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국정교과서는 변형된 ‘국민교육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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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걸(chamgen)등록 2015.10.21 12:12
옆에 앉은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국민교육헌장 외울 줄 알아요?"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술술 흘러나온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로 시작하는 말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랬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강제로라도 외지 못하면 매타작과 벌청소를 이길 수 없던 당시의 학생들은 누구나 국민교육헌장 암기라는 혹독한 국민의례를 통과해야만 했다. 1970년대는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 강제로 맹목적인 국가주의에 길들여지는 암흑의 시간이었다.

1968년, 장기 독재집권을 획책한 박정희가 친일 어용학자 안호상, 박종홍 등을 시켜 만들고 1994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이 폐지할 때까지 전국민의 사상과 의식을 사로잡은 국민교육헌장. 일본이 조선 민족을 황국신민화하기 위해 만든 조선칙어를 닮았다는 국민교육헌장은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늘날 국정 국사교과서의 정신적 뿌리이다. 뒤집어 말하면, 모든 교과서의 앞머리에 실어 전 국민을 하나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려던 국민교육헌장의 아바타가 바로 지금의 국정교과서다.

흔히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가 '황국신민주의·군국주의 교육을 받은 일제 식민지 경험에서 파시즘적 지배질서의 메커니즘을, 남로당에서 활동한 해방 후 경험에서 대중동원에 대한 감각을' 익힌 바탕에서 만든 것으로 평가한다. 아버지의 피와 권력의 자리를 이어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무엇이 다를까? 둘이 추구하는 역사의식과 정치력에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극우 인사 고영주의 말을 패러디하면 박근혜는 변형된 박정희다. 그래서인지 국정국사교과서는 어린 시절 온국민을 매타작과 벌청소의 공포로 몰아넣은 국민교육헌장의 21세기 버전으로 읽힌다. 70년대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을 억압하고 획일적인 국가주의 이념으로 국민들을 세뇌하려는 우민화의 표상이다. 국정교과서는 왜 우민화의 성전이 되는가를 국민교육헌장의 패러디로 다시금 돌아본다.

박정희 탄신 100주년에 바치려는
우민 교육 헌장(愚民 狡育 憲章)

나는 아버지 찬양·미화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아비(아베)의 험한 꼴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전제국가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일제 침략 미화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민이 나아갈 바를 밝혀 국정 교과서의 지표로 삼는다. 성질내는 마음과 유체이탈 몸으로, 극우적인 사관만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무시하고, 분단의 처지를 우민화의 발판으로 삼아, 위선의 힘과 복종의 정신을 기른다.

다양성과 공정성을 무시하며 획일과 갑질을 숭상하고, 경멸과 자학에 뿌리박은 뉴라이트의 전통을 이어받아, 싸늘하고 광기어린 분열 정책을 강요한다. 우리의 일베와 매카시즘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백주 테러가 극우 융성의 책략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헌납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대중 동원에 참여하고 종속되는 노예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친일 정신에 투철한 독재 파시즘만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차기 정권 창출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투기꾼과 재벌에게만 물려줄 허황된 통일 대박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잃은 우매한 국민으로서, 우익의 광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누리를 창조 경제하자.

2015.10월 변형된 박정희

이게 국정교교서를 밀어붙이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아닐까?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장기독재정권의 상징인 시월 유신에 4년 앞서 발표된 국민교육헌장. 우민화를 밀어붙이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과연 대한민국 역사에 어떤 미래를 불러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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