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열사' 김부선 재판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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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kangesc)등록 2015.08.19 17:12
민주화 이후, 목소리 낼 곳을 못 찾은 386은 감옥 경력을 자랑하며 기득권이 됐다.

과연,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엔 그 어떤 문제도 없을까? 아니다. 거대담론의 채에는 걸러지지 않는 부조리한 일들은 여전하고, 특히 늘 관심 밖에 있던 '개인'들의 문제에 관심 가질 때가 왔다. 60년대 시인 김수영은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자신을 반성했지만, 이젠 사소한 부조리를 지나치지 않는 관심이 필요한 사회가 됐다. 개인의 문제가 국가의 문제다.

그러나 개인이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그 결과가 가혹하기 때문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빨갱이', '개념 없는 놈', '소영웅주의', '관심병 종자'로 매도되며 갈 곳을 잃는다. 따돌림당하고, 회사에서 짤리고, 벌금을 내고, 감옥에 간다. 그럼에도 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무관심으로 답한다. 그래서 그들은 철탑에 오르거나, 40일 넘게 굶거나, 부러진 화살을 겨눠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 한 아줌마가 있다. 젊은 시절 에로영화로 뜬 그녀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초대를 거절했다가 대마초 마녀사냥으로 매장당해 15년 동안 라면을 팔아 딸을 키웠다. 어렵사리 영화계에 복귀했지만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그녀는 어느 날 옆집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보게 된다. 그런데, 옆집은 난방비를 1만 원도 내지 않는 게 아닌가! 아니, 그 옆집도, 그그 옆집도. 맙소사!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계량기를 조정해서 난방비를 내지 않는 이웃집 돈 많은 권력층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3년이 지난, 2015년 8월 18일 오전 11시, 서울동부지법 제9호 법정에 김부선씨가 등장했다. 수많은 기자에 둘러싸여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김부선씨는 혼자였다. 그리고 법정 앞에서부터 피고인들끼리 신경전이 치열해서 법원 경비원은 몇 번이고 다가와 말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곧 재판이 시작됐고, 김씨의 소송대리인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피고인 윤모씨가 '연예부 기자를 불러 김부선을 매장하겠다'며 주민토론회를 방해했다"라고 주장했다. 피고인 윤씨의 소송대리인은 윤모씨가 "수차례 때린 사실은 없고, 김부선씨의 폭행을 방어하기 위해 팔을 휘젓는 등 소극적 저항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법관이 피고인들의 증인 신청을 받은 후 다음 재판 기일을 잡으려는데, 김부선씨가 손을 들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게 5분만 발언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법관은 "다른 재판들도 진행해야 하니 다음 기회에 발언할 기회를 드리겠다"며 대신 김씨가 가져온 진술서들을 참고자료로 받아 읽어보기로 했다. 법정을 나온 뒤, 김씨와 박주민 변호사간에 설전이 오갔다. 박 변호사가 "이 사건은 난방비리라는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때렸다 맞았다만 중요하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때리면 잘못"이라고 설득하자 김씨는 "이 사건은 단순한 폭행사건이 아니다. 아파트 난방비리라는 대한민국의 국가문제를 다루는 재판이다. 내가 맞았다는 사실보다 난방비리를 밝히는 게 먼저"라며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호해 달라고 제안했다.

김부선씨를 따라 사건 현장인 옥수동 J아파트에 가 보니, 정문부터 현수막이 요란했다. "나무 3그루가 최근에 고의적으로 밑통을 잘라 훼손한 일이 발생하여 성동경찰서에 수사 의뢰하였습니다." 주민대표회의에서 내건 현수막인데, 김부선씨가 나무를 훼손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내 이웃집에서 자기 집 경관을 가리는 나무를 자른 게 진실인데, 억울한 사람에게 덮어 씌운다"며 "내가 나무도둑을 잡았는데 왜 내게 현상금을 주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하루의 동행으로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는 내 능력으론 불가능하다. 주민대표회의는 사실관계를 묻는 내게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있고, 경찰도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아서, '나무도둑'이 누구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3년간 난방비리와 싸워 온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난방비리'라는 본질보다는 '에로배우 출신' '대마초 헌법소원' '성상납 폭로' '미혼모' 등등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낙인'으로 공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집회신고하는 법과 정보공개청구하는 법을 배운 '난방열사' 김부선, 그의 옆에는 또 하나의 '김부선'이 필요해 보였다.
첨부파일 김부선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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