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에서 만난 사람들

계모의 흉계에 휘말려 19년 천하를 방랑하다 제위에 오른 진문공(晋文公)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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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길(skmikiko)등록 2016.04.20 16:43
오늘은 계모의 계략에 휘말려 자결한 태자 이야기를 해 볼까요.

사기열전(史記列傳) 등장 인물 중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진(晉)나라 문공(文公)입니다. 교활하고 간악한 계모가 궁중에 들어오면서 19년이라는 오랜 기간 중국 천하를 방랑하다 제위에 오릅니다. 긴 세월 자신의 참모들이 변치않는 충성심으로 보좌한 보기 드문 인물입니다.

진문공은 중국 춘추 시대 오패(五覇) 중에 두 번째 주자이며 이름은 중이(重耳). 진 헌공(獻公)의 둘째 아들이었지요. 당시 헌공에게는 자식이 많았습니다. 큰아들은 이름이 신생(申生)이고, 어머니가 제환공의 딸(齊姜)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강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헌공의 셋째 아들은 이름이 이오(夷吾)입니다. 이외에도 헌공은 여섯 명의 아들이 더 있었는데, 여기에 다시 또 여융(驪戎)을 정복하고 여희(驪姬)를 얻어 해제(奚齊)를 낳았고, 다시 여희의 동생에게서 도자(悼子)를 얻었습니다.

해제를 얻고 난 이후, 진헌공은 태자 신생을 폐하고 해제를 태자로 삼고자 했지만 대소신료들 때문에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먼저 진헌공이 여희와 해제를 데리고 도읍인 강(降)땅에 머물면서, 태자 신생에게는 곡옥 지역을, 중이에게는 진(秦)나라 옆 포읍을, 그리고 이오에게는 정(鄭)나라 옆 굴읍땅으로 나아가 각각 살게 합니다.

또한 진헌공은 진(晉)나라에 상군과 하군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군 부대를 창설하면서 헌종 자신은 상군(上軍)을 거느리고, 나머지 하군(下軍)은 태자 신생으로 하여금 운용하게 하였습니다. 얼핏보면 태자 신생을 우대해 각각 군대를 나누어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태자 신생을 자신의 신하로 거느리겠다는 속셈이었지요.

진헌공 19년. 진헌공이 이웃한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와 애첩 여희에게 태자 대신 여희의 아들 해제를 대신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여희는 속으로 크게 감격했지만, 속마음과 전혀 다른 말로 헌공의 환심을 삽니다. 태자의 지위는 천하의 제후들이 다 알고 있으며, 태자가 군대를 거닐고 나라에 공을 세웠고, 백성들도 태자를 의지하고 있는데, 만약 헌공이 폐태자하고 해제를 세운다면 여희는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가증스런 연기였습니다.

그렇다고 신생의 태자 지위를 용납할 여희가 아니지요. 일차적으로 헌공의 환심을 사서 안심시킨 뒤에 2년 후 마각을 드러냅니다. 진헌공 21년의 어느 날 진헌공이 꿈에 첫 번째 부인이던 제나라 여인 제강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여희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여희가 이 꿈을 이용하여 자신의 계략을 꾸미게 됩니다.

당시 태자 신생은 도읍인 강땅에 들어와 있었는데, 여희는 진헌공이 사냥을 나간 사이 재빨리 태자 신생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께서 꿈에 태자의 어머니인 제강 부인을 보았습니다. 태자께서는 얼른 곡옥땅으로 가시어 제강 부인의 제사를 모시고, 그 음식을 아버님께 올리십시오. 그렇게 되면 아버님께서 옛정에 마음이 많이 흔들릴 것입니다."

태자는 여희가 시키는 대로 곡옥 땅으로 가서 어머님의 제사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에 올렸던 고기를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진헌공은 이틀이 지난 후에야 사냥에서 돌아왔는데, 그 사이 여희는 태자가 보낸 제사 음식에 독을 섞었습니다. 그리고는 진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와 식사를 하려 했을 때, 고기를 먹으려는 진헌공을 말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고기는 먼 곳에서 온 것이니 마땅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여희가 고기를 던져 개에게 주었는데, 개가 그것을 먹고는 곧바로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다. 여희가 다시 어린 환관에게 고기를 먹이자, 환관 또한 똑같이 죽었습니다. 막 사냥터에서 돌아온 터라 온몸이 몹시 피곤했던 진헌공은 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순간적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여희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며 크게 흐느끼며 하소연을 늘어 놓습니다.

"태자는 어찌 이렇게 잔인하단 말입니까. 이렇게 자기 아버지까지 죽여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하니, 설령 자리에 오르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더욱이 군왕께서 나이 들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건만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죽이려 들다니요. 사실 태자가 이렇게 일을 꾸미는 것은 오로지 천첩과 해제 때문입니다. 군왕께 원하건대 차라리 저희 모자로 하여금 다른 나라로 떠나 평생 숨어 살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태자 신생은 이 소식을 듣고 일단 신성(新城)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태자를 모시던 사람 하나가 왜 군왕에게 이 모든 일이 여희가 꾸민 일이라고 직접 사실을 해명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태자의 신분이면서 헌공 사후 제위를 이어받는 입장에서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군 병력도 갖고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여희 세력을 격퇴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부친인 헌공에게 자신의 결백을 진술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도 신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 군왕께서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여희가 아니면 잠도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도 달게 드시지 못한다오. 만약에 내가 여희와 사실을 다투게 되면, 군왕이 여희를 노여워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할 수 없습니다."

신생이 진정한 효자인지, 사리 판단이 미혹한 어리석은 인물인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신생이란 인물! 정말 신기할 뿐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태자 신생에게, 그렇다면 외국으로 일단 망명했다가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신생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라 안에서조차 이렇데 더렵혀진 이름을 가지고 나라 바깥으로 도망을 쳐 본들, 그 누가 나를 받아주겠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오."

그리고 신생이 자결하게 됩니다. 태자가 자결하고 그 형제들인 중이와 이오는 탈출하여 천하를 주유하게 됩니다. 여희의 계략 때문에 태자는 자결하고 다른 형제들은 기약없이 천하를 떠돌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훗날 중이가 19년 동안 천하를 떠돌다가 진나라 국군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는 패자가 됩니다. 중이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여희와 그 세력들은 제거되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여희의 간교한 계략으로 태자가 자살한 사건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회에 진문공의 천하방랑과 제위에 오르는 과정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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