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도 행복

1.3세대 모두에게 사랑받는 어르신 그림자인형극 사회적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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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후(knu99)등록 2015.08.07 20:22
"야리까리 숑숑, 수리수리 숑숑 마법!"
"위험에 처했을 때 가까운 가게로 도망가거나, 소리를 질러요!"

아동들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성범죄를 예방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올바른 대처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각색한 그림자인형극 "요정, 야리까리의 세상구경"의 한 대목이다.

인천 서구 신현초등학교에서 인형극 공연이 한창이다. 서구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OHP그림자인형극 사회적동호회 'shadow angel'이 학교를 찾은 것이다.

한 평도 되지 않아 보이는 인형극 틀 안에서 6명의 회원들의 손이 바삐 움직인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와 음악에 맞춰 몸통과 손, 발이 따로 움직이는 인형을 조종하고 배경을 바꾸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호회원들이 인천 서구 신현초등학교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 박성후


1·3세대가 호흡하는 이색현장

공연을 관람하던 1학년 학생들이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한다. 공연을 하는 노인과 관람하는 아이들, 한대 어울리기 힘든 요즘 1.3세대가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모습이 이채롭다.20여분 진행되는 공연에 지루해할 법도한데 끝까지 지켜보는 두 눈이 초롱초롱하다.

공연을 마치고 나온 회원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기위해 다가갔지만 그 것이 끝난 게 아니었다.

"내 몸은 내가 지켜요!" 밝은 색의 공연 복장을 갖춰 입은 회원들이 한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아이들도 따라 외친다. 일종의 복습이다. 그림자인형극이 재미가 있어야 하겠지만 학습효과가 먼저이기 때문이란다.

그제서야 모든 공연이 끝난 듯 아이들과 손을 마주잡고 인사를 나눈다. 몇몇 아이들은 공연 틀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처음 접한 아이들은 TV화면이라 생각했는지 어리둥절해한다.

복지관의 봉사단이 아닌 회원들의 동호회

공연 중 연신 사진을 찍던 담당 교사는 "내용 이야기만 전달 받고 아이들을 인솔해 왔을 뿐인데 어르신들이 틀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성교육을 아이들은 재미없어 하는데 인형극으로 쉽게 풀어주니 교육적 효과가 매우 좋을 것 같아요"

교사의 이야기를 옆에서 지켜보던 엄복순(71세)회원은 '다른 학교에서도 좋아하고, 고마워한다.'고 거들었다. 공연을 마친 후 지친기색 없이 당당하다.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회원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자부심을 갖게 될 때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을 터. 동행한 복지관 박성후 팀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박 팀장은 "어르신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한 마디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박 팀장은 "기존 노인복지관의 자원봉사단들은 담당자가 준비해 놓은 프로그램에 어르신들이 피동적으로 흡수되는 방식의 운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복지관은 어르신들의 활동임을 강조합니다. 인형극 동호회의 경우도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연출도 회원들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만들고, 인형 제작과 망가지는 것들의 정비도 모두 회원들의 몫이죠"

그러면서 "이렇게 하니 어르신들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요. 이름도 노인자원봉사단이 아닌 사회적동호회라고 한 것도 '동호회'라는 단어에서 표현되는 자발적 주체성을 강조하려고 한 것 입니다"
 
공연비 없이 무료, 하지만 감사인사 없으면 섭섭하기도

준비부터 공연까지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거운 장비들을 나르고 틀을 세우고 공연을 마치면 녹초가 되는 것이 당연지사.

학교의 교육복지 담당 사회복지사가 간식과 음료를 회원들에게 권하자 김순덕(68세) 회원은 "번거롭게 뭘 이런 걸 준비했어요"라며 오히려 미안해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웃어주고, 즐거워 해주니 그 것으로 족하단다.

복지관에서 운영 봉사도 함께 한다는 김순덕 회원은 "요즘은 복지관에 나와 봉사하고, 이렇게 공연이 잡히면 나와서 활동하는 것이 내 생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어린 아이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으니 내가 더 복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공연 후 일정 비용을 받아야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백옥자(67세) 회원은 "회원 간 자체 규정으로 공연비는 받고 있지 않아요. 다만 학교나 유치원에서 고맙다는 인사만 잘 해주면 좋겠어요. 공연을 마친 어른들을 뒤도 안돌아보고 알아서들 가라는 식이라면 섭섭하기도 합니다"

공연을 마친 회원들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박성후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동호회

동호회의 활동은 학교나 유치원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요정 야리까리의 세상구경' 말고도 '사랑의 샘물'이라는 작품으로 어르신들이 계신 곳도 찾아가고 있다.

전래동화 '젊어지는 샘물'을 코믹하게 각색하여 노년기 부부생활 개선을 돕고자 만든 이 작품은 경로당, 요양원, 노인대학 등을 찾아 공연하고 있다.

반응이 어떻냐는 물음에 신혜숙(72세) 회원은 "가는 곳마다 너무 짧은 것 아니냐며 아쉬워하고, 박수도 많이 쳐주세요. 특히 요양원 같은 곳에 계신 분들은 기력이 많이 떨어져 계신데도 오히려 반응이 더 좋아요. 그 분들에게 웃음만큼 더 좋은 약이 있겠어요?"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질문을 하려고 하자 복지관에서 경로식당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는 회원들은 "공연이 너무 늦어져 큰일이에요. 빨리 복지관 경로식당 봉사하러 가야 합니다. 저희들이 빠지면 남은 회원들이 너무 힘들거든요."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으면 그 것으로 족하지 더 바랄 것이 없다'며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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