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관료주의가 교육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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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perfect95)등록 2015.03.25 15:20
나는 참 예의바르고 경위 바른 사나이다.

길눈이 어둡고 귀가 멀 뿐 아니라 공간 지각 능력도 떨어지는 내가 1종 대형 면허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아니러니하지만 상대 차량에 양보를 받았을 때 어김없이 비상 깜박이를 켜는 것을 보면 에티켓면허는 1종 대형 면허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참 예의바르고 경위 바른 사나이다.

남자들이 서서 오줌을 누면 변기 외곽선 바깥으로 40cm, 변기 상단 쪽으로는 30cm 씩이나 물방울의 향연이 일어난다는 일본 키타사토 환경과학센터의 충격적 보고를 흘려듣지 않는다. 오줌의 파편이 칫솔이나 수건에 닿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한 길이고 그것이 가족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운운하는 길이야말로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참 예의바르고 경위 바른 사나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다 뽀뽀를 할 일이 생기면 꼭 양치질을 한다. 중간에 분위기를 깨는 것도 실례이기에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조심스럽게 이를 닦는다. 작업이 수행된 이후에 뒤늦게야 상황을 알아차린 상대가 '나는 안 닦았는데'하면 아무런 말없이 묵묵하게, 대신 더욱 진하게 N극과 S극의 결합을 이루면 그것이 배려요 이성에 대한 예의인 셈이다.  

나는 참 예의바르고 경위 바른 사나이다.

고물상 세제 혜택이 축소되어 폐지 줍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겨울이 더욱 추울 것이다.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폐지를 위한 폐지를 만드는 무식함도 불사하고 그들의 일터로 찾아간다. 그들의 고맙다는 인사에 그들이 살아왔을, 또한 살아갈 고초에 내 똥배를 바라보며 더욱 머리를 숙이게 된다.

15년 정도 교직 생활을 하며 따뜻한 학생, 좋은 동료, 훌륭한 관리자, 의식 있는 학부모 등을 뵌 것도 사실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선생님들이 청소시간에 학생들을 용병으로 투입시키는 것이 너무 싫어 사제동행 차원에서 교실을 쓸고 있는데 학생 한 명이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선생님, 여기도 쓰레기가 있네요.'라 한 적이 있었다.

연기학원에 다니며 배우가 되길 꿈꾸는 학생이 어떤 사안 때문에 내게 조금 야단을 들었는데 집에 가서 아버지를 앞에 두고 얼마나 연기 연습을 철저히 했는지 그날 휴대전화 너머로 그 학생 아버지의 애창곡이 에코와 함께 춤을 춘 적도 있었다. 애창곡, 이른바 일본에서 말하는 18번 말이다.

학교 내에서 이동하다 동료 교사들과 마주칠 때가 더러 있는데 목 깁스를 하고 정형외과에서 전치 20주 진단을 받은 건지 목례조차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내게만 좋잖은 감정이 있나 싶어 주위에 물어보면 본래 저 인간은 예의를 쌈 싸먹었다고 전한다. '학생들이 지니게 해야 할 덕목을 본인이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될 텐데'라며 오히려 측은지심을 가져본다.

학생이나 학부모, 그리고 동료교사에게서 느끼는 무례에 대한 적잖은 피로감, 나름 감내할 수 있다. 그들의 저돌성이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의 융화를 위해 다른 방향으로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선행되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감, 교장 즉 학교관리자들이 예의를 지키지 않고 경위 바르지 않으며 무례함으로 무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적으로 학교 구조의 폐단과 한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고 그 불온한 시스템이 악순환을 조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알코올 중독, '알코올 남용 및 의존(alcohol abuse, alcohol dependence)'의 영역과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으나 교감 중에는 점심시간마다 소주를 1~2병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업무처리능력이 워낙 탁월했기에 사람들은 그저 '역시 술꾼이 일꾼'이라는 식으로, 교감선생님의 '역동적 에너지의 원천은 주(酒)님'이라는 식으로 경건한 마음을 담아 추앙하기에 바빴다.

"교감선생님, 일반 직장인도 점심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오후 시간에 근무함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고 여러 모로……. 그런데 우리는 교육공무원이잖습니까? 아이들을 돌볼 책무가 있기에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근무시간에 술 마시는 것, 개인적 차원에서는 에너지를 촉발시킬지 몰라도 교감선생님의 그러한 도덕적 해이가 전이될 수도 있고 그 냄새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끼칠 모든 악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하루에 소주 1~2병을 마셔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핑계가 아니라면 병원에 다니셔야지요."

아!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신규 교사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거 같다. 그런데 교직 생활 14년차에 레이더망에 걸려든 교감, 역시 술이 원수다. 품위와 격조를 지니며 후배 교사들에게 존댓말을 해 주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만 알코올이 위장에서 흡수되어 혈액을 통해 간으로 운반되기 시작하면 무식함과 경거망동이 융합과 통섭의 결정체가 되어 이 교감의 입에서 나오는 말

"야이 가시나야! 내가 너만한 딸이 있다 아이가! 일로 와봐라. 내가 교재 연구 도와주께. 과학 선생이라면 원서(原書)로도 공부해라이. 술 냄새 난다꼬? 이 가시나가 겁도 없이……."
 
때는 야간자율학습 시간. 학생들은 공부하다가 애매한 것을 물어보려고 교무실에 찾아왔었던 상황. 인간 대 인간으로서도, 교감 대 교사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학교와 교육에 대한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이 괴로운 상황

"교감선생님, 술은 기호 식품입니다만 개인적인 공간에서 취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선생님에 대한 호칭도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구요.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교원들이 도와줘야 할 시간에 술 취한 채 소란을 피우는 것은 더욱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퇴근하시는 게 좋겠네요."

교감의 아세트알데히드가 아세트산과 물로 분해되어 소변을 통해 배설이 되는 동안 나는 '싸가지 없는' 존재로 낙인찍혀 있다. 주폭(酒暴)에 대해 온정적인 판결을 내리는 우리나라 재판부의 성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 아무개 씨가 개발(?)했다던 경상도 특유의 '우리가 남이가' 정신, 학교사회의 관료적 문화, 교감이나 교장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승진 구조 등이 '예의 바르고 경위 바른' 사나이를 짓밟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교직 경력 15년에 나이 40까지 먹은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경험을 하고 어디까지 나이를 먹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이 어린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라며 험담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작 술주정한 본인은 머쓱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는데 '승진에는 목말라 있으면서 개념이나 철학이라고는 밥 말아 먹은' 듀오 체제로 똘똘 뭉친 사람들은 내게 비판의 칼을 들이대기 시작한다. 제 한 몸 희생하여 왕을 끝까지 보위하겠다는 신념으로.

학교사회에 몸담고 있으면, 관료제가 순기능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역기능과 폐단도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관료제는, 교감이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교감에게 소신 발언을 할 일도 없었다는 점과 어쨌든 상황의 본질은 교감의 궤도 이탈에 있다는 점을 놓치게 만들어 버린다. 나이 어린 사람이 선배 교원에게 덤빈 사건으로 왜곡해 버린다. 나이나 경력의 논리로 저급하게 상황을 해결하려 하고 권위의식을 조장하는 악순환을 생산한다.

잘 가르치는 교사가 이겨야 할까? 말 잘 듣는 교사가 이겨야 할까? 명쾌하게 정답이 나올 법도 하지만 교육현장에 있어 보면 이 문제가 어렵게만 느껴져 씁쓸할 따름이다. 교직원 회의에서 학교경영에 있어 투명하지 못한 점을 언급하면 발언 수위나 방법이 잘못 되었다며 직․간접적으로 질타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신 말도 맞지만 관리자들의 체면도 세워줘야 하지 않겠냐며 변호인 역할을 자처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승진에 목말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인 충성을 보여 졸렬하게 본인의 근무성적평정 점수를 올리려는 자가 하나. 승진은 생각하지 않지만 관리자들과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로서, 관리자의 행태는 나쁘다고 생각하나 후배들로부터 본인 역시 '테러'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위기감을 가져 관리자들과 동병상련의 의기투합을 하는 경우가 하나.

둘 다 나쁘다. 이들은 주로 '김 선생 말은 맞는데, 그래도…….' 식의 진부한 화법을 구사한다.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지 못하고 쌍팔년도 공격 루트로 관리자를 지켜내려 한다. 그들이 본질과 맥락, 진실을 외면하고 하나의 장면만으로 상황을 전복하려 한다면 대신 치러야 할 값이 크다는 사실을 꼭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예의 바르고 경위 바른 사람이니 말이다.

오늘따라 기원전 2000년께의 이집트 피라미드 상형문자를 비롯한 4000년 전 바빌로니아의 벽돌에 쓰인 문구가 내 귀를 간질인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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