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유일체제에는 제국주의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는 일본의 선민(신민)사상의 광기보다 더 한 신격화라는 우상의 눈물(?), 아니 웃음이 있다. 김정은은 나이와 무관하게 참모들에게 반말과 비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유일체제란 인간의 신격화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천황(아니 일본왕)이 사람이 아닌 신(?)이듯이 북한의 독재자는 신이다.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신격화를 뒷받침해주는 이론인 '유일체제'를 신봉하거나, 김씨 일족의 영향으로 호의호강 하는 5만의 선민과 조선시대 반촌(泮村) 격일 수도 있는 평양의 거주자들이 현실의 체제를 인정하는 한 적어도 유일체제의 붕괴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이승만은 자아의 개념이 너무 강해 독재로 갔고 해방정국 3년과 1년의 제2공화국(이 시기는 미군정과 극심한 혼란기였으나 민주적으로는 가장 욕구가 왕성하고 광복 이후 이 땅의 민주정이 가장 꽃피운 시기)의 피로한 민주주의(?)시절의 자유를 제외하면 군사독재도 있었고, 문민독재도 있었다.부수와 진보의 규정은 기득권과의 연관관계가 깊다. 사전적 의미대로 진보성이라는 규정의 맞춤옷을 지어 입을 수 있는 정당은 지금 우리나라에는 정의당의 진보적인 당령과 아예 이름부터가 진보정당인 작은 당파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머지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나의 성향이 중도보수이든 중도진보가 되든 모두 보수정당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우리체제의 상태는 어떤가? 동물농장에서 지도자가 바뀌는 과정과 1984년에서 빅 브라더가 존재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우리의 경우는 동물농장의 형태에 가까운 지도자의 존재성 부각이다. 쉽게 말하자면 극한의 공포로 인해 생긴 것이든 스스로의 필요와 근성에 의해 생긴 것이든, 아니면 살기 위한 고육지책이든 공포의 형태든 유연한 지도자에 의한 편의의 소 독재(小 獨裁)형태든, 어떤 사회의 전제적인 민주주의 체제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 형태를 용인하거나, 그 형태에 빌붙어 살거나, 그 체제에 비굴하고 아부하여 생존을 영위하려는 집단의 존재가 단단한 블록의 형태로 기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인지하는 재바른 자들의 비굴이나 아부에서 나온다,'는 이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회의에서 경직된 모습이 연출되는 것은 어느 조직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겠지만, 시민민주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은 조금 다르다. 극도로 경직된 북한의 경우는 극단이겠지만 사회주의지만 경제에서 자본주의체제를 지향하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이미 30년 전에 민주주의 체제를 선탑한 대한민국의 권력 그룹들의 회의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실소가 터져 나온다. 도대체 왜 지도자라는 자들은 회의주재가 아닌 통과의례를 하고 회의참석자들은 고양이에게 잡혀온 쥐 마냥 죄인들처럼 침묵하거나, 무슨 내용을 적는지는 모르나 그저 버릇처럼 똑 같은 종이에 적어대기만 하는지. 기관포로 몸을 날려 생존을 말살하는 것이나 정치적인 선언으로 명예를 날려버리는 것은, 형태는 달라도 상황은 다를 것이 없는 똑 같은 살인이다.매스컴의 영향을 그리 받지 않으므로 나는 가볍다못해 경박해지는 사회로의 아무렇지도 않은 전환을 경계한다. 전제체제에서 정치에 관심을 돌리기 위해 섹스와 스포츠, 그리고 스피드를 용인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바란다면, TV에서 나오는 드라마에 넋을 잃고 먹방에 침 흘리고 오디션 프로에 열광하면 된다. 비주류가 주류로 등극하는 현상은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지식과 지혜의 유한공간을 획득하지 못한 무뇌아(無腦兒)의 상태에서 받는 매스컴의 영향은 치명이다."적어도 내 삶이 무미건조(無味乾燥)의 차원은 벗어나려면 생각하는 기능의 획득은 필수다. 사고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하는 존재가치는 희미해진다. 개인의 역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그 역사도 제대로 된 사회의 민주적 기반 아래 서는 역사일 때 비로소 포근해지는 것이며, 배우고 익히고 때로 감상할 수 있는 지적 성숙이 이뤄져야 의미를 갖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다. '왜 사냐 건 웃지요.'라고. 그러나 나는 말한다. 왜 사냐고 누가 물었을 때 절대 웃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스스로의 방기(放棄)이기 때문이다." #보수 #진보 #이승만 #일본왕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