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김상환, 대법원

조희연 선고유예는 신의 한수인가, 라플라스의 악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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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걸(chamgen)등록 2015.09.08 11:54
조희연, 김상환, 대법원
- 조희연 교육감 판결은 <신의 한 수>인가, <라플라스의 악마>가 될 것인가

'법률에 의하여'라는 말은 법원인 할 일에 대해 예언할 뿐, 그 이상의 대단한 의미는 없다.
- 손아람, <소수 의견> 속에서 올리버 웬들 훔스의 말 인용.

하지만 과연 그럴까? 법원의 판단 하나로 교육감의 자리가 날아가고 대한민국의 정치와 교육 전반이 휘청해지는 마당인데.

세월호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침몰해가는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 그 중심에 몇 가지 굵직한 사법 사건이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비롯된 원세훈 국정원장 재판.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과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 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주요 사건의 판결을 담당한 한 인물이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바로 김상환 판사다.

특히 원세훈의 법정구속과 조희연 교육감의 항소심 선고유예는 정부와 예리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이 땅에 법이 존재하는 이유와 양심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명판결로 대한민국 재판사에 길이 남을 듯하다.

9월4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서관 417호는 입추의 여지없이 방청객들로 들어찼다. 카메라 기자들은 공판 전부터 법원 건물 앞에 진을 쳤고 법정 안의 분위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차분했다.

재판부의 입정. 피고 조희연 교육감이 착석하고 약 한 시간에 걸쳐 김상환 판사의 길고도 긴 주문이 이어졌다. 공직선거관리법부터 대법원 판례까지, 언어학자의 심사 결과에서 여론에 끼친 영향까지 주문을 이루는 글은 길고도 길었다. 어지간한 집중력이 아니면 구체적으로 판사의 논리를 따라가기도 힘들만큼 긴 내용이다.

옆자리를 힐끗 보니 여기자 한 사람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놓고 기사를 이미 작성해놓은 상태에서 판사가 하는 말을 따라적기 바빴다. 무죄와 선고유예라는 말이 얼핏 보이는 걸로 보아 이미 기자들 사이에서도 선고유예에 대한 결론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나 싶었다. 다소 안도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판결의 내용은 한 마디로 롤러코스터였다.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이루어졌던 판결에 대한 판사의 판단 논리는 이쪽과 저쪽 어느 쪽도 특정하지 않은 채 양측을 오가면서 논리적으로 스스로도 내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조희연 교육감은 사실을 발언한 것인가, 의견을 말한 것인가? 그것도 3차례나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각각의 발언이 갖는 유무죄 판단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결정의 취지가 감 잡을 수 없이 좌우로 오가며 이어졌다.

1차 발언의 사실성 여부, 취지와 맥락, 언어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와 여론 동향에 끼친 영향, 조희연 캠프의 사실 확인 노력에 대한 판단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악의성 등이 치밀하게 고증되었다.
그 결과, 발언에 대한 내재적 판단과 외부 환경과의 관련성을 따져보았을 때, 유죄라고 판단하기에는 그 취지나 상황, 영향 등의 미비로 1차 발언은 명백한 무죄였다. 조희연 교육감 측에서 속으로 환호를 지를 상황이었다.

그러나, 2차 자료에 대한 판단에서 이어지면서 다시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1차 의혹 제기에 대해서 고승덕 측과 조희연 측에서 오고간 편지와 답장에 대한 평가에서 죄의 판단, 즉 사실과 의견의 판단이 더욱 엄정하게 고증되면서 조희연 교육감의 유죄가 드러났다. 트위터에서 보고 문제제기한 내용, 지인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는 영주권 소유 발언과 증거가 있다는 말을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필적 고의나 악의성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실과 의견, 의혹 제기와 책임의 거리 사에서 유죄성이 느껴질 여지가 드러난 것이다. 하나라도 유죄라면 결국 재판은 유죄, 그렇다면 조희연 교육감은 직을 상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거의 사십 분이 지나가면서 법정은 소리없이 술렁였다. 1차 발언에 대한 판단이 진행될 때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도 보인다. 이어지는 방송에서의 발언 역시 두 번째 발언의 맥락 등을 고려할 때 조희연 교육감에게 유리한 논리가 아니었다. 아니 이 즈음에서는 판사의 목소리가 방청객들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실망스런 분위기가 강했고 사람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법정 안에 있기 힘든 수십 명의 방청객들은 아예 법정 밖에서 갑론을박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의 긴 법리 해석이 끝나고 마지막 판사가 양형을 내리는 순간이 다가왔다. 앞에서 충분히, 길게 설명한 취지에 따라서 1차 발언은 무죄 2차 발언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조희연 교육감 지지자의 절망감이 다가오기도 전에 양형 선고가 바로 이어졌다.
조희연 교육감 유죄, 그러나 그 죄의 무게, 성격 등을 고려할 때 벌금 250만원에 선고유예로 1심 파기!
자세한 법리는 언론사에서 작성한 기사들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 더 밝히지는 않는다.

법정에서는 박수소리가 나고 만세가 이어졌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말과 비슷한 외침도 들렸다. 서로 부둥켜안고 가슴 벅차게 상대를 껴안으며 격려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래, 하늘은 아직 우리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골리엇과 싸우는 다윗과 같은 판사가 아직 대한민국에 살아 있다. 김상환 판사다. 이심전심으로 오가는 방청객들의 무언의 대화였다.
원세훈을 법정 구속한 법의 이치와 정의. 그러나 별다른 구체적인 법리적 해석도 없이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과연 진실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인가. 영화 <소수 의견> 원작 소설인 손아람 작가의 <소수 의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제시하고 있다.

통제되지 않은 법관의 재량권이
복잡화된 현대인의 삶을 망치고 말 것이다.
…… 사실 발견에 있어 배심원이 법관보다 더 낫다.
- 손아람, <소수 의견> 속에서 제롬 프랑크 전 미연방고등법원 재판관의 인용을 재인용.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위에 인용한 말은 분명 함의가 있지만 뒤집어볼 상황이 이번 법정에서 벌어졌다. 김상환 판사의 이번 판결은 국민참여재판의 오류를 예리하게 짚어냈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민참여재판이 무조건 정의롭다는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이나 판단을 교정하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그렇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고전적인 배심원 영화가 보여주듯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이라고 해서 진실과 정의의 눈높이가 남달리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의 분위기나 판검사 변호사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판결상의 오류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 대법관의 획일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만들어진 헌재 역시 그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족쇄가 되는 판결을 보여주어, 오히려 내부의 약자들을 보호해야하는 민주주의의 대의를 공격하는 '트로이의 목마'로 전락한지 오래라는 지적을 받는다.

약자들의 진실과 소수 의견의 존중에 귀를 기울이라는 작가의 목소리는 이렇게 이어진다.

권력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건 진실이 아니다!
들어라,
소수 의견으로 치부되고 묵살되는 약자의 목소리를
- 손아람, <소수 의견>

이번 재판이 정치적이라고 욕을 먹는 검찰과 시민들의 손에 의해 뽑힌 조희연 교육감, 과연 누가 진실이고 약자인가!

이번 재판을 살펴보며 원세훈 판결과 비교할 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유죄 판결을 무죄로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명백한 무죄를 유죄로 만들지는 못하겠지 하는 확신마저 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원세훈 재판에서 김상환 판사와 다른 판결을 내렸던 대법원이 다시 조희연 교육감 공판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점에서 이번에 '유죄-선고 유예의 판결'은 그런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김상환 판사의 진실성과 엄정한 법리가 돋보이는 판결이었다.

공판이 끝나고 나서 민변의 한웅 변호사는 선고유예가 오히려 무죄보다 낫다면서 이번 판결을 절묘한 '신의 한 수'로 평가했다. 맞는 말이다. 검찰측에서 대법원에 상고를 해도 대법원이 다투는 판단영역의 성격과 탄탄하게 짜놓은 법리를 깨기에는 대법관들조차 옹삭할 거라는 판단 아래서다. 아마 서울 교육의 혁신과 조희연 교육감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들은 그 말에 희망을 걸고 조희연 교육감의 정책이 탄력을 받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지배하 결정론적 세계관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기계적인 시나리오. 초기 조건을 이미 세팅해놓으면 마지막 결론은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라플라스적인 절대주의, 이를 뒷받침하는 권력과 언론의 야합에 의한 정의의 침몰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항소심 재판은 서울 교육을 둘러싼 싸움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자사고 폐지, 혁신학교와 질문이 있는 교실 등 조희연 교육감의 철학과 정책이 국민적 지지 속에 힘을 받으며 순항하느냐, 아니면 동력을 잃고 표류하느냐 여부에 따라 다시 내년으로 이어지는 재판의 결과는 미궁 속으로 빠질지도 모른다. 세월호의 원혼이 타전하는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들어보자.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 속에서 가라앉는 대한민국의 교육. 조희연 교육감은 자신의 운명과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 그리고 사법정의의 실현이라는 세 가지 과제와 싸우는 최전선의 자리에 서 있다.
김상환 판사의 엄정한 법리와 조희연 교육감의 개혁이 힘을 합쳐 시대정신을 상실한 골리앗 대법원을 이기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 싸움에 우리의 작은 힘을 더욱 모아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방청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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