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도 잊지 않을께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추천 도서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

검토 완료

이현정(sosoi)등록 2015.01.09 17:27
최근 소위 기레기라 부르는 기자와 언론, 그리고 검찰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피노키오, 힐러, 오만과 편견, 펀치 .... 이것이 과연 우연이랄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이 시대의 화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최근 창비출판사에서 막바지 작업 중인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 금요일엔 돌아오렴' 가편집본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금요일에 돌아오렴'은 2014년 4월 16일 진도의 시린 바다 밑에서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기입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함께 해야했을 금요일을 끝끝내 맞이하지 못했던...

"우리 가족은 건우만 잃은 게 아니에요. 건우가 꾸릴 미래의 가족 모두를 잃은 거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오래 살려고요.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도 있을 텐데,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 줘야죠... 기억이 온전해야 하는데, 치매 걸리면 안 되는데... "
​온 맘을 다해 사랑했던 아들 건우와, 공황장애임에도 팽목항으로 대전으로 죽을 힘을 다해 나섰던 노선자 씨 이야기.

"책임감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건 아는데, 미지가 그렇게 가고 나니 잘 모르겠어. 훌륭한 게 뭔지."
반 아이들을 탈출시키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2학년 1반 반장 미지와, 가장 비극적인 순간 딸과의 달콤했던 약속을 떠올리는 아버지 유해종 씨 이야기.

"자원봉사자들이 먹을 걸 챙겨줬는데 아무것도 못 먹었죠. 새끼가 물속에 있는데 그걸 먹으면 네가 엄마냐 그런 자책도 들고, 물도 잘 못 삼키겠고, 근데 오일짼가 육일짼가. 진도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든 식혜를 가져와 돌아다니면서 주는데,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막 우시는 거예요. 애 찾아가려면 먹으라고, 그래야 산다고. ... 한 모금 넘겼는데 그게 사고 나고 처음 먹은 음식이에요. 한 모금 넘기면서 나도 울고, 할머니들도 울고. 나중에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장학금을 받아 결혼 20주년 여행을 보내줬던) 다정다감하고 야무졌던 예쁜 딸 승희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죄인이란 생각에 오늘도 거리를 나서는 전민주 씨 이야기.

"(트라우마) 상담 같은 건 한 번도 안 혀 봤어유. 딸이 죽어서 이 세상에 없는듸 내 살것다고 그런 걸 받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유. 지금도 뒤따라갈 마음밖에는 없는디..."
홀로 키우는 아빠와 함께 다니는 걸 좋아했던 소연이와, 함께 했던 기억을 잊지 못해 삶의 방향과 감각을 잃어버린 아버지 김진철 씨 이야기.

'호성이는  나 철 들라고 보내준 선물 같아요. 애 때문에 힘든 세월도 많이 참았거든요. 지금도 멍하니 있다가 "엄마, 뭐해?" 소리 들리면 분향소든 어디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돌아다녀요..... 부모들이 외치는 거, 허허벌판에 메아리예요. 그래도 이것마저 안 하면 다 끝났다고 인정해버릴까봐, 그러면 내 자식한테 더 죄를 짓는 거 같아서 이렇게 소리치는 거예요. 처음엔 내 자식 일이라서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포기가 안 돼요."
부모한테 오히려 양보하던 착한 아들 호성이와,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 되지 싶어 뭐라도 해야 편하다는 정부자 씨 이야기.

"나는 안나가려 했는데,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막말을 해서 엄마들이 5월 8일 KBS 앞에 갈 때 같이 올라가서 거기서부터 했어요. ... 사고였는데, 최선을 다해서 구했는데 못 구했다 그러면 우리도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하다못해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그 원인을 밝히는데 이건 304명이 죽은 대형사고잖아요. 처음부터 투사가 되어 이걸 밝히고 말 거야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부모 한 명도 없어요. 이렇게 잔인하게 가족들을 몰아붙일지는 정말 몰랐어요."
또래 아이들처럼 사춘기를 혹독히 겪었던 창현이와, 맨날 잔소리하며 가깝게 못 지낸 게 제일 후회스럽다는 최순화 씨 이야기.

'배에는 전부 앙카라는 게 있어요. 그걸로 유리창을 깨면 다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 내가 섬에 내려갔을 때 (민간)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였어요..... 선원들 중에는 학생들이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어대고 얼굴을 유리에 대고 숨을 거둬가는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섬에도 트라우마가 있었던 거예요.'
스튜어디스가 꿈이었던 지성이와, 진상규명을 위해 사고 인근 섬들을 찾아다니다 현재 '416TV' 방송을 제작하는 문종택 씨 이야기.

"가정 자체가 파괴되어버렸잖아요. 한동안은 판단력도, 기억력도, 집중력도 온전하지 못했어요. 우리도 진상규명에 나서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지 않았다면, 또 큰아이가 없었다면 더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다른 집들도 그런 문제는 심각할 거예요."
사고 당시 동영상이 담긴 휴대전화를 간직한 채 올라온 수현이와, 아들이 내준 숙제라는 생각에 진상규명에 매달리게 되었다는 박종대 씨 이야기.

"힘들어도 기운 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또 멈춰서는 거예요. 그럼 세상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살아서 '수장'을 당해야 했던 내 아이는, 아니 아이들은 소중한 삶을 이유 없이 빼앗겼는데 그건 뭔가. 팽목항이라는 지옥의 공간에서 울부짖었던 부모들에게 제발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까."
항암 치료 중인 엄마를 돌보던 착한고 순한 딸 채원이와,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갈 딸을 걱정했는데 딸을 먼저 보내게 된 엄마 허영무 씨 이야기

'세월호 사건이 터지니까 친구 엄마들을 찾게 되더군요.  … 준우가 살아 있을 때 친했던 친구 (5명의) 부모들을 만난다니까 너무 좋았어요. 기대 반 설렘 반. 5인방 부모들은 진도에서 올라와서도 많이 만났고, 얼마 전에는 회칙도 정했어요. 회칙에 우리 모임 목적을 적었어요. '5인방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 구성원 모두를 치유하는 일, 5인방과 비슷한 친목을 지속적으로 도모하는 일, 5인방 같은 아름다운 이들을 돕는 일' 이렇게 정리했어요.'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챙기던 준우와 피눈물 흘리며 직장생활에 사회에 적응 중인 장순복 씨 이야기​.

'그 때 (서해 페리호 사고 때) 만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세월호 참사가 났을까.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특별법 요구 안 했잖아요.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의 유가족들이 와서 그랬다고 하던데 '우리가 특별법을 못 만들어서 이런 사고가 난 것 같다고, 죄송하다'라고요. 그런데 지금 통과된 특별법이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를 방지할 안전한 법인가, 의구심밖에 안 들어요. 현재 특별법 갖고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조향사를 꿈꾸던 세희와, 텅 비어가는 진도체육관을 차마 떠나지 못해 딸의 장례를 치르고도 실종자 가족 곁을 지키는 임종호 씨 이야기.

​'장례식장이 대목이라 그런지 횡포가 심했어요. 수의를 이걸 해라, 저걸 해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고, 안 하겠다고 하면 '빼서 나가라'는 식이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상복도 찢어져서 기운 것이고, 심지어는 위, 아래도 달랐어요. 자식이 죽었는데 상주가 옷 타박한다고 할까봐 말은 못했지만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지금도 마음의 앙금이 남아 있어요.'
종알종알 학교 얘기며 친구 얘기 들려주던 다영이와, 다시 그런 재밌는 시절이 올까 싶다는 김현동 씨 이야기.

'제가 한창 슬픔에 젖어 있는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어요. 그분이 고맙게도 위로를 해주고 가시더라구요. '아, 그 당시에 나는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남의 얘기였고 나와 먼 얘기였는데 이렇게 내가 위로를 받는구나.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 맨 처음에는 그저 아이가 살아서 돌아오려나 그런 생각을 했었고 죽어서라도 내 품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이가 나온 후에는 그래도 뭔갈 이뤄야겠다는 목적 하나로 시간을 보냈어요. 진실을 밝히려 하는, 조금은 희망의 시간이죠. 근데 이 기다림이든 저 기다림이든 우리 애들이 그렇게 괴롭게 갔는데 그만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는 건 엄마 아빠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요.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내가 눈 뜨고 있을 때까지는, 눈 감기 전까지는 진실을 알아냈으면 좋겠어요.'
너그럽고 자상스러웠던 반듯한 아들 제훈이와, 그립고 미안한 맘에 후회스럽다는 이지연 씨 이야기.

단원고 세월호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줄곧 아이를 사고로 보낸 부모의 마음에 함께 아팠고, 학교에서 진도 · 팽목항, 장례 과정 과정까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국회와 광화문 · 청운동 등 거리로 나서야 했던 절박하고 비참했을 마음까지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산 자식이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인데, '이런 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 나서야 할 일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지만) 언론으로 전해 들었던 내용과 너무도 달랐던 진실에 아직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실망해 마지 않던 언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보도자료나 베껴 쓰고, 접대나 받는, 그렇게 본분을 망각한 채 부끄러운 줄조차 모르는...

조치원 거리 서명 중 인근 가겟집 주인의 "1년에 사고로 천명, 이천 명 죽는데 삼백 명 죽은 걸 가지고 왜 이렇게 난리야? 당신들 때문에 가게 안 되는 거 안보이냐? 나라를 거덜 낼 거냐"라는 항의에 눈물을 그렁이며 한마디 쏘아붙이건 오히려 작가였다. 그런 작가의 어깨를 토닥인 건, 딸 미지를 잃은 아버지 유해종 씨였다. "너무 상처받지 말아요. 다니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더라고요."라며.....

가슴앓이해가며 읽어내려가다가도 문득문득, 인지상정의 마음조차 잃어가는 우리 사회가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맘을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젠 지겹다.', '경제만 더 어려워졌다.'라는 왜곡된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따라 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걸까요? 아무쪼록 금요일엔 우리 안에 괴물 대신, 인간다운 감성과 이성을 가진 주체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엮은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오는 1월 16일 출간될 예정이라 합니다. 제게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 책이라, 2015년 한해를 시작하는 책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이 책을 통해 사람됨에 대하여,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안전하고 상식적인 사회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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