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을 흔들리게 한 이모티콘

검토 완료

이경모(lgmo)등록 2016.03.17 11:12

2015년 12월27일에 친구에게 보낸 문자와 답장 ⓒ 이경모


'30년 사업하면서 처음으로 금전적인 약속을 못 지켰다.
미안하고 고마워. 가까운 시일 내에 갚도록 노력할게.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야.
새해에는 건강 뒤에 재물도 따라왔으면 좋겠다.~~^^'
작년 말에 친구에게 보낸 문자다.
거래처에 결제대금이 부족하여 돈을 빌렸는데 수금이 안 돼 약속을 어겼다.
돈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여서 빌릴 때도 어렵게 말을 꺼내었는데,
약속도 못 지켜 친구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에게도 많이 화가 났었다.
금융거래 신용등급은 1등급인데 친구에게 최하위 급을 받게 된 것이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
'?'는 문장 부호 가운데 마침표의 하나로 물음이나 의심 또는 반어, 의문, 가벼운 감탄, 빈정거림 따위를 나타낼 때 쓰인다.
답장을 받고 머리를 둔탁한 둔기로 맞은 것 같았다. 무슨 의미로 보낸 '?'일까.
그것도 열여섯 개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함께 사업도 했던 친구고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친구인데 '?'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돈 잃고 친구도 잃은 것은 아닐까. 몹쓸 생각만 꼬리를 물었다.
고민 고민하다가 오후 늦게 여직원 두 명에게 문자를 보여주면서 자문을 구했다.
여직원들 역시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 답을 주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 직원이
"사장님, 사장님 친구 분한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전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했다.
"친구야 내 문자 봤지?"
"응, 바빠서 이모티콘으로 답장했는데, 엄지손가락을 펴고 있는 이모티콘 네 개를 보내면서 응원했다."
"물음표만 열여섯 개 찍혔어."
"그것 참 희한하다."
"아무튼 친구야 고맙고 미안해."
전화를 걸어 친구의 맘은 확인했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아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직원에게 '사장님 최고' 라고 쓰고 엄지손가락을 편 이모티콘을 두 개 보내보라고 했다.
'사장님 최고' 뒤에 '?'가 여덟 개 따라 왔다.

두 번째 부터 출시한 폰(오른 쪽 사진) 자판에는 이모티콘 기능이 있다. ⓒ 이경모


의문이 풀렸다.
내 스마트 폰은 S사에서 처음 출시한 폰이다. 이 폰은 문자를 보낼 때 이모티콘이 없어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에 출시한 폰은 이모티콘 기능이 있다.
결론은 스마트 폰 간에 호환이 안 돼 이모티콘 하나에 네 개의'?'가 찍힌 것이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지면서 세상이 시끄럽다. 인공지능 로봇에 인간이 지배 를 당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전원을 꺼버리면 된다고 한다. 인간이 만든 기기에 인간이 놀라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늦어서 미안하네. 방금 1400만 원 친구 통장에 입금했어. 고맙고 감사하다.'
'뭘~ 미안해. 다음에 또 필요하면 말해라. 사업 잘 되어서 말 안 하면 더 좋고. 수고.^^'

따뜻한 봄 햇살 같은 문자가 부호 하나 틀리지 않고 이번에는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봄꽃들이 서로 예쁜 자태를 뽐내려고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친구하고 봄꽃이 되고 싶은 날이다.
덧붙이는 글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4월호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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