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의 다음 정차역, 반곡역을 아시나요?

등록문화재 165호 반곡역... 2017년 폐역 예정이라 더욱 소중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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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식(trainholic)등록 2015.07.15 14:47

반곡역의 전경 ⓒ 박장식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안동으로, 아니라면 정동진 쪽으로 가게 되면 1시간이 조금 지나 원주역이 나온다. 원주시내를 지나 터널 몇 곳을 지나면 저 멀리에 어스름하게 보이는 간이역, 이 곳이 바로 이름조차 생소한 반곡역이다.

원주역에서 9.5km 떨어져있는 간이역인 반곡역. 1941년 개역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기차역인데, 1941년 역이 열린 직후부터는 꽤나 많은 승객이 탔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가 개발되고 이촌향도 현상으로 반곡리를 사람들이 점점 떠나가게 되고, 결국 혁신도시 개발 부지로 선정되어 주민들이 모두 떠나자 여객도, 화물도 오고가지 않은 채 웅크러진 작은 역이 되었다.

더욱이 2018년에 원주역이 남쪽으로 이설되고, 원주와 제천을 기다란 터널과 교량으로 잇는 중앙선 복선화 계획으로 인해 폐역에 이르르게 되는 더욱 서글픈 운명을 맞이하려는 찰나, 2009년에 예술가들이 눈 앞에 한창 황토색 건설판이 펼쳐져 있는 반곡역으로 찾아왔다.

반곡역 대합실 반곡역은 2009년 갤러리가 되어 많은 시민들의 예술공간으로 변모했다. ⓒ 박장식


일제강점기 동원되어 중앙선을 건설했던 서글픈 역사, 개발도상기를 거치며 올라온 반곡의 역사를 거쳐 지금의 꽃향기 가득한 반곡역까지를 그려내고, 조각내고, 그리고 역 안팎을 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이 곳을 165번째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어 역의 이름을 잃어도 역의 위치를 잃지는 않도록 했다. 봄에는 좍 피는 벚꽃이 반곡역을 더욱 아름답게 빛나도록 만들어주었고, 봄철에는 자동차 한두대씩이 멈춘 간이역에 들어와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새 혁신도시에는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혁신도시에는 한국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관광공사, 국과수, 그리고 적십자사 등 정부 부처 12개가 들어섰다. 그리고 역에 열차가 멈추지 못하게 했던 황토색 공사판은 은색 건물이 되어 출퇴근 수요로써 돌아왔다. 입주가 되어가던 2014년 8월, 드디어 여객 취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혁신도시로 인해 여객이 취급되기 시작했다. 하루 네 번. 아침에는 두 번 남쪽으로 내려가는 열차가, 저녁에도 두 번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가 들어왔다. 역장님의 말에 따르면, 평일에는 열차가 한 번 올 때 40~50여명의 승객들이 열차에 오르고 서서히 열차가 출발한다고 한다.

반곡역을 지나치는 무궁화호 대부분의 열차는 반곡역을 매우 빠르게 통과한다. ⓒ 박장식


곰스크로 가는 길의 첫 번째 정차역, 반곡역에서 현실을 바라본다

2004년 MBC 베스트극장에 방영되었던 '곰스크로 가는 기차'.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6513 곰스크로 가는 기차표는 지금도 내 주머니에] 프리츠 오르트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엄태웅과 채정안이 주연으로 나왔던 작품이었다. 부부가 결혼하여 한 도시의 사람들의 영원한 이데아요, 남자의 부모와 형제들이 간절히 원했던 이상향인 곰스크로 향하는 길에 만난 간이역인 몬트하임역의 촬영지가 바로 반곡역이었다.

중간에 만난 몬트하임, 아니 반곡역에서 내린 부부는 시골길을 걸으며 걷다가 열차를 놓쳐버리게 되고, 열차는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에 그들은 당분간 눌러살게 되었다. 가격이 비싼 차표삯을 물기 위해 1년을 기다리게 되고, 결국 짐을 챙기고 다시 온 열차 앞에서 다시 한번 그들은 망설이게 된다. 결국 그들은 곰스크로의 꿈을 접고 몬트하임에 눌러살게 된다.

당시의 사람들이 몬트하임역, 아니 반곡역을 바라보는 감정은 빼어나고 몽환적으로 잘 꾸며진 영상미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꿈을 접어둔 채 모두의 몬트하임 속에서 곰스크를 바라본 데에서 나온 여운이었다. 마침 딱 알맞게도 반곡역 앞에는 몬트하임 역과 상충하는 혁신도시가 들어섰다. 자신의 곰스크로의 꿈 대신, 몬트하임, 아니 원주 반곡동의 혁신도시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끝내 곰스크를 거부한 아내와, 곰스크에 대한 생각을 끝내 펴지 못한 남편의 우유부단함에 화풀이를 한다. 아니, 그들이 눌러살면서 구매하게 된, 그리고 열차에 타지 못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쇼파에, 일자리에 다시 한 번 화풀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화풀이의 대상은 현실에 화풀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애써 찾아낸 대상이 아닐까.

현실은 곰스크를 기억 속에만 묻어두고, 상상속으로만 묻어두는 이상으로 기억하게 된다. 자초한 것이니 현실에 화낼 수조차 없다. 저 부부가 눌러살게 된 10년 후, 오래간만에 꺼내본 서랍 안에는 바래어가는 곰스크행 기차표가 묻혀져 있다. 적어도 곰스크는, 한 이상에 얽힌 운명 대신 선택에 의한 운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토록 해 주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반곡역 ⓒ 박장식


3년 뒤에는 볼 수조차 없는 몬트하임역

반곡역은 2018년 폐역까지 3년 간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폐역이 된다면 3년 뒤에는 어찌 보면 이상으로의 꿈이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몬트하임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깊은 터널로 몬트하임을 가로지르게 된다.

다행히 색색의 꽃과 화폭으로 가득찬 반곡역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곳에 서던 열차가 사라지고 선로가 걷히게 되면, 더 이상 후회도 미련도 가질 수 없는 고립된 몬트하임이 된다.

이번 여름에 서울에서 단 1시간 20분만에 갈 수 있는 반곡역과 '인생 상담'을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오래동안 쥐어 왔던 스마트폰도 잠시 두고, 어딘가의 서점에서 산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들고 말이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쉬기 위해 매일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탑승객을 맞이하는 반곡역은 앞으로 남은 역으로써의 일생동안 탑승객들을 향해 이렇게 외칠것이다. 또 열차에 탄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당신은 몬트하임의 이야기를 아느냐, 그리고 이 역에 당신은 내리고 싶어지지 않느냐."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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