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님께 드리는 소시민의 답변

검토 완료

이금종(kumchonglee)등록 2015.11.02 09:51
본 기사는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작성한 "채택율 1위 검정 역사교과서 분석" (http://news.joins.com/article/18965835)에 대한 한 일반 시민의 답변입니다. 올려주신 동영상의 분량이 1시간에 가깝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변 역시 부득이 길어졌습니다. 표 안의 글은 해당 교과서에서 발췌한 내용과 이에대한 김위원의 평가이며, 그 아랫 부분은 제가 드리는 답변입니다.

목차Ⅵ.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평화(사진)
→불균형적 편집
"이 페이지는 현대사를 다루는 장의 첫 페이지로써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 또는 인물의 사진을 배열했습니다. 전부 8장이 있는데 역대 대통령 10명 중에서 유일하게 김대중 대통령만 크게 부각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쟁•북한의 남침•88올림픽•산업화와 근대화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현대사에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균형 있게 배열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민주주의"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한국 현대사는민주화의 역사입니다. 이상의 헌법 전문을 빌어 말하자면 박정희, 전두환전 대통령은 헌법파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헌법에 따르면 "경제발전"은 애초에 "민주"와 같은수준에서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제"를 "민주"와 같은 선상에서 역사를 기록하고자 한다면, 한국현대사8할은 삼성의 역사지 박정희나 전두환의 역사도 아닙니다. 사진을 보니 대한민국 정부수립사진도 있던데,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없다고 뭐라 하는 건 그야말로 불평아닐까요?

이에
앞서
한국에서도 6.25전쟁이
발발하였다(1950)
→  "한국전쟁에 대한 기술을 할 때는 이 자라나는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책이기 때문에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을 꼭 빠짐없이 기술해야 합니다."

동영상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후 한국전쟁 관련 설명에 분명 북한에 의한 남침이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6.25라는 문구가 등장할 때마다 "북한의 남침에 의해 발발한 6.25전쟁"이라 써야한다는 것은 말장난 아닐까요? 처음 동영상 보기 전 기사만 봤을 때는 정말 표기를 안했나 의심했는데, 역시 아니더군요. 그리고 "남침"에만 방점을 두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史와 그것을 둘러싼 맥락을 배우는 것 아닌가요? 매일 기계적으로 "북한의 남침에 의해 발발한..."만 앵무새처럼 말해서 남는게 무엇입니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이란 무모한 도발을 감행하는 배경이 되었음을 설명한다면 앞뒤 없이 북침이니 하는 얘기가 나올까요? "심심풀이 땅콩"처럼 이유없이 발생한 역사는 없습니다. 배경을 가르쳐야지 언표만 부여잡으려고 하면 소위 반 만년의 역사를 어찌 배우겠습니까?

미군정은 한국에 대한 사전지식과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직접 통치…(중략)…소군정은 인민 위원회의 자치를 인정하는 간접통치방식을 취하였다.…(중략)…국내 신문이 신탁통치만을 강조한 보도를 내면서…(생략)
→  "내력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결과만 소개해서, '소련은 한국인들의 의사를 반영해서 간접통치를 했고, 미국은 한국인들의 의사와 반해서 직접통치를 했다'는 식의 뉘앙스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사전지식과 준비가 부족한 상태였다"는 것이 내력입니다. 미국이 한반도에 흥미가 없었고, 특히 정치인도 아닌 군인들이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은 학계의 보편적 시각입니다. 미국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고, 소련에 긍정적인 뉘앙스를 주는 것 같다는 이유로 역사적 서술을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동영상을 보니 교과서엔 "한국인들의 의사를 반영해서"란 말이 전혀 없는 단순 사실 기술인데, 이걸 마치 교과서가 친소련적으로 기술한 것처럼 기사에는 적고있네요. 왜곡이란 이럴 때 쓰는 말 아닐까요?

국내 신문이 신탁통치만을 강조한 보도를 내면서…(중략)…그러나 이승만과 한국민주당 등 우익은 좌익과의 합작 자체를 거부하였다.
→ "굳이 강대국들의 신탁통치에 반대했던 이승만을 비롯한 우익인사들, 해방공간에서 반탁운동을 주도했던 우익세력에 대해서 비우호적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해방공간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소련이 북한에 단독정부를 세우려고 하는 음모를 일찍이 간파해서 결코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는 노선을 취했습니다."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우익세력이 반탁의 입장을 취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찬탁으로 돌아선 듯한 뉘앙스만 보여도 송진우 선생처럼 암살을 당하거나, 박헌영처럼 암살 위협을 당하며 숨어 다녀야 했지요. 소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교과서를 개혁하자면서 "음모를 일찍이 간파해서..."류의 영웅서사는 무엇입니까? "솔방울로 수류탄 만들기"의 자유대한 버젼입니까? 게대가 동영상을 보면 처음엔 마치 반탁운동이 해방이후 민족의 염원을 담아낸 중요한 운동이고 이를 이승만 대통령이 주도했다고 말씀하시다가, 엉뚱하게 소련의 음모를 미리 간파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나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등 우익은 좌익과의 협조 자체를 거부하였다.
→ "이승만과 우익이 어떤 화합과 대화의 노선보다는 단독으로 움직여서 합작정부의 어떤 가능성을 무산시켰다는 뉘앙스로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해방공간에 대해 여러 가지 사건을 묘사하면서 좌익 공산주의 세력이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막기 위해서 1946년에 벌였던 아주 끔찍한 사회혼란(1946년에 있었던 대구 공산주의자들의 폭동) 좌익의 총파업 투쟁 등과 난동 폭동 등에 관한 역사적인 기술은 하나도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해당 사건에 대한 기술이 교과서에 전혀 없다면 문제입니다. "10.1사건"이 대한민국 역사의 큰 줄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맥락 중 하나니까요. 그런데 "끔찍한 사회혼란", "폭동", "난동"이 공정하고 중립적 기술입니까? 동영상은 한 술 더 떠 이승만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지..."라고 하시는데, 부끄러우신 걸 아는지 역시 기사에는 적혀있지 않네요. 기계적 중립을 좋아하진 않지만, "무색무취"의 교과서라면 "폭동"과 "항쟁" 사이의 "사건"이란 용어가 맞겠지요.

10·19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일어났다…(중략)…무장대가 봉기
→  "10월 19일 사건을 묘사할 때는 사건의 동기가 '좌익 무장 세력이 폭동을 일으켜서 경찰관서를 습격하여 한국의 경찰들을 죽이고 경찰가족들을 살해하고, 우익인사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헀다'는 부분이 사건의 분명하게 명시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건이 좌익세력의 난동이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경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일도 있었다는 두 가지 사실을 병행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장봉기'라고 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처럼 잘못된 권력에 항거하는 뉘앙스를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기부분이 명시가 되어야 합니다."

"좌익 무장세력이 폭동을 일으켜서 경찰관서를 습격하여..."를 묘사할 때는 "제주4.3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대한 거부라는 부분과 당시 군경간의 갈등관계에 대해서도 명시하는 것이 공정한 묘사겠지요? 교과서 윗부분에 보니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다"라는 단락이 있네요. "무장봉기"를 "민주화 운동"과 착각하는 건 어휘력의 문제입니다. 차라리 조갑제 선생처럼 한자병기를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군정은 민족반역자를 청산하려는 요구를 외면하고 오히려 친일세력을 비호하였다.
→불가피한 사정 누락

불가피한 사정이란 미군정의 남한지배에 대한 준비가 없었고, 한반도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느 학자는 일본 식민지배에서 미군정으로의 변화를 이렇게 비교했지요 - "arbitrary but efficient Japanese masters for a well-meaning but ineffectual American mentor" (Kim, 1971). 이렇게 설명하면 미군정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지나요?

남북
합작
통일
정부
수립에
적극적인
인물과
정당은?
반민족
행위자
청산에
소극적인
인물과
정당은?
미군정은
민족반역자를
청산하려는
요구를
외면하고
오히려
친일세력을
비호하였다.
→ "해방공간에서의 좌익세력? 공산화세력의 준동을 막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하는 불가피한 사정에서 일제 강점기 때 중용되었던 경찰이나 고위관리들의 협조가 일부분 불가피했다는 점은 전혀 언급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물가피했다는 것은 "윌슨주의" (Wilsonian foreign policy)적 해석이거나 결과론적 해석입니다. 위원님은 미국대변인 입니까?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해방공간은 "가능성의 공간" (Political realm of possibilities)이었습니다. 말인 즉,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가건설을 위해 경쟁하는 공간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공간에서 초기에 가장 주도적이고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였습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비판하면 그 시대적 상황에서 보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해방 후 시기를 볼 때는 어째서 그 시대적 사실은 눈감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가상
포스터
코너-만약에
대통령선거에

여섯
사람들이
출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순서: 김구-김규식-김성수-박헌영-여운형-이승만
)
→ "이승만대통령은 비록 독재를 해서 국민들을 실망에 빠트리고 어려움을 끼쳤지만, 어쨌거나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하고 건국초대 대통령 아닙니까. 역사적인 비중으로 봐서 1번에 이승만 후보가 가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떡하니 남로당 공산주의세력의 박헌영, 좌파인사 여운형 후보를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남북 합작 통일 정부 수립에 적극적인 인물과 정당은?', '반민족 행위자 청산에 소극적인 인물과 정당은?'이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만을 놓고 보면 건국대통령인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작업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부정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고 가상포스터의 순서 배열(가나다순)도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곳에 "ㅋㅋㅋ"라는 것을 써야하나요? 뭐 제 개인적인 의견과 역사적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전 김구보다도 여운형이 1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웃자고 하신 얘긴데 죽자고 달려드는 건 아니길 바랍니다.

한국전쟁-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하였다…(중략)…'북한군의
전투명령'…(생략)
→트루먼 대통령의 참전 결의·유엔군 활동 필요·미군 전사자 묘지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단호히 신속하게 격퇴하기 위해서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한 부분, 16개국의 유엔군이 결성이 되어서 수많은 유엔군들이 사상하였고 특히 미군은 3만5천명이 이 전쟁에서 피를 흘린 사실, 그리고 그런 유엔군들의 전사자들이 부산에 있는 유엔묘지에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과 같이 중요한 내용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며 은혜의 인식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사실들이 다 빠져있습니다. 유엔군의 국가?활동상황?그들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의 자세한 내용?그들의 희생과 같은 점은 하나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데, 북한군의 전투명령 문서와 같은 것을 고등학생들이 왜 알아야 합니까,"

점점 더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 같아 그만둘까 싶은데, 여기까지 쓴 것이 아까워 나머지에도 답을 계속 이어 가고자 합니다. 동영상에서 역사의 양날개를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강고잫시는데, 유엔군의 참전내용을 빼먹은 것도 아니고, 미국의 참전이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다소 "좌빨"스런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엔군에 대한 "은혜의 의식"을 갖도록 할만한 자료가 없어서 편향되었다는 것은 억지가 아닐까요?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하여 회담이 지연되기도 하였다.
→ "이 부분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끔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이 이승만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원하는 휴전조건에 맞춰서 따라갈 수밖에 없었잖습니까. 대통령의 애국적이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결과적으로 남한의 이익에 부합했던 결정을 이런 식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고 있습니다."

참,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유리하게 말해야하고, 미국에게도 유리하게 말하려다 보니 이렇게 꼬이는 부분이 나오는 겁니다.

6·25전쟁은
무력으로
남북한이
하나가


없다는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중략)…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였다.
결과
한국과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한층
강화되었다.
→ "우선 전쟁보다는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상당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필요할 때는 국가나 국민이 전쟁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통일이 왜 좌절됐습니까? 마오쩌뚱의 중국군의 참전만 지시하지 않았더라면 압록강까지 북진한 연합군이 우리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북진통일로 완수할 수 있었잖습니까. 중국군의 참전으로 인해서 무산된 것을 이처럼 기술한 것은 인류사의 가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 오해가 생길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이승만대통령과 한국정부가 요구해서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였고, 그 결과 지금까지 미군의 주둔으로 인해서 북한의 적화야욕을 많이 분쇄하고 남한이 전쟁대비비용을 아껴가며 경제발전에 치중할 수 있었던 긍정적인 부분에 관한 묘사는 없습니다. 한국과 동북아에서 미군의 영향력은 한층 강화되었다고 해서 다소 미군의 한국주둔에 대해서 문제가 있는 부분만을 부각시켰습니다. 이런 점은 특별한 근거 없이 반미의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6.25 전쟁은 무력으로 남북한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는 말은 북한의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 불가능한 망상이었다는 이야기며, 동시에 남한도 엉뚱한 무력 북진통일을 할 수 없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동영상에 보면 갑자기 여기서 미국의 대테러 전쟁 얘기가 나오고, "누구나 전쟁에 참여할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평화를 강조하는 것과 국가 위기시 참여할 각오는 별개의 것입니다. 입으로 전쟁, 애국을 떠드는 분들이 바로 전쟁나면 한강대교 폭파시키고 도망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쟁을 입으로 하는 건 북한 하나로 족합니다.
미군관련 부분에선 또 다시 펜타곤 대변인으로 변신하시네요. "미군의 영향력은 한층 강화되었다"는 말도 부정적이라 하시면 도대체 어떻게 긍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까? 반미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이런 가치중립적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미군이 저지르는 각종 범죄행위, 도널드 트럼프의 헛소리 같은 것입니다. 모든 역사적 기록에 맥락도 없이 그저 "북한도 잘못이다"는 걸 넣는 것이 역사의 두 줄기를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아예 역사를 북한 중심으로 기술하자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정부가 배상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국군포로·이산가족 비극 등은 누락됨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라는 6·25전쟁 중에 있었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에 관해서 크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은 다루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비중으로 묘사돼야 할 북한이 끌고 가 지금까지도 생활이 어렵고 대대로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한의 국군포로 문제?북한의 6·25 남침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가족의 비극은 빠져있습니다. 국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부분만 다뤄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여지가 있다"는 것 만으로 역사기술을 문제삼는 것은 "역사를 통해 배우자"는 기본 사실조차 망각하는 것입니다. "국군포로 문제"와 "이산가족의 비극"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양민학살 사건을 기술하는 공간에 함께 기록되지 않은 것은 별개의 맥락이기에 당연한 것이고, 별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면 기록해야 할 부분입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재임:1969~1974)
평화
통일의
기반을
형성하는

주력하였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와
화해·협력을
도모하는
동방
정책을
펼치면서, 동·서독
주민의
상호
방문과
교역을
확대하는

활발한
교류
정책을
추진하였다.
→ 햇볓정책 일방적 강조
"이 내용만 들여다보면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대북지원정책이 중요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가장 효과적 정책으로 오해가 될 수 있는데, 서독은 빌리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하기 전에 벌써 1961년에 중앙기록보전소라는 것을 만들어서 동독 정권의 인권탄압을 전부 다 기록 해놨습니다. 통일된 이후에 '인권탄압에 핵심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법정에 세웠다'는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이정도는 그냥 공감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 햇볓정책을 기술하고 있는 부분에서 그 반작용에 대한 기술이 전혀 없다면요.

무상
원조,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이
무기와
농산물을
수출하는
주요
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엔 한국재건단 등 미국주도 한국자원 누락
"무상원조에 대해 그런 공과 양지와 음지의 평가를 제공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미국이 주도한 국제사회의 한국 지원 등을 통해 우리가 전쟁의 잿더미에서 하루 빨리 일어나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기술은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의 원조가 한국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쪽이 아니라 당장 굶어죽는 상황을 면하게 함으로써 "빨갱이"로 돌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는 것은 알고계시겠죠?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도 기간산업 좀 육성해 보려고 원조 방향을 그쪽으로 유도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일환으로 전력 자급을 위한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누군가를 존경하고 흠모하려면 차라리 이렇게 사실을 가지고 이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역사적 사실도 하나 없이 그냥 "잿더미"니 "한강의 기적"이니 하는 상투적인 말로 요즘 세대들의 심금을 울리려고 하셨다면 오산입니다.

5·16군사정변, 5·16쿠데타에 대한 서술
4·19혁명 이후 이어진 민간 차원의 평화 통일 운동과 장면 내각의 군비 축소계획에 대해 일부 군인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 "5·16 군사쿠데타의 주요한 동기는 극심한 사회혼란·작년 민간 정권의 비효율·사회적으로 북한에 대해 이완된 반공의식과 같은 것이 쿠데타의 주요한 동기가 됐습니다. 그런 것들을 주요 묘사해야 5?16 군사 쿠데타가 형식적으로는 불법이어도, 군인들이 그런 동기를 가졌다고 하는 것에 대해 묘사가 될 것입니다."

이 얘기는 보기도 전에 그럴거라 예측했습니다. "2공화국=혼란"이라는 것이 하나의 도시전설이 된 이상 어쩔 수 없겠죠. "극심한 사회혼란", "비효율", "이완된 반공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라도 좀 대면서 주장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4.19 혁명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급증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아시죠? 거기서 "데모"라고 검색하면 4.19 이후 5-6월에 정말 하루라도 데모 기사가 없는 날이 없습니다. 정말 별의 별 데모가 다 있었지요. 경찰데모도 있고, 죄수들 데모도 있고, 병원의 환자 데모도 있고. 뭐 그걸 두고 혼란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근데, 그 당시는 허정이라는 과도정부 기간이지 장면정권이 아니었잖습니까? 데모 관련 기사도 그 이후로는 감소하는 걸 보실 수 있답니다. 물론, 61년 3-4월에 다시 "데모"기사가 증가하는 걸 보고 "웃기지마라"고 하시겠지만, 그건 정부에서 "데모제한법"이란 것을 추진함에 따라 기사에 "데모"란 말이 많아진 것입니다. 장면정권을 비판하시려면 차라리 민주의 탈을 쓰고 "데모제한법"이나 "보안법 개정"을 했다는 그런 것을 비판하는 것이 좀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4월위기설이니 뭐니 했지만 실제로 장면 내각은 61년 4월 개각이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입니다. "이완된 반공의식"이요? "방첩주간" 만들고 보안법 개정하는 정부에 과잉된 반공의식이 아니라 이완이라고요? 역사를 자꾸 니편 내편 나눠놓고 사후적으로 분석하려니 이런 우스운 일이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 균형잡힌 기술이라 하면, 장면정권이 한국판 뉴딜사업인 국토개발사업도 했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만들었다는 것도 기술하는 것이 아닐까요?

6.3 시위를 억압하고 한일 협정을 체결하다.
한국군에 의해 많은 베트남 양민이 희생되었으며, 한국인 혼혈인(라이따이한)이 남겨졌다.
→부정적 묘사
"역사적으로 언급된 객관적인 사례로 묘사가 되는 게 아니라, 뭉뚱그려서 묘사가 됨으로써 국군에 대한 청소년들이 가지는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동영상에 비춰주신 교과서 내용을 보면 "베트남 파병으로 국군의 전력이 증강되고 건설업체의 해외진출과 인력수출 등이 활발해져 경제성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걸 보고 청소년들이 어떻게 국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입니까?

1968
1
북한
특수
부대가
청와대
부근까지
침입하였고,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동해에서
북한에
나포되었다. 연말에는
무장
공비 120
명이
울진·삼척
지역에
출몰하였다.
→ 북한테러누락, 개발 독재론 누락
"확실하지 않은 객관적인 사료가 생략되고 묘사되면서 완벽한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자료로 남아있는 북한의 테러(아웅산 테러?칼기 폭파?천안함?각종 울진?삼척 양민 학살 사건 등)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침입과, 울진삼척 간첩사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이야기 하는 역사적 상황에서 갑자기 그보다 10년, 20년, 30년도 더 뒤에 발생하는 "아웅산테러", "칼기폭파", "천안함"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위화도회군에 대한 기록에 5.16쿠데타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이나 다름 없습니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유럽에서 평화 통일 운동을 하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노 등을 간첩으로 체포하여 국내로 압송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 천상병을 장애인으로 만들 정도로 고문 수사를 벌였지만, 이들의 간첩 혐의는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윤이상씨를 희생자로만 묘사를 하고 있는데 윤이상씨가 평양의 김일성에게 초대를 받아 좋은 집에서 살고 여러 가지 물질적?재정적 지원을 받았다는 부분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양날개를 강조하려면 중정요원들의 납치 및 강제소환으로 인해 "자유대한"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서독 정부와 외교적 마찰이 있었다는 것 까지 기록해야 겠지요. 그런데, 교과서가 무슨 대백과 사전입니까? 그리고 위원님 논리대로라면 "간첩혐의는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마치 나중에 참여정부의 과거사위원회에서 면죄부를 준 "좌빨편향"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박정희 정권하의 대법원에서 내린 판단이었다는 점도 강조해야할 것 같습니다.

영구
집권을
꾀한
유신
체제-유신
체제는
박정희의
종신
집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기만한
독재
체제였다.
→ "전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대한 설명도 아주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신독재의 개발독재, 경제 성장을 위한 불가피성에 관한 언급은 하나도 없고, 그저 개인의 장기집권욕에 의해 빚어진 독재 체제인양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종신집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기만한 독재체제였다" 그 이상으로 어떻게 더 좋게 유신을 표현해야 합니까? 5.16 이후부터 유신 이전 까지 묶어서 독재였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유신만 꼭 집어 독재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 시각입니다. 이건 소위 일베에 물어봐도 독재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국정교과서가 나오기도 이전에 이미 "독재미화 국정교과서 반대"라는 논거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학꼐의 보편적 시각은 당시 국가와 경제시스템 간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유신과 같은 고도의 억압체제가 없이도 충분히 국가주도적 경제운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신 이전에도 이미 "사채동결"이라는 전무후무한 조치를 하는 국가였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는데,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려면 유신독재 미화는 아예 포기하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 봐도 현명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에
관한
사진

→ "전두환 대통령에 관한 사진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법정에 선 사진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7년간 대통령이고 나름대로 삼조호황이라던가 6?29 선언 등 공과(功過)가 평가돼야 할 대통령의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삼조호황"이 아니라 "3저"입니다. 그리고 "삼저호황"이 어떻게 전두환 대통령의 업적입니까? 이 주장은 일견 "전대통령이 잘해서 우리 경제 성장했다"고 믿는 분들께 "사실 그분이 잘한게 아니라 국제환경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소위 "팀킬" 아닌가요?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호사가"들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무용담도 많지 않습니까? 그정도로 족한 것 같습니다. 박정희의 에피고넨이라는 평가만으로도 족한 그에게 역사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하나 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드리자면, 다음부터 전두환 대통령의 업적을 주장하고 싶으실 땐 "3S정책"을 말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소위 요즘 한류현상이나 스포츠계에서 국제적인 위상 등의 기저에는 3S정책이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6
민주
항쟁-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 1
경찰은

청년의
죽음을
이렇게
발표하였다.
청년의
이름은
박종철이었다. 국민은
청년의
목숨을
앗아

야만적
고문과
이를
은폐하려는
경찰의
태도에
분노하였다. 또한, 민주화
요구를
폭력과
살인으로
억압하는
전두환
정권에
분노하였다. 그리고

분노는
평화적
민주화
운동의
열기로
승화되었다. 당시
국민의
희망인
고문
없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전개되었을까?
→ 상대적 경제 성장-근대화 누락

6월민주항쟁은 그야말로 현 대한민국 시스템 소위 "87체제"를 만들어낸 전국민적 동의에 기반을 둔 역사입니다. 6월 항쟁은 무슨 "좌빨혁명"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중산층 중심의 시민운동이었고, 나아가 한국의 보수적 민주화의 분수령이었습니다. 최장집 교수가 지적하듯, 7-8월 노동자 대파업에서 이미 6월 항쟁의 연대는 와해되고 보수적 중산층은 이미 노동운동에 거리감을 느끼끼 시작했습니다. 6월 항쟁을 이야기하는데 상대적 경제성장을 누락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미국의 대한무역 적자가 지속되자 이에 대한 보복이 가시화되고, 한국민주화 결의안이 통과되자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에 전두환 대통령이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주한미국대사 릴리의 친서를 보고 한미관계 악화를 우려한 "중대결단"이었다는 이야기 입니까?

전두환 정부, 국민 저항에 직면하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부는 야간 통행금지 폐지, 두발과 교복 자율화, 프로 야구단 창단 등의 유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친인척 비리…(생략)
→다른 대통령 사례는 생략

어떤 대통령이 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했는데 기록에 없는지요?

국민의 승리, 6월 민주 항쟁-언론이 진실을 외면할 때,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은…(중략)…분노한 국민은 민주헌법 정취 국민운동 본부를 결성하여 직선제 개헌과 고문 살인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우리나라 70년대, 80년대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화 투쟁의 축과 경제성장과 근대화라는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근대성장에 대한 축은 대폭 축소가 돼 있습니다. 박종철 군이 고문치사로 죽었지만, 그렇다고 정권을 '고문 살인 정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가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하고 도발적 역사적 서술입니다."

청소년의 가치 인식에 진정 영향을 주는 위험하고 도발적 역사적 서술은 바로 "박종철군이 고문치사로 죽었지만"이라고 단서를 다는 만용입니다. 이건 유신을 경제성장으로 미화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하고 고약한 서술입니다. 그의 죽음엔 좌익용공으로 몰아갈 단서 하나 없습니다. 유치하게 표현하자면 순도 100% 독재정권에 의한 고문살해였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것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분들이 흘린 피를 먹고 자란 나무라는 사실입니다. 조갑제 선생도 감히 6월 항쟁을 두고 "죽었지만"이란 단서를 달지는 않습니다. 한국전재엥 참여한 유엔군의 은혜에 대해서는 그리 강조하시면서, 어찌 자유대한을 만든 역사의 재단에 올려진 가엾은 젊은이에 대한 은혜에는 이토록 인색하십니까?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하다(김대중 전 대통령)
→틀린 사실                                                

한편, 김대중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여 6?15 남북 고옹 선언을 이끌어 냈다(2000). 그해 김대중 대통령은 …(생략)
→ 미화
"김대중 대통령이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고 묘사가 돼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틀린 사실입니다.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한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입니다. 두 번째가 김영삼 대통령이고, 김대중 대통령이 세 번째입니다."

정권(Regime)은 정부(Government)와 다릅니다. 여기서 정권교체란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여권에서 야권으로 교체되었다는 의미인걸 모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냥 아무거나 틀린 사실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수평적 정권교체"란 표현이 알맞을 것 같다고 주장하시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권위주의를 탈피한 서민 대통령…(중략)…또,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가 보안법 폐지와 사립 학교법 개정이 좌절되었고, 국회를 통과한 행정 수도 건설 특별법은…(생략)
→일방적인 미화
"노무현 대통령이 했었던 여러 가지 부정적인 과오들과 친인척 비리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부정적 부분만 확대·묘사를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선 거의 일방적인 미화라고 분류되고 있을 만한표현을 내놓고 있습니다. 평가가 이르다면, 아예 최근접 현대사는 다루질 말아야죠."

이런 주장하시면 소위 "좌빨"들이 박정희 대통령 "시바스리갈"도 기록하라는 둥의 논쟁 밖에 불러올 것이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개정이 좌절되었다"는 것을 노무현 미화라고 하자면, 그 미화의 주체가 누굽니까? "좌절"을 환영하는 쪽 아니겠습니까?

한강의 기적, 그 원동력을 찾아서 (2) 기업인의 노력-…(중략)…그러나 대표적인 기업인들은 각종 혜택을 악용하여 횡령과 비자금 조성을 일삼고, 세금을 포탈하거나 수출 대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기업인 대부분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명분으로 특별 사면되었다.
→ 대통령 정부 누락
"60년대, 70년대의 고도 성장기 개발독재 이런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역할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이 많습니다. 이병철 또는 정주용 회장같은 대기업가가 한국의 근대화와 고도성장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위원님께서 걱정하지 않으시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와 대기업중심주의 헤게모니 끄떡없습니다. 교과서에 적힌 과거 기업들의 몇 몇 사례들로 청년들이 반기업 정서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장그레" 보셨잖아요? 텍스트가 반기업정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반기업 정서를 만들기 때문에 청년들이 텍스트와 공명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와 한국 경제(그림)
→ 부정적 묘사
"악마나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만화가 결국 이런 기구들을 조종하는 것 같은 상당히 위험하고 도발적인, 부정적인 만평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국제금융기구들의 긍정적 역할, 세계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데 도움을 주는 부분에 관해 이런 식의 묘사는 잘못된 일방적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학생들이 이 만평을 보고 삼지창 든 악마가 국제금융기구를 조종한다고 생각할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요즘 학생이 무슨 "빨갱이"는 머리에 뿔났다면 믿는 학생들인줄 아십니까?

가난한 집 맏아들(만화)
→대기업 부정적 묘사
"대기업 재벌의 긍정적 기여 부분은 다 빼놓고, 그저 중소기업이나 약자들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는 그런 존재로만 묘사가 돼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거대 서사의 중심축은 언제나 대기업과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대기업의 부정적인 사실에 대한 부분적 묘사가 그런 거대 서사를 거스를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한 발 양보해 공교육이 반기업 정서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정서가 어떤 사회적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요즘 청년들이 좌경화 되었다고 걱정하시나본데, 그들이 최대치로 해봐야 반정부 시위입니다. 지금 청년들이 무슨 80년대 김문수, 심상점 처럼 공단으로 뛰어가 이름도 거창한 "동맹파업"이라도 할까 걱정이십니까?

산업화에 따른 변화와 그 문제점
→부정적 치중
"산업화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 사실은 저임금 이런 문제들을 강조하고 있는데 국가가 개발도상과정에서 특정한 시기에는 불가피하게 인권을 제약하고 임금을 내리눌러서 저임금 정책을 펴야만 수출이 가능하고 산업화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중국이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에 썼던 고도성장·수출입국·경제성장 전략도 사실은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죠.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그래도 수출자유지역에 가서 여공들을 격려하고, 여공들을 위한 야간학교를 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임금 정책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학생들이 1970년대에 대해 균형 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정말 독재와 산업화의 균형적 서술이라 하면 오히려 김형아 교수가 쓴 박정희 시기의 경제발전과 거기에 자발적/구조적으로 동원된 공고학생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독재"란 말만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 마냥 "경제"를 외치는 거 언제까지 해야합니까?

1970년대 통제와 억압의 사회상-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국민의 일상에 더한 통제와 억압 속에는 정권의 안정을 통해 장기 독재를 추구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 불가피성 누락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하고,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서 검소한 생활을 장려하고 했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는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무슨 검소한 생활입니까? 이발 안하고 기르는 것이 오히려 검소한 생활이겠네요. 가정의례준칙은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전두환을 존경하고 찬양하고 싶다면, 고교평준화 정책이나, 건강보험 도입, 과외금지 같은 것으로 하시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후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묶어서 적어 보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남북관계는 여전히 진행중인 역사이고, 이에 대한 평가를 지금 당장 내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말씀하신 부분이 누락되었다면 포함시켜야겠지만, 이것이 국정화의 근거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난 수년 간 보수정권 하에서 검정을 담당했던 교육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것 아닙니까?

동영상을 보면 시종일관 준엄한 심판자의 목소리로 열심히 설명하시는데, 솔직히 많이 실망했습니다. 한간의 소문만 듣고 김위원님이 나름 "합리적 보수"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동영상을 보니 실망을 넘어 절망입니다. 국정화 반대에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은 아니지만, 갑자기 반대운동 하는 분들이 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상대 중에서 그나마 지성과 품위를 가췄다고 생각했던 분이 한 시간 가까지 토해낸 사자후가 겨우 이런 수준이라면, 귀하의 동영상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저 한 명망가의 출사표(?)에 감탄하며 "좌빨척결"을 외칠 홍위병들의 수준은 어떨지 불보듯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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