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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조롱! <데드풀> 성인개그로 보인 역대급 풍자들

[리뷰] 팀 밀러 감독의 만화적 위트 확인...자막까지 깨알 재미

16.02.21 22:37최종업데이트16.04.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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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 유머와 위트가 가득한 영화 <데드풀>의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포털사이트 등에 연재되는 웹툰과 각종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21세기. "만화는 진지한 철학과 밀도 높은 위트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말하면 웹툰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욕을 얻어먹기 딱 좋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철학과 위트를 담아낸 만화'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런 편견을 깨준 최초의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었다. 뒤늦게 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붉은 돼지> 속에 담긴 디스토피아적 감수성과 은유적인 반전의 메시지는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철학적 깨달음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우연히 관람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프랭크 밀러의 공동연출작 <씬 시티>는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도 진지하고 밀도 높은 사회비판적 전언을 영상에 담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했다. 이 영화는 타락한 성직자가 횡행하는 물신숭배의 사회를 어둡고 암울한 화면과 안티영웅들의 행위 안에서 성찰한 수작이다.

최근 개봉한 팀 밀러 감독의 <데드풀>은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데드풀>의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위트 있는 성인유머의 능수능란한 구사'. 원작 만화의 저질스런 우스개와 잔인한 묘사 속에 담긴 실소를 영상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출현

세계평화와 인류구원을 이야기하는 슈퍼히어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슈퍼히어로 캐릭터 '데드풀'.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일단 캐릭터 설정부터가 기존에 존재하던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주인공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 분)은 세계평화와 인류구원을 위해 싸우던 '선배 슈퍼히어로들'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비웃는다. 그가 악당과 맞서는 이유는 딱 하나. 자신과 자신의 여자친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데드풀이 사랑하는 여인으로 등장하는 바네사(모레나 바카린 분) 또한 이전 슈퍼히어로들의 연인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바네사의 극중 직업은 매춘부다. 둘의 사랑은 애틋함이나 낭만적이지 않다. 단순히 275달러의 돈을 주고받는 '48분간의 성매매'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데드풀>이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이유 중 하나다.

지구의 평화와 인류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악당을 죽여야 하는 통상의 슈퍼히어로 같은 고뇌도 이 영화엔 없다. 고속도로와 술집, 스트립바의 화장실과 거대한 폐선이 정박된 부두에서 데드풀은 롤러코스트를 타듯 즐겁게(?) 악당들의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고, 팔다리를 잘라버린다. 피와 살점이 튄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점잖은 슈퍼히어로 '콜로서스'는 진지하게 충고한다. "이제 개인적인 복수는 그만두고 우리와 함께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자"고. 이에 대한 데드풀의 답변은 간단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데드풀에게 '엑스맨'을 포함한 이전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은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난잡한 화면 속에 숨겨진 위트 있는 메시지

<데드풀>은 이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피 튀기는 성인용 러브스토리'다. 주인공 데드풀(좌)과 그의 연인 바네사.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여기까지만 보자면 <데드풀>은 한없이 가볍고 철학과 메시지가 부재한 저질 만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팀 밀러 감독은 유치한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대사 속에 풍자와 해학을 담아내고 있다. 진의를 영사막 뒤에 숨긴 것이다. 마치 군사독재시대 때 한국의 시인들이 행간에 비판의식을 숨겼던 것처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때론 비판적 성찰과 직설보다 농담 같은 위트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걸. 지고지순한 남녀 주인공을 등장시켜 현실에선 존재하기 힘든 숭고한 사랑을 칭얼대는 로맨스 영화와 고만고만한 슈퍼히어로 영화는 팀 밀러의 만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재기 넘치는 연출과 유쾌한 비꼼 앞에 꼬리를 내린다.

<데드풀>은 '성인유머의 격조'를 갖춘 영화다. 난잡한 농담과 유혈 낭자한 화면에서 감독이 숨겨놓은 세태비판의 메시지를 찾는 재미가 쏠쏠한 <데드풀>. 바로 이게 이 영화가 흥행가도에 올라선 이유가 아닐까.

피 튀기는 성인용 러브스토리인 <데드풀>의 풍자대상이 된 건 비단 슈퍼히어로만이 아니다. 팀 밀러는 아일랜드 여가수 시네이드 오코너와 <에이리언>의 여주인공 리플리, <테이큰>의 히어로 리암 니슨과 영국의 미남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유머의 소재로 활용한다. 적재적소에서 튀어나오는 그들의 이름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또 하나.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대체 누가 한국어 자막을 만든 걸까?" <데드풀>은 자막에서까지 성인용 위트와 유머가 넘쳐난다. 누가 봐도 자막 제작자의 만만찮은 공력(?)이 그대로 전달되기에 나 역시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데드풀 팀 밀러 성인용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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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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