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부총리에게 ‘창조적 해결책’을 바란다

대학 구조조정 논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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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인(chillwall7)등록 2015.02.06 14:46
 "우리나라에 독어독문과가 49개 있다고 하는데, 졸업하고 취업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나"

지난 달 23일 연합뉴스와 가진 신년인터뷰에서 황우여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한 말이다. 인터뷰 하루 전인 22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는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을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고, 이에 맞추어 학과개편과 정원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소위 '인문계열 구조조정안'이다. 이러한 황 부총리의 행보에 대학가는 술렁였다. "대학이 취업학원이냐"는 비판부터, "인문계열을 무시한다"는 볼멘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여기에 지난 4일 대학생 대표자 10여명과의 간담회에서 황 부총리가 "인문학보다 취업이 먼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은 가중되었다. 

황 부총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이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높은 대학진학률과 이로 이한 사회적비용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지금은 낮은 청년취업률로 사회가 진통을 앓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없애면 된다는 생각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즉, 독어독문과를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니 독어독문과를 없애면 된다는 논리인데, 척 봐도 별로 창조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없을 것 같은 해결책이다.

이러한 논리에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공계열 인재에 대한 수요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마땅히 공급을 늘려야 할 것이다. 인문계열 졸업생들의 취직률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취업시장에서 인기 없는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은 인기 학과로 전과하거나, 하다못해 복수전공이라도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다. 황 부총리도 간담회에서 "취업이 어려운 사람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위한 대학과정을 마치라고 한다면 그 학생은 다시 취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인문학적 소양만으로는 취업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황 부총리는 인문계열 학생들이 취업을 못하는 이유로 그들이 취업시장에서 요구되는 어떠한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직자들이 원하는 일자리의 수이다. 적은 파이를 두고 서로 경쟁하다 보니 제 몸집을 불릴 수밖에 없다. '스펙경쟁'이다. 파이의 크기가 작을수록, 도태되는 사람도 늘어난다. 인문계열 취업준비생들이 여기에 속한다. 세대갈등론이 고개를 내미는 것도, "경제성장기에 '운이 좋아서' 쉽게 취업했던 기성세대가 지금의 '우리'와 경쟁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도발이 튀어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문제를 인문계열 구조조정으로 해결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대학 내 특정계열 학생의 수를 정부가 주도하여 '지원금'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줄일 경우, 학생들의 진로선택과정과 대학의 교육투자과정에 장기적으로 잘못된 신호를 보낼 여지가 상당하다. 취업이 안 되서 줄인 학과라는데, 누가 가고 싶어 하겠으며, 인문계열을 줄이면 돈을 준다는데 비전을 가지고 여기에 투자할 대학이 어디 있겠는가.

이공계열 일자리라는 다른 파이의 크기가 충분한지도 의문이다. 설령 대졸 이공계열 인재에 대한 산업계의 수요가 충분히 크고 이를 공급이 못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문제를 인문계열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한다는 발상도 이상하다. 인문계열 학생들이 이공계열에 가지 못해 지금의 진로를 선택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초/중/고등학생의 이공계열 관련 수업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학원쯤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황 부총리의 계획에선 대학교육이 그 자체로 가치를 생산하며, 새로운 수요창출의 원동력이 되고,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대학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인문학을 비롯한 '비인기 학문'들이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이유다.

황 부총리는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난해 2만3천여 명이 교원 임용자격을 땄는데 교원이 된 건 4600명에 불과하다"며 "이 차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열심히 공부해 교원자격을 딴 이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지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황 부총리의 말처럼 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맞다. 단, 대학만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다. 높은 대학진학률로 인한 사회적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청년들이 좁은 취업의 관문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에 대한 해결방법이 산업수요에 맞추어 특정 학과를 구조조정 하는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자의 취업 문제를 보자.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니, 고졸 취업자 수도 증가했다.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황 부총리가 원하는 '양적/질적 미스매치'의 해결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들은 직장 내에서 따돌림에 직면하고 승진에 어려움을 겪는다. 열 명 중 넷이 후회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쯤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 정말로 대학 구조조정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교육부의 2015년 업무계획에 따르면 청년 취업/창업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융복합형 인재 양성이니, 창조경제이니 하는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있다는 49개의 독어독문과 학생들을 어떻게 해서 '필요한 인재'로 길러낼 것인지, 그들에겐 어떤 교육과 지원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것이 황 부총리의 화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독문과 학생들은 창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황우여 부총리가 창조적 해결책을 찾아내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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