막스 베버가 우뚝하다. 베버는 국가를 폭력을 정당하게 독점하는 유일한 정치체제로 정의했다. 관료, 군대, 경찰을 동원한 강제력이야말로 국가 권력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기어츠는 생각이 달랐다. 정치 권력의 구성요소를 다원화했다고 할수 있겠는데, 통치의 권위와 정당성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강압과 폭력 뿐 아니라 상징과 의례가 중요하다는것이 요지였다. 그리고 문화적 의례를 활용해서 국가를 운영하는 경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바로'극장국가' 되겠다.

<북조선>에서 와다 하루키는 북한 정권의 정당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비롯된다고 했다. 그런데 김정일은 만주니 독립운동이니 하는 것과 별로 관계가 없다. 김일성이 죽고 없어진 마당에 어떻게 통치의 당위성을 인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것인가?  바꾸어 말해서, 김일성 없는 북한이 어떻게 세습을 하고 저렇게 수십년간 유지될 수 있는가?

북한 정권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극장국가 북한>의 대답은, 북한정부가 (그저 인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의례와 상징을 활용한 '극장국가'의 기술을 잘 발휘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유산을 김정일에게 이양하기 위해서 공연과 영화를 만들고 다양한 상징물을 개발했다. 그것들을 인민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과정에서 김일성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던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김정일에게, 군부에게, 북한 정권에게 확장되어 스몄다. 북한은 잘 연출된 의례나 대규모 행사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과 권력을 과시하고,'국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만든 셈이다.사람들은 이러한 의례와 행사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감정적인 고양을 느끼고, 궁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이작동하는 원리의 일부가 된다. 과거 우리나리의 '국기에 대한경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다. 반복하다 보면습관이 되고 습관이 굳어지면 어느 시점부터는 형식이 곧 내용이 되지 않던가 말이야.

<아리랑>, <꽃파는 처녀>, <피바다> 등 북한의 대표적인 공연과 영화는 유격대국가의 서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배경은 일제시대 만주. 일제의 폭압에 한 가정이 스러진다. 아이들은 고아가 된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칠 즈음 (김일성을 선두로 한) 항일유격대가 등장해 아이들을 거둔다. 항일유격대는 밖으로는 거칠게 투쟁하지만 안으로는 한없이 따뜻하다. 하나의가족이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부모도 찾고 나라도 찾고 꿈도 찾게 된다. 북한은 '전설로 각색된 역사'를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하고, 그 극의 일부로 현재를 살아가는 북한 인민들을 초대 또는 동원함으로써 한반도북녘에 거대한 극장국가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이 수십 년 간 유격대국가로 유지되어온비결이자 카리스마 권력을 세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불안과 反지성

<극장국가북한>은 북한이 고도화된 정치적 기술을 활용하여 카리스마 권력을 관례화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저자들은 280페이지에 걸쳐 쏟아내는 북한 체제에 대한 이론적이고학문적인 분석을 통해 이를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성공'을 위해 북한이 치러야 했던 대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자랑스러운성취는 그러나 동시에 비극적 실패이기도 했다. 북한은 카리스마의 자연적 수명에 저항하여 영원한 권위를성취하겠다는 각오로, 인위적이고 과장된 대중동원의 예술정치로 무장한 극장국가로 변모하기 위해 스스로를몰아쳐갔다. 이러면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며 사회적으로 민주적이며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20세기 혁명국가로서의 근본 목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다. 카리스마 권력에 대한 숭배는 정치와 행정 권력의 극심한 중앙집중을 가져왔고,이는 사회주의혁명의 민주적 원리를 파괴했다." (275쪽)

문장이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것이 어떻게 보면북한에 관한 저자들의 거의 유일한 '평가'라고 해도 좋을것 같다. 기어츠가 극장국가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는 평도 함께 덧붙이면서, 북한에게 극장국가로 정권을 유지하는 일은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한다.    

마지막에 가서 극장국가 그만하라고 할 거면서 책 제목은왜 <극장국가 북한>으로 달았으며 그 많은 사례와논증들은 다 무엇이었나 따질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있는 것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과 그것을규범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결론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책 전체에 뿌려담지 않은것은, 그 사실에 대해서 연구가 직업인 저자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이라는 소재 또는 주제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민감하지않은 적이 있었겠나 싶지만 요즘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우수도서로 선정했다는 어느책의 북콘서트에서 누군가가 인화물질을 터뜨렸는데도 그게 얼마나 충격적인 테러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고,오히려 글쓴이가 종북인사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두렵다. 영혼을 잠식하는 것은 많은 경우 불안 그 자체다. 불안하고 두려우면'반지성의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차근히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맹목적인 추종 또는 극단적인 혐오에 빠지게 되고, 불안과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북한에 관해 책 몇 권 읽는다고 해서 뭐가 갑자기 달라질일은 없을 것이다. 매일 아침 저녁 출근하랴 퇴근하랴 바쁜 미생의 삶을 사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단국가에서 태어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스스로를 반지성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계기 정도는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책에 대한 내용은 독서공방 기자들의 팟캐스트 <역사책 읽는 집>에서 더욱 상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주소 : http://www.podbbang.com/ch/5579?e=2158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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