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구등대 앞에 세워진 강강술래 조형물. 강강술래는 남도사람들의 멋과 풍류, 해학과 한이 서려 있는 놀이다. ⓒ 이돈삼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물러가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낮의 햇살은 따사롭기까지 하다. 하늘도 파랗다. 문득, 황홀한 해넘이가 뇌리를 스친다. '땅끝' 해남의 바닷가로 간다. 지난 2월 21일이었다.
목적지는 목포구항로표지관리소다. 항로표지관리소는 등대의 공식 이름이다. 예전 표현을 빌리면 목포구등대(木浦口燈臺)다. 목포를 오가는 길목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오가도록 길라잡이를 맡고 있다. 관광자원으로써의 가치도 높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등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랫말이다. 그만큼 낭만적이다. 언제라도 만나고픈 그리움의 대상이다. 뱃길여행 때 만나는 등대가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이유다.
▲ 목포구등대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 바닷가에 있는 마늘밭에서 마늘이 파릇파릇 싹을 틔워 올리고 있다. ⓒ 이돈삼
▲ 목포구등대로 가는 길목 풍경. 한 아낙네가 봄동을 수확하고 있다. 봄동을 상큼한 맛으로 미각을 일깨워주는 남새다. ⓒ 이돈삼
목포구등대는 목포 외달도와 달리도 앞에 있다. 화원반도를 붙잡고 서 있다. 목포항을 떠난 배가 고하도를 돌아 바다로 나가면서 만나는 곳이다. 목포구등대지만,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속한다.
자동차를 타고 목포구등대를 찾아가는 길이 호젓하다. 섬마을의 길 같다. 오가는 차량도 드물다. 바닷가의 야트막한 구릉에선 봄동과 시금치 수확이 한창이다. 바닷바람이 불어넣은 달달한 맛을 떠올리니 입안에 침이 고인다. 마늘과 대파도 파릇파릇 생기를 머금고 있다.
▲ 목포구등대 앞바다에 떠있는 섬 목포 외달도. '사랑의 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이들이 심심찮게 찾고 있다. ⓒ 이돈삼
목포구등대 입구에 낙조 전망대가 있다. 바닷가를 따라 설치돼 있는 나무 데크 길이 예쁘다. 해안을 따라 난 산책로도 다소곳하다. 바다 건너편으로 달리도와 외달도, 장좌도와 율도가 떠 있다.
달리도는 섬이 반달 모양으로 생겼다. 한때 달도라 불렸다. 외달도는 '사랑의 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연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새천년대교 공사 현장도 아스라이 보인다.
▲ 목포구등대 앞에 있는 삼학도 조형물. 목포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장수에 반한 세 처녀의 전설이 서려 있다. ⓒ 이돈삼
▲ 목포구등대 앞에 설치된 조형물들. 해남을 상징하는 강강술래와 목포의 상징 삼학도가 조형물로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목포와 해남을 상징하는 삼학도와 강강술래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삼학도에는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장수에 반한 세 처녀의 전설이 서려 있다. 무사를 향한 그리움에 사무쳐 죽은 세 처녀가 학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무사가 학에 화살을 겨눠 떨어뜨렸고, 그 학이 유달산 앞바다에 세 개의 섬으로 솟았다는 얘기다.
강강술래는 남도를 대표하는 노래이고 춤이다. 남도사람들의 멋과 풍류, 해학과 한이 서려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속이려는 이순신의 전술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 목포구등대에 설치돼 있는 등대 모형들. 어청도와 홍도, 팔미도의 등대 등 우리나라와 외국의 등대가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 이돈삼
▲ 목포구등대 앞으로 배들이 오가고 있다. 목포항에서 나오는 배들이다. 목포구등대는 목포를 오가는 길목에서 불을 밝힌다. ⓒ 이돈삼
목포구등대로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해상용 등명기(燈明機)가 줄지어 있다. 태양광 발전을 통해 밤에 항로나 암초의 위치를 알려주는 조명장비다. 시대에 따른 등명기의 변천과정을 볼 수 있다. 어청도·홍도·팔미도의 등대와 파로스등대도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위치와 특징을 곁들여 놓았다. 안개가 짙게 깔렸을 때 치는 무종도 있다. 1900년대 초에 쓰던 것이다.
왼편 바닷가에는 목포구등대가 서 있다. 유럽풍으로 높이가 36.5m나 된다. 등롱이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새벽을 일깨우는 닭의 벼슬 같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 2003년에 들어섰다.
등대 아래는 등대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각양각색 등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항해하는 체험도 재미를 선사한다. 방문기념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받을 수도 있다. 학생들의 체험학습 공간으로 좋겠다.
▲ 목포구등대 아래에 꾸며진 등대전시관. 각양각색 등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돈삼
▲ 목포구등대의 등탑 풍경. 아래로 보이는 바다로 배들이 오가고, 그 너머로 올망졸망한 섬들이 떠 있다. ⓒ 이돈삼
등대지기(항로표지관리원)의 안내를 받아 등탑으로 올라간다. 소라 껍데기의 속처럼 빙빙 돌아가는 계단이 별나다. 입체감과 함께 예술성이 배어있다. 등탑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아름답다. 바다에 떠 있는 올망졸망한 섬들이 한 폭의 수묵화다.
외달도, 달리도, 율도는 물론 불무기도, 광사도, 납덕도까지 보인다. 새천년대교도 더 가까이 보인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바다에서는 배들이 무시로 오가고 있다. 이 바닷길이 일제강점기 때 수탈의 관문이었다. 우리 땅에서 난 곡물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 목포구등대로 가는 길목. 오른편으로는 오래 전에 쓰던 등명기가 전시돼 있다. 단순한 등대라기보다 등대박물관에 버금간다. ⓒ 이돈삼
▲ 지금은 퇴역한 옛 목포구등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 등대건축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 이돈삼
옛 등대는 언덕 위에 따로 서 있다. 수로미산의 산자락이다. 겉모양에서 세월의 더께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설치된 대다수 등대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 1908년 1월 조선총독부 체신국에 의해 불을 밝혔다. 수탈을 원활히 하고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제국의 불빛'으로 불리는 이유다.
등대는 둥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높이 7m에 이른다. 체구는 작지만 여기서 뿜어내는 불빛이 30여㎞ 밖의 안좌도에서도 보였단다. 뱃길의 안전에 큰 도움이 됐다. 인공위성 자동 위치측정 시스템(GPS)이 없던 시절, 배들은 이 불빛에 의지해 목포항을 드나들었다. 1964년 무인등대에서 유인등대로 바뀌었다.
2003년엔 새 등대에 역할을 물려주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등대이면서 겉모양이 아름다워서다. 우리나라 등대건축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 옛 목포구등대.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등대이면서 우리나라 등대건축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등대가 새로운 목포구등대다. ⓒ 이돈삼
해가 기울면서 주홍빛으로 물드는 서녘 하늘과 바다도 장관이다. 빨간 불덩이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까지 주홍빛으로 물들인다. 바다도 금세 빨갛게 물들어간다. 흡사 빨간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것 같다.
그 바다 위를 배 한 척이 떠다닌다. 황홀경이다. 낙조 전망대에 서서 그 풍광을 바라보는 연인까지도 한 폭의 그림이다. 나도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다. 바다에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 목포구등대의 해넘이 풍경. 서녘 하늘과 바다가 빨갛게 물들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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