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을 쓰려는 분들이여, 유의하시라!

범인의 잡기장에도 못 미치는 뒤지(x닦는 종이) 수준의 글이 대통령의 회고록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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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욱(arock)등록 2015.02.03 17:41
사람들은 무덤에 가기 전에 누구에게는 다 털어 놓고 가고 싶은 뭔가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회고록이란 걸 쓰게 된다. 요즘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또 출판이라는 게 그리 큰 돈이 들지 않으니, 원하면 누구도 회고록을 쓰고 또 자비로 출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회고록을 혼자 쓰고 보다가 불태워버리지 않는다면 다음의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시기의 문제; 회고록은 "회고록"이라 이름을 붙이든 다른 제목을 붙이든 한 인생의 무게를 담고 있다. 보통은 죽기 몇 년 전에 쓰게 된다. 기억력에 자신이 없으면 미리 써 두었다가 출판만은 후손에게 부탁하여 죽은 뒤 출판하기도 하고 비망록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정작 쓸 때에 살을 붙여 쓰기도 한다. 아니면 팔에 힘이 없어 구술을 하고 옆에서 누가 받아 적기도 한다.
요즘 국회의원 선거 전에, 또는 대통령, 시장 선거 전에 홍보용으로 자기가 걸어온 길을 미화해서 자서전 형식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많고 또 이걸 활용해서 출판기념회를 열어 정치헌금도 받는 모양인데 이것은 소위 홍보용 책자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회고록은 아니다.
자신의 살아 생전 언행이 뛰어나면 자기가 쓰지 않더라도 후손들이 "행장(行狀)이란 이름 하에 족보에 남긴다. 예수님이나 공자님을 보라. 성경이나 논어가 자신이 쓴 글인가? 다 제자들이 당사자가 죽은 후에 생전의 언행을 글로 집약한 것이다. '회고록"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징비록" "난중일기" 같은 것은 후세에 확실한 귀감이 되는 회고록 중의 회고록이다.
내용이 당대에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후손이나 공적 기관에 맡겨 놓고 '내 죽은 후에 출간해 달라'고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남부군'을 쓴 이태씨는 직업이 기자이면서도 30년이 지나서야 이 글을 써서 출판했다.
둘째 내용의 문제; 책에는 써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도 있다. 특히 회고록은 사람이 무덤에 가기 전에 쓰는 것이므로 나중에 고치기도 어렵고 철회할 수도 없다. 한 마디로 쏟아진 물처럼 도로 주워담을 수 없는 게 글이다.
사람에게는 무덤에까지 가져갈 수 밖에 없는 비밀이 있다. 아무리 쓰고 싶더라도 예컨대 "네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는데 내가 인격이 고매해서 참았다" 이런 내용을 후손이 읽어보라 쓸 수는 없다.
말은 속일 수 있어도 글은 속일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글을 읽어보면 아무리 위장해도 그 사람의 인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셋째 검증된 내용인지, 제대로 쓴 건지 재고, 삼고할 필요가 있다 ; 시나 수필은 즉흥적으로 쓸 수 있다(물론 이런 글도 여러 번 갈고 닦으면 더 훌륭한 글이 된다). 그런데 장문의 글은 큰 줄기를 요약한 다음 하루 이틀 묵히면서 재고 삼고 하면 김치가 익듯 더 훌륭한 맛이 든다. 무슨 양념이 빠졌나 재고해 보고 더 추가할 것, 사족을 자를 것이 없나 살피면 더 좋은 글이 나온다. 특히 회고록은 후세 사가들이 두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이 아닌 자기 주관을 객관적 사실처럼 오인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이완용은 만고의 역적이다" 이런 확실한 말은 써도 되지만 막연히 "박 아무개는 내 철천지 원수다" 이런 말을 무덤에 가기 전에 쓰는 글에 남겨서는 곤란하다.
요즘 제일 막연한 게 "친일파"란 딱지이다. "친일인명사전"이라는 것 까지 등장하였는데 어디까지가 친일인지 참으로 애매하다. 이 사전을 편찬한 분들은 책의 두께가 자기들의 업적과 비례한다고 생각했던지 마구잡이로 등재하였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학자들, 연구위원이란 분들은 치열한 탐구정신, 직업의식이 부족하고 직함, 명예 이런데 집착한다. 일본은 기록정신이 투철하고 이를 잘 관리한다. 일본 관공서 어딘가에 진짜 친일한국인 명단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애국자인체 하고 뒤로 애국지사를 팔아 넘긴 밀정들, 형사보조원, 등등….. 이것들을 향후 써먹기 위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위안부문제보다 이것을 먼저 요구해 받아 친일명단에 올리는 게 먼저다. "좌익"이란 개념도 참으로 애매하다. 6.25 사변 전엔 국민 모두가 "우리는 중도요"라 외치는 사람이 없이 붙이는데 따라 우익이 되기도 했고 좌익이 되기도 했다. 부역 한번 끌려가도 좌익, 심지어 1920년대 독립운동 당시 일본군과 싸울 무기를 얻기 위해 러시아에 간 사람도 '좌파'로 몰아버리는 판이다. 이렇게 애매하게 "친일" "좌파" 식의 용어나 내용을 회고록에 남겨서는 안 된다.
이상의 기준으로 봐서 만으로도 이번에 이명박씨가 쓴 '대통령의 시간'이란 회고록은 범인의 잡기장에도 못 미치는 뒤지(화장지가 등장 전 x닦는 종이를 지칭한 순수 우리말) 수준의 글이라고 밖에 평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사보려다 노회찬 전 의원이 "돼지고기 한 근 값에 못 미치는 책"이라는 바람에 설마 하면서도 우선 모 일간지에 수록된 내용을 죽 읽어 봤더니 차라리 "돼지고기 한 근 값은 후한 평"이라 생각이 들었다.
첫째, 우선 시기가 너무 빨랐다.
팔팔한 사람이 뭐가 그리 급해 회고록을 출판했나? 국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천만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둘째, 소아(小我)를 위해 대의(大義)를 무참히 짓밟은 행동.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의 기본자세는 대의를 위해 소아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은 최상위 공직인 바에야 더욱 절실하다. 그런데 이명박씨는 오직 족보에 '나 대통령 먹었소."라고 간판 올리기 위해 대통령직을 맡은 사람 같다. 자기자랑, 변명을 위해 '민감한 외교상의 비밀'도 공개해 버리고 '남북관계에 혼선'을 가져올 일도 서슴지 않았다.
셋째, 참을 수 없는 인격의 경박함.
글은 사람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번 그의 글도 그의 평소 경박함, 나서기 좋아하는 품성, 기회주의, 자화자찬적 인격결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사자방 중 첫째인 4대강만해도 그렇다. 이미 객관적인 국제기관에서 도로 해체해야 한다고 결론 난 사실을 운하라 했다가 강 사업이라 했다가 이번엔 외환위기에 도움이라 했다가늘 반짝 성과, 단타 만을 노린다. 정말 자신이 있으면 후세 사가들의 평가에 맡기겠다 하고 느긋하게 있으면 될 것이지 왜 회고록을 쓰면서까지 방정을 떠는가?
넷째, 최소한의 양심이나 도의도 없는 행동
이명박 씨는 현 집권당 대표 주자로 나와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물러났어도 양심에 근거해서 자기가 부채를 진 당이 잘 되도록 도와 줘야 할 의리나 도의적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세종 시 문제가 자기 추측이 설사 맞다 하더라도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가만 있으면 될 일을 굳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은 왜 인가?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고, 사료가치도 없는 글을 왜 쓰는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자방" 문제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어 청문회가 진행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소추까지도 당할 우려가 있어 사전 연막작전으로 책을 출판한 것인가? 그렇다면 한 마디로 그 작전은 실패라 볼 수 밖에 없다.
이미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판정이 났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형사책임을 지게 되면 전두환씨나 노태우씨처럼 감방 한번 갔다 옴이 남자답지 옹졸하게 변명으로 일관하는 건 "문민"이어서 그런가?
결과적으로 이번 그의 출판물은 국민들에게 "다시는 함량미달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심어줬을 뿐이다.
(필자; 역사소설작가/대표작; 양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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