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저녁이다. 안방에 누워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마누라 밥먹으로 나오라 한다. 식탁에 앉아보니 반찬이 아직 안차려져 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밥솥에서 밥을 퍼 밥먹을 준비를 한다. 밥을 먹으며 괜히 마음이 찝찝하다. 내가 마누라 밥먹으러 나오라 할 때는 식탁에 반찬이며 밥이며 먹을 준비 다 해놓고 먹으라하는데 마누라는 찌게만 달랑 준비해 놓고 밥먹으라 하니 마음이 찝찝한 것이다.
밥 잘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 버리라 한다. 내가 알아서 버려왔던 음식물 쓰레기를 다 찼다고 버리고 오라고 하네. 괜히 마음이 찝찝하고 화같은 것이 나온다. 이거 날 무시하는 건가. 내가 알아서 잘 해왔는데 이래라 저래라 시키고 잔소리 한다. 듣기 싫다. 그래서 화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나는 것이다. 마누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마누라는 충분히 음식물 쓰레기가 찼으니 그것을 모르는 남편에게 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충분히 할 수있는 말이고 이해가 간다. 그래도 마음에 괜한 화가난다. 그냥 듣기 싫은 것이다. 짜증이다.
이럴땐 말대꾸를 하지 말고 가만히 내 마음을 지켜보면된다. 내가 좀 화가 나는구나. 그러나 화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화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러면 시간이 좀 지나 괜찮아 진다.
사람과 이야기 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신에게 듣기 좋거나 평범한 말이면 그냥 흘러가고,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까칠하게 화가 일어난다. 무엇때문인가. 내마음의 심리가 왜이리 까칠해 졌는가. 신경이 날카로워 졌는가. 이럴때 운동을 하러 간다. 탁구나 산책을 하러 나간다. 특히 탁구치고와서 쌰워까지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언제 그렇게 속좁고 까칠했는가 생각이 들며 우수워진다. 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여행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권태롭고 등등의 흔히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좀 더 낯설은 공간으로 삶의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 이것이 여행이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강원도에서 동해안으로 가는 고개가 네개가 있다. 하나는 인제군에서 고성군으로 넘어가는 진부령, 인제군에서 속초시로 넘어가는 미시령, 인제군에서 양양군으로 넘어가는 한계령, 평창군에서 강릉시로 넘어가는 대관령이다. 터널이 잘 뚫였다고 미시령으로 많이 갔으나 이번엔 한계령이다. 꼬불꼬불 올라 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남설악악의 절경이 그립기 때문이다.
꼬불꼬불 한계령을 올라 휴게소에서 국수 한그릇씩 시켜먹고 그냥 가기 아쉬워 공룡능선 등산로 좀 올라갔다. 정자에서 주변을 살펴보니 나무들로 둘러싸여 전망이 그저 그렇다. 아쉬워 좀 더 오르려하니 입구초소에서 관리원 아저씨가 위험타고 오르지 말라 한다. 공룡능선을 이런 복장으로 갈 순 없지, 발길을 돌린다.
다시 구불구불 한계령을 내려와 가다보니 낙산해상국립공원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바닷가 해변길인가 싶어 무심결에 차를 돌려 가보니 , 펼쳐진다. 낙산 해수욕장의 드넓은 백사장과 그 넘어 파란빛의 동해 바다가.
정신의 치유가 필요해.
그래 떠나자.
동해 바다로
한계령 넘어 낙산 해수욕장
평온의 모래밭 넘어 펼쳐진 끝없는 푸르름
내 마음은 호수요.
심신은 바다다.
낙산 해수욕장에 주차하니
온몸에 밀려오는 평온에 기운
한계령 남설악의 날카로움에
절묘함에 감탄하며 내려오니
이젠 넓은 모래밭과 푸르른 바다의 부드러움으로
날 극적인 평온함으로 이끄른다.
아 천국이 있다면
바로 널 대면한 이 순간이다.
낙산 해수욕장에 주차하며
▲ 낙산해수욕장의 평화로운 백사장과 동해 바다 차를 주차하며 처음 직면한 낙산해수욕장의 평화로운 백사장과 동해 바다에 반하다. ⓒ 한윤희
몇개월간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지 못하다 보니 밀려오는 감동이다. 이젠 하조대로 향한다. 조금만 가면 될 줄 알았더니 30분정도 내려가야 하조대를 접할 수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정사를 논한 곳이라 하여 하조대라 하였다 한다.
하조대 정자에서 바라보니 육지에서 좀 떨어진 바위섬위에 소나무가 하나있고 그 소나무의 수령이 200년이라 하며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다. 그 소나무가 200년 된 것이 왜 대단한 것인가. 수백년된 소나무가 천지에 깔렸는데 하며 생각하니 먹을거 없는 저 바위섬에서 홀로 200년을 버텼다는게 대단한 것이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옆에 여행온 어떤 아저씨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여기가 애국가에 나온 동해안 명소라고 설명해 주기 바쁘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곳이라 감동받아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이 감동받길 바래서 그런것인지 궁금하긴 하다. 왜 저렇게 알리려 하는지. 아무튼 이곳 하조대는 하륜과 조준이 정사를 논해서 유명타기 보단 해안의 절경이 멋져서 유명하며 여기에 하륜과 조준의 이름을 붙여 의미부여를 위해 사용한것 같다. 여기서 정사를 논한 사람이 하륜과 조준만 있겠는가 . 나도 있고 저 아저씨도 있고 신라시대에 어느 백성도 여기서 정사를 논했다.
▲ 하조대에서 바라본 수령 200년의 바위섬 소나무 하조대 정자에서 바라본 수령200년된 바위섬 소나무가 겨울 바람에도 의연하게 자라고 있다. ⓒ 한윤희
하룻밤 자고 이젠 외설악이다. 수학여행시 학생들 대리고 자주 오르던 곳이다. 외설악의 절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날씨이다.
설악 제일경이라 외설악
권금성에서 외설악을 먼저 조망하고
비선대로 향한다.
예전엔 학생들과 의무감으로 오르던 길
이젠 한가히 한겨울에 오른다.
쾌창하고 온화한 한겨울 날씨의 부조 때문인지
낙엽 다 떨군 활엽수의 수줍음 때문인지
아름드리 금강송의 기상과 개성미가
군계일학이라.
산길걷는 내 마음을
내내 사로잡는다.
설악 제일경 뾰족뾰족 외설악의 절경도
익숙하고 자연스런 우리에 나무 금강송의
생명미만 못하다.
너의 편안함이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산길 걷는 날 내내 즐겁게 한다.
낯섦보단 익숙함이
날까로움보단 부드러움이
직선보단 곡선이
비선대 향하는 날 내내 즐겁게 한다.
어릴적 시골 뒷산의 솔숲이
바로 금강송 너였기 때문이다.
▲ 외설악 비선대 가는 길에 본 금강송들 외설악 비선대 오르는 길에 하늘로 쭉쭉뻗은 금강송들이 줄지어 산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 한윤희
권금성에서 외설악의 절경을 실컷 감상하고 비선대에 오르니 금강송 솔숲길이 내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편안해 해준다. 속초에 왔으니 해돋이를 감상해야지. 일출시각을 잘 체크하고 숙소 옥상에서 일출을 기다린다.
빛의 향연이다.
빛의 예술이다.
해돋이
스산한 바람에 널 찾아
옥상 망루에 오르니
서녁으론 울산바위 우람하게
병풍처럼 둘러싸고
동녁으론 창해의 동해바다 펼쳐져
빛의 예술을 준비한다.
저 멀리 창해의 동편넘어 펼쳐진
암흑의 먹구름위로
잘익은 홍씨의 주홍빛을 창공에 쏘아대며
너의 본체를 드러내는구나.
바다와 구름과 대기에 쏘아대는
빛의 향연
날 황홀하게 하는 순간이다.
내 뇌리에 영원히 각인되는 순간이다.
고맙다 빛의 작품이여
▲ 숙소 옥상에서 바라본 동해 해돋이 속초에서 해돋이를 감상코자 숙소 옥상 망루에 올라 동해바다 해돋이를 감상하다. ⓒ 한윤희
역시 해돋이는 동해바다 해돋이가 멋지다. 생명의 시원이며 신이라 할 수 있는 태양의 웅장함은 매일 이러한 장관을 펼치며 반복되어 왔다.
인제의 자작나무 숲을 들르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옆에 우수운 광경이 보인다. 급경사도 아닌데 잘 가꾸어진 묘지 서너기가 앞에 방음벽을 해놓고 있는 것이다. 잠자는데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소음에 시끄러워 조상님이 잠 못잘까봐 염려하는 후손의 정성이 왜이리 날 웃음짓게 하는지.
이번 속초 여행으로 정신의 치유가 됬다. 마누라의 잔소리를 들어도 이젠 감각이 없다. 짜증나지 않는다. 힐링이 된 것이다. 여행뿐 아니라 여러가지 취미와 레저로 괴롭고 따분한 일상, 평범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삶을 만끽할 수 있다.
멋있는 인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는것이 멋있는 인생이다. 성공한 인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굶어죽지않고 인간말종으로 살지 않았으면 멋있는 인생이고 성공한 인생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그를위해 노력한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