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어느 날 아내와 나, 형님 내외분, 그리고 내 수채화 샘 그렇게 우리 다섯은 일행을 이루어 산골인 우리 고장 마을을 출발해서 바닷가 마을을 찾아 나섰다. 물론 중간에서 차 셋이 모여 둘에게는 휴가(?)를 드리고 튼튼한 SUV차로 바꾸어 탔다. 앞에 형님 내외분 타고 운전하시고, 뒤에 우리 내외 그리고 내 옆에 수채화 샘. 우리 일행의 총 나이 합이 우리 나이로 360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계산을 다 할까?
목적지는 <*자나무집>. 목적은 쭈꾸미 요리 시식.
물론 내 아내가 전 날 '쭈꾸미를 먹는다'는 말에 설레어(내 아내는 해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회, 멍게, 쭈꾸미. 그래서 젊었을 때 아내가 화가 나 있으면 회를 사 들고 들어갔다. 그러면 금방 풀린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낸 집이다. 언뜻 지나가는 말로 들은 건 고창 어딘가에 있다 했다
조수석 통신 45 왈,
"어디로 갈 건데?"
내 곁 통신 33 왈,
"고창 <*자나무집> 갈 건데요!"
"아, 거기 우리도 알아."
"가보셨어요?"
"그러엄!"
조수석 통신 45께서 뻐기신다.
내 곁 통신 33, 호기심이 금방 발동한다.
"맛있어요? 멀어요? 언제 가보셨어요? 길은 알아요?"
조수석 통신 45께서 이 대답을 어떻게 한꺼번에 다 한다는 말인가?
운전수 통신 49 왈,
"제가 길을 알아요!"
내 곁 통신 33,
"그래도 네비게이션 찍고 가시지요."
내 곁 통신 33께서는 길 찾는 데 걱정이 되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며 갔는데도 길이 이리 꼬불 저리 꼬불 한 시간 하고도 여러 분을 달렸는데도 목적지는 오리무중이다. 논길도 지나고 드넓은 신작로(?)도 지나고 그래도 바닷가는 나타날 조짐이 전혀 안 보인다. 그런데 야산을 돌아 마을길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길찾는 데 고생 좀 하는가 싶었다.
왜냐? 내 머리 속에는 선입견이란 녀석이 벌써 똬리를 턱 틀어버렸기 때문이다.
'쭈꾸미는 해물이다.
그러므로 바닷가에서 팔 거다.
그러니 우리가 가는 집도 바닷가에 있을 거다.
해서 바다가 안 보이니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바다가 보이지를 않아서다.
웬걸? 마을 초입에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왈,
<*자나무집>
운전수 통신 49 왈,
"저깁니다. 다 왔어요."
나 통신 42 뜨악해서 왈,
"저 집에서 쭈꾸미를 팔아요? 바닷가도 아닌데..."
그런데 길가 여기저기 차들이 많이도 주차되어 있다. 관광버스도 여러 대 서 있다.
그때 내 수채화 샘 통신 41 왈,
"아, 여기 저도 한 번 와 본 적이 있어요."
그러니 우리 일행 중 세 분은 이미 와 보신 경력(?)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 내외만 초행길이라는 말씀.
집이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자 보통 넓은 게 아니다. 별채도 있고 본채도 있었는데 우리는 별채로 안내를 받았다. 이 정도 되면 기업 수준이다.
식탁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거의 만원. 우리도 탁자 둘을 배정받아 신발을 벗고 올라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고, 시골길 논길을 한 시간 반이나 헤매다가 찾아온 쭈꾸미집. 기대 만땅이었다.
'쭈꾸미 두 접시, 해물국수 대, 소주 1병'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이 야그 저 야그. 내가 뭔가가 궁금해져서 스마트폰 검색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 곁 통신 33께서 목소리를 높여,
"스토옵! 그대로 계세요!"
그리고는 일어서더니 내 검색 꼬라지를 찰칵해대신다. 좀 어리둥절했지만 무슨 사연이 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다. (후에 안 얘기지만, 아마도 맨날 허리를 펴라는 얘기를 해도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고 여겨 증거를 보여주려고 했었나 보다.)
'그런데 이것이 나를 충격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줄이야!'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쭈꾸미 두 접시 대령. 아니 그런데 그게.
나 통신 42 왈,
"에게에, 이게 뭐야? 이걸 누구 코에 붙여?"
나온 주꾸미 두 접시 분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푸짐한 쭈꾸미를 기대했었나 보다.
옛날 서울 왕십리 어느 해물을 파는 가게에서 쭈꾸미를 아내와 둘이 먹어본 적이 있었다. 샤브샤브 형태로 나오는 요리였는데 몸통에는 알이 빽빽이 들어차서 마치 잘 찐 찰꼬두밥을 먹는 맛이어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 본격적인 그런 쭈꾸미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말은 안 했지만 아내보다 속으로는 내가 더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 맛있었던 쭈꾸미알 밥을 먹어 볼거라고!'
그런데 뎅그마니(?) 나온 데친 쭈꾸미요리 두 접시가 내 눈에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실망 또 실망 아니 허망하기까지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던가?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아무렇지도 않으시다. 으레 그러려니 하시는 모양이다. 그냥 맛있게들 잡수신다.
나도 젓가락들 들고 부실한 그 쭈꾸미 다리부터 몇 개 먹기 시작. 그런데 맛은 그만이었다. 그 맛에 빠져 다른 분들은 아무 불평도 아니하시고 잡수신 모양이다. 작은 몸통도 하나 먹어 보니 맛이 좋다. 그 안에 알도 쬐끔 들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 씹히는 맛은 일품. 우리는 그 맛에 이끌려 데친 쭈꾸미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고는 입맛을 다시며 해물국수를 고대.
해물국수는 푸짐하다. 맛도 그럴 듯했다. 먹고 남고 먹고 남고 그렇게 민생고(?)를 소주 한 잔 곁들여 해결하고 나니 긴장이 풀려 노곤하다. 아마도 나이(?)탓일게다.
내가 계산대에서 하소연.
"쭈꾸미 분량이 좀 그래요!"
주인 왈,
"제 철인데다가 쭈꾸미가 워낙 비싸서요.!
그러면서 주인아주머니도 미안해 하신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예 <*자나무집>입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손님 죄송해서 어쩌지요? 요즘은 회를 준비해 드릴 수가 없어서요. 예. 그러게요. 워낙 바빠서 쭈꾸미요리 내기도 벅차답니다. 예 죄송합니다."
곁에서 들은 주인아주머니 전화 내용이다. 다른 요리들을 준비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쭈꾸미요리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했던가?
밖으로 나오니 화창한 봄 날씨다. 배가 부르니 이제야 주위의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논 가운데 작은 마을. 그곳 초입에 들어서 있는 <*자나무집>. 앞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2차선 길이 그 언덕을 돌아 왼쪽으로 뻗어있다. 그 언덕 뒤쪽에 바다가 있단다. 내가 기대하고 갔던 바닷가가 맞기는 맞았다.
돌아오는 길은 쉽게 쉽게 길을 찾았다. 한 번 가 본 길이라고.
솔재 고개를 넘기 전 석정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하며 노닥노닥. 참 한가하고 즐거운 짬이다. 나도 처음으로 수채화 샘 41과 함께 내 곁 통신 33이 추천하는 '아포가토' 맛을 봤다.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고는 씨익 웃는다. 아포가토 커피와 아이스크림이 맛이 '죽인다'는 뜻이다.
▲ 수채화 삽화 2 <사진 1>수채화 샘에게 칭찬을 받은 삽화. 멍멍이 표정이 묘하다. ⓒ 김홍식
* 요즘 내가 수채화를 배우면서 그린 삽화다.
▲ 아포가토 <사진 2> 처음 먹어본 아포가토 아이스림과 커피가 어우러져 맛이 말 그대로 환상이다. ⓒ 김홍식
* 수채화 샘과 함께 마신 환사의 아포가토다.
그렇게 봄날의 즐거운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는 나는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내 곁 통신 33에게서 문자가 왔다. 메시지도 생략 상태로 사진만 달랑 두 장.
▲ 노인네 <사진 3> 노인네가 나다. 구부정한 등, 듬성등성한 백발. 충격이었다. ⓒ 김홍식
* 나를 망연자실하게 한 바로 그 사진이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는 망연자실. 앞에서 말한 바로 그,
'충격의 나락(奈落)'
사람은 누구나 착각 속에서 살게 마련이라고들 한다. 내가 바로 착각의 꿈속에서 살아온 걸 순간 깨달은 거다. 지꼴도 모르고,
'지가 무슨 청년이라고'.
사진 속에는 이제는 다 늙고 찌들어 하느님 곁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네가 보이지를 않는가! 그게 바로 나였다니까.
"등은 구부정, 머리는 듬성등섬 반 백. 쭈구렁 할배가 보이지 않는가?"
* 360이라는 숫자가 하 민망해서 각 통신에서 30을 뺀 숫자다. 그게 우리 일행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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