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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는 최고인 이 영화, 소프트웨어는 글쎄...

[리뷰] 큰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온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16.01.18 18:32최종업데이트16.04.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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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의 신작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포스터.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의 화려한 귀환'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를 뒤흔들 문제작'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홍보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가 드디어 관객들 앞에 민낯을 드러냈다. 얼마 전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아래 <레버넌트>)를 미리 관람한 후배 하나가 감상평을 보내왔다. 영상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사에서 PD로 일하는 그의 문자메시지는 영화에 관한 기대감을 더 부풀렸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몰입도가 대단합니다. 그리즐리 곰의 입김이 카메라 렌즈를 뿌옇게 만드는 디테일, 인공적인 조명을 배제하고도 아름다운 19세기 미국의 설원, 모든 장면에 스며든 알레한드로 감독의 완벽주의, 레오나르도의 한을 품은 듯한 연기력.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영화네요. 120점을 주고 싶습니다."

꼭 영화광이 아니더라도 이쯤 되면 보지 않기가 힘들다. 사실 알레한드로 감독의 전작 <아모레스 페로스>와 <바벨>은 개인적으로 '내 마음속 최고의 영화들'에 속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악마성을 중남미 특유의 감성으로 영상에 옮긴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는 미학적 충격과 동시에 감성적 파문을 일으켰고, <바벨>을 통해 보여준 '세상사 모든 것들에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멕시코 출신 감독의 철학과 세계인식 역시 놀라웠다.

어떤 관점에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레버넌트>에선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다수 보여진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레버넌트> 개봉 첫날인 14일. 예의 큰 기대감을 품고 영화와 만났다. 후배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야생동물과 인디언이 지배하던 19세기 미국 서북부의 광활한 설원을 훑어가는 알레한드로 카메라의 움직임은 미려했고, 컴퓨터그래픽으로 탄생시킨 것이 분명한 회색곰과 아메리카들소 무리 또한 실물이라 우겨도 될 만큼 사실적이었다. 여기에 극단의 상황에서 극대화된 연기력을 발휘한 '미남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까지.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2시간 36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본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었다. 영화의 '하드웨어'를 공부했고 이를 중시하는 후배와 달리, 내가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영상 안에 담긴 철학과 메시지라는 '소프트웨어'이다.

<레버넌트>의 하드웨어에 문제를 제기할 영화팬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에 관해선 앞서 상세히 언급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번 작품엔 알레한드로 감독의 특·장점이었던, 오래 고민해서 관객 앞에 내놓는 중량감 있는 메시지와 인간과 세계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란 소프트웨어가 빠져있다.

아주 간략하게 말해보자. 동·서양을 불문하고 식구를 죽인 사람과는 불구대천(不俱戴天 :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을 만큼 큰 원한)이다. <레버넌트>를 딱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들을 죽인 불구대천 원수를 찾아 눈밭을 기어간 아버지의 복수'다. 여기에도 '자식 사랑'이란 메시지와 철학이 담겼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과장이 아닐까.

<레버넌트>의 새로운 발견 2가지, 톰 하디와 마술적 리얼리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선보인 피츠제럴드 역의 톰 하디.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시를 쓰지 않는 시인 혹은, 사유하지 않는 철학자를 우리는 뭐라 불러야 할까. "영화감독이 시인이나 철학자는 아니지 않으냐"라는 반론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묻자. "그럼 영화감독이 멋진 장면 연출에만 애면글면하는 카메라 기술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레버넌트>에 대한 평가가 '주관'과 '관점'을 지닌 개개인의 몫인 것처럼.

기대가 컸기에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준 영화 <레버넌트>. 딱 2가지는 나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의 연기력에 전혀 밀리지 않는 영국배우 톰 하디(피츠제럴드 역)의 재발견이 그중 하나다. 세속적 욕망과 인간적 도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톰 하디의 눈빛은 악인의 것임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나머지 하나는 중남미 예술가들의 전매특허라 할 마술적 리얼리즘이 <레버넌트> 곳곳에 드러난다는 것. 꿈인 듯 현실인 듯 나타나는 인디언 여인과 뼈로 쌓아올린 거대한 탑, 거기에 덧붙여진 불과 얼음의 이미지는 알레한드로 감독이 멕시코에서 태어나 그 문화의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런 뜬금없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알레한드로의 다음 작품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거장'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레버넌트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톰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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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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