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한국인, 그 힘의 뿌리는 무엇인가?

-부천족보전문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검토 완료

라영수(yesrha)등록 2015.06.20 09:03
○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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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0월 8일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의 단장 메논(Menon)은 '한국 땅에서 경제재건을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혹평하고, '런던 타임스'의 사이몬즈 기자도 똑같은 제목의 기사를 대서특필하여 전후 답답한 한국민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짓눌렀다.
산업혁명의 기술로 만든 알량한 몇 개의 무기를 들고 제국주의자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악랄한 착취를 계속하여 유럽의 문명을 토대를 쌓은 반면 착취당한 피지배 민족과 국가는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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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흉내를 낸 후진일본(倭國)은 더욱 잔악한 만행을 자행하였으
므로 가장 혹독한 식민지 침탈을 당한 한국은 어느 피압박 민족이나 국가보다 굴레를 벗어날 가능성이 없어야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처절한 6.25동족상잔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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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 단장 메논(Menon)은 인도의 정치인이며 외교관으로서 그의 조국 인도가 오늘날까지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을 거뜬히 해낸 오늘의 한국을 어떻게 평할 것인가?
(그는 1974년 78세로 사망하였다.)

IMG_01 유엔한국재건위원회 로고(좌), 인도 국방장관 사임 시 1962년의 메논, 인도 기념우표에 기억되는 메논 (우) ⓒ 라영수


유럽제국주의자들은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인간의 생명과 부와 자원을 약탈하였고, 그들이 닿은 곳마다 초토화되어 생명을 가진 '원래 사람의 땅'으로돌아가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마땅히 한국도 그 대열에 머물러 있어야했다. 그러나, 가장 악랄한 후진적 일본제국주의자에 의하여 철저히 수탈되고 파괴되어 실망과 좌절만이 남아있었고 그것도 반도막이 난 잿더미 위에서 한국은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섰으며, 그리고 멈추지 않고 문화대국으로 발돋음을 하고 있다. 서양의 논리로는 '기적'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나, 한국인에게는 '당연히' 쟁취하여야 할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 유럽왕가와 근친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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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디를 찾아보아도 300년 이상 된 나라가 없고, 혈통이 정리된 민족을 찾아볼 수 없다. 영국왕실은 1,500년을 이어온 오랜 가문이다. 그러나 왕실 혈통을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유럽 각국의 국왕이 되어 흩어진 왕손끼리 서로 근친결혼을 한다. 예를 들면, 영국왕이 삼촌이고 독일 왕과 러시아 왕이 서로 사촌간이고, 다시 영국 여왕의 딸이 러시아 왕의 마누라고, 러시아 공작의 손녀가 그리스의 여왕이고 하는 식으로 진행된 근친결혼으로 왕가는 우울증과 집착증 등의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되고, 혈우병은 왕실의 병으로 알려질 정도로 심각하게 퍼지고, 주걱턱, 꼽추, 폭식과 거식 등 외형적 기형도 빈번히 발현하고 있다.
일본왕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왜소한 외형으로부터 정신질환과 불임 등 근친결혼의 병폐가 그대로 들어나고 있다.

생물학에서는 이종 간의 교배로 얻어지는 F1 세대는 양 부모로부터 우성인자를 받게 되어 부모보다 더 우수한 개체가 된다고 하며, 반대로 동종간의 교배로 얻어지는 F1 세대는 부모의 열성인자를 받게 되어 부모세대보다 더 열성인 개체가 된다고 설명한다.

○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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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은 한국민족과 전통문화와 얼을 말살하고자 왜국의 대사업으로 1915년부터 1938년까지 23년간 <조선사> 37권을 완성한다.
천추의 역적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것도 모자라 왜국의 청을 받아 조선사편수회에 참가하여 같은 우봉(牛峰)이씨인 조카 이병도를 끌어들이고, 이병도는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충실한 졸개로서 민족의 정신을 팔아먹는데 매진한다.

이병도는 해방된 조국에서 반역의 무리들의 힘을 얻어 서울대학 사학과를 관장하고 왜국이 써준 <조선사>를 대한민국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는 전국민교육을 자행하여 100년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할 민족망실(民族亡失)의 늪으로 빠트렸다. 아재비가 팔아먹은 땅덩이는 36년만에 되찾았으나, 조카가 팔아먹은 민족정신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는 과연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img_02 아재비 이완용(좌), 조카 이병도 (중앙), 조선사편수회 주역 이마니시 류(우) ⓒ 라영수


○ 민족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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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우리민족은 동성동본 간에는 혼인(婚姻)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조회하는 원전 (原典)이 바로 족보인 것이다. 족보가 있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의 우생학적 발전을 보장하는 민족 내 모든 혈통이 과학적으로 정리된 데이터베이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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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족과 결혼을 하지 않았던 부락공동체로부터 발원한 불문율이 문자의 보편화와 사회문화의 발전으로 과학화된 기록물로 발전한 것이 족보문화이다.
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우수한 후손으로 이어지게 하는 족보문화는 인류사상 한국인을 가장 우수한 개체군으로 발전시키었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하였다.
족보문화를 우리민족의 정수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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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며 조국과 민족을 지켜내며 오랜 기간동안 때로는 영광스러웠으며 때로는 굴욕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상 유례가 없는 장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지키며 오늘날 재 웅비를 꿈꾸는 한국인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 족보전문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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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역 앞 허름한 상가건물 4층에 역시 허름한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이라 말하기에는 걸맞지 않는 70평 너비의 사무실은 정리된 족보와 아직 정리를 기다리는 족보 35,000종이 쌓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30년 동안 족보연구에만 매달려온 김원준 (65세) 관장이 2명의 자원봉사자와 꾸려가고 있는 '부천족보전문도서관'이다.

img-03 각종 족보가 정리된 서가이다. 서가가 모자라 일부 족보는 바닥에서 대기 중이다. ⓒ 라영수


  
아무도 족보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김원장은 족보야 말로 우리민족의 실체라 생각하고 세월이 갈수록 훼손 망실되는 족보를 보고 그냥 둘 수만은 없어 대학을 나와 잠시 다니던 직장을 과감하게 팽가치고 족보수집과 연구에 매달렸다.

땔깜 불쏘시개로 또는 아이들의 재기재료로 사라지는 족보를 누군가가 수집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에 달려들었으나 주위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고리타분하게 족보에 매달려 세월을 낭비(?)하는 김원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img_04 30년간 민족의 정수를 지켜온 김원준 원장 ⓒ 라영수


애초에 족보에는 하나였으므로 우리 민족이 추구해온 조상님들의 뜻에 따른다면 남남갈등, 남북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도 족보로부터 나올 수 있다고 김원장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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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은 KBS 한민족방송에 출연하여 성씨 소개를 하였다. 그러나 3개월 쯤 지나자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문제의 발단은 방송을 들은 해외 동포들이 자신의 족보를 찾아달라고 수십통씩 사연을 우편으로 보내오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최선을 다하여 족보를 찾아 답신을 하여주었으나 어설픈 문의 내용로 문의자의 원하는 정확한 답을 찾아주는데 어려움도 있었으나 3명의 봉사자로서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는 조사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 성씨에 한명이라도 연구원이 전담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나 3명의 작업원이 모두인 족보도서관으로서는 불가능한 업무인 것이었다. 문의 편지는 도서관으로만 오지 않고 KBS본사에는 더많이 날아들어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기는커녕 조국을 원망하는 계기를 줄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방송을 중단하는 것이 상책일 것으로 생각되어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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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고자하는 해외동포들은 제일먼저 김관장을 찾아온다고 한다.
그들이 김관장을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호적, 족보 관련 국립 및 시립도서관을 찾은 재외동포들은 담당관과 상담하면 답으로 듣는 것이 김관장을 찾아가라는 것이기 때문에 족보도서관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것이다.

족보도서관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없이 김관장 사비로 운영하는 민간기구이다. 정부나 공적인 이해가 아직도 족보분야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김관장이 족보연구를 시작하던 30년 전과 별 다름없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img_05 작고하신 선배 족보전문가가 신 선생이 남긴 자료들 ⓒ 라영수


70평으로는 기존의 족보자료도 정리되어 서가에 꽂히지 못한다. 정리되지 못한 체 바닥에서 대기 중인 자료가 더 많다.
최근 신모씨로부터 인수받은 자료는 아예 사무실 밖 빈 사무실을 임시로 빌려 쌓아놓아야 할 정도이다. 신씨는 우리나라 족보의 대가인 선배 족보학자로서 옛날 남대문 도서관시절부터 족보를 연구하고 필요한 분들에게 만들어 드리던 분으로서 작고하시자 자손들이 신 선생의 자료를 보관할 길이 없어 김관장에게 의뢰한 것이다.
김관장에게는 귀중한 자료로서 특히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아직은 아니나 여건이 되면 별도의 실을 할애하여 전용실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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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내 나는 족보속에 묻혀 사는 김관장의 설명에 의하면 족보연구 때문에 평생을 부인에게 '업혀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30년 동안 일궈온 꿈은 봄날 햇살보다 더 화창하다.
전국 모든 문중 및 관련 기관단체들과 연대하여 족보 클러스터인 족보문화단지를 건립하는 것이다. 족보수집연구소, 족보학회, 족보발간소, 전문가 연대, 족보의 데이터 베이스화, 해외제공용 족보 컨텐츠, '우리민족 뿌리 찾아주기' 본부, 대학 족보학과 신설 및 족보학, 제례, 관향학, 풍수지리 등 학과로 구성된 대학의 설립 등이 김관장의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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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지켜가는 힘이 바로 꿈꾸는 노인 김관장으로부터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줄한 곳에 잘 보이지 않는 여기저기에 거미줄 처럼 촘촘히 짜여있는 홍익인간 네트워크, 대한민국의 꿈은 푸르다.

덧붙이는 글 안산의지방지 '참좋은 뉴스'에도 송고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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