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부모들이 뿔났다!

"성행위 표현 많은 소설 교재로 쓰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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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유(drjoh)등록 2016.05.16 09:29
요즘 미국에서는 성(sex) 묘사 많은 소설을 고등학교 영어교재로 쓰지 말라고 부모들이 들고 있어나 한 주의회가 관련법을 만들기 까지 했다.

수도 워싱턴과 붙어있는 버지니아 주 의회는 최근 고교 영어 교사들이 AP(고교에서 미리 대학 과정을 가르치는 Advanced Placement) 영문학 교재로 사용할 책 내용을 부모에게 미리 알리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영어교사들은 교권 침해라며 반발했고 문학인 단체들은 문학과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소속인 매카울립흐 주지사는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주의회가 통과시킨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의기양양해진 한 고교 여교사가 "우리가 전문가(professional)들인데" 왜 야단들이냐는 투로 학부모들과 주의회 의원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고, 여교사의 오만한 발언에 화가 난 한 주(州)상원의원(리차드 블랙)은 그 여교사를 나무라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그러자 미국의 권위있는 일간신문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가 4월11일 주지사와 영어교사들만  편드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의 요지는 이러했다. 학생들의 필독 교재로 쓸 책들의 내용을 교사들이 미리 학부모들에게 알려주라는 법을 만든 최초의 주가 버지니아가 될 뻔했는데, 주지사가 막은 것은 다행 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가 된 소설 "Beloved"와 그 소설을 교재로 선정한 교사가 공격을 받고 있다. 블랙 의원은 문제의 소설이 아주 나쁜 "도덕적 쓰레기"라고 말했다. 여교사 제시카 버그는 블랙 의원에게 소설 "빌라브드"를 교재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랙의원은 그런 나쁜 소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선생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블랙의원은 소설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소설 내용을 요약한 것을 보니 음란한 대목이 많았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다룬 문학작품도 읽어보라고 권하는 교사들을 배척하는 것은 좋은 교육정책이 아니다.

이런 내용의 사설이 너무 편파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미성년 자녀들이 성행위에 관한 언급이 많은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할 부모는 없다. 그런데 학부모 입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런 교재를 택한 교사만 일방적으로 두둔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사설을 반박하는 글을 간단히 써서 편집자에게 보냈다. 그러나 감히 워싱턴 포스트 사설을 반박하는 글을 실어줄 것 같지 않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4월18일자 워싱턴 포스트 사설 란 바로 밑에다 "학생들이 노예제도가 나쁘다는 것을 알기 위해 음란한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는 제목까지 달아 게재했다.

"4월11일자 사설은 너무 편파적이다. 한 교사는 훌륭한 교육자로 칭찬하고 그 교사를 나무란 주의회 상원의원은 나쁜 사람으로 매도했다"로 시작한 내 글의 핵심은 편집자가 달아준 제목이 잘 표현해주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 "Beloved"(소설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예쁜이> 정도의 뜻이다)는 작가가 과거 미국의 흑인노예제도가 나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을 것 같은데, 노예제도가 나쁘다는 것은 이미 학생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노예제도가 나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음란한 장면이 많은 소설을 고교학생들에게 권할 필요는 없다. 성행위에 관한 서술들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은 더 훌륭한 문학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그런 음란한 묘사들이 있는가? 없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재로 채택한 책의 내용을 학부모들에게 먼저 알려주도록 한 법은 필요하다. 버지니아 주지사는 이 법안을 비토(veto/서명거부)하지 말았어야 한다. (내 글의 영문 전문은 아래 사진과 같다.)

"음란 표현 많은 소설을 고교 교재로 쓰지 말라!" 워싱턴 포스트 사설을 반박한 필자의 글이 실린 4월18일자 그 신문 사설 페이지 하단. ⓒ 조화유


워싱턴, 제퍼슨 같은 미국 건국 대통령들도 흑인 노예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문제의 소설도 노예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던 19세기 중반 미국이 무대이고 성행위 얘기가 많이 나온다. 소설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 교사의 조카들이 그녀를 윤간하고 젖을 빨아먹는 얘기를 비롯하여 많은 흑인여성들이 백인 남자들한테 강간 당하는 얘기. 백인 주인집에서 탈출한 자기 딸이 도로 잡혀가 구타와 강간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딸을 죽이는 장면, 딸의 무덤 비석에 딸의 이름을 새겨준다는 조건으로 석공과 성행위를 하는 얘기, 주인공의 동거남이 주인공이 죽인 딸의 환생이라고 믿는 여자(Beloved)와 동침하는 얘기 등등, 쎅스와 폭력 얘기가 너무 많다.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흑인 여성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유명해지기 전인 1987년 발표,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받아서 유명해졌다. 무슨 상을 받았다고 다 좋은 소설은 아니다. 성인들은 몰라도 청소년들에게 권하기는 어려운 작품들도 많다. Beloved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은 노예제도 하에서 착취당하고 성폭행당하고 살해까지 당하는 흑인들의 얘기다. 이 소설은 흑인들이 백인들을 증오하게 자극하는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필 이런 소설을 고교 영어교재로 쓰겠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학부모 특히 흑인이 아닌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일어난 것이다.

미시간 주에서 가장 먼저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고, 버지니아 주에선 라우든(Loudoun) 카운티와 훼어펙스(Fairfax) 카운티(행정단위)의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두 카운티는 중간 가구당 소득(median household income)이 미국 전체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호주의 65%가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이다.(중간가구소득은 어느 지역의 가구들을 소득 순으로 한 줄로 나란히 세웠을 때 맨 가운데 가구의 연간소득액을 가리킨다.)
음란한 묘사가 많은 문학작품을 고교 교재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미국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지난 4월11일자 워싱턴 포스트 사설과 필자의 반박문은 구글에 들어가 WP editorial "Heaping scorn and passing judgment"를 검색창에 넣고 클릭하면 바로 나온다.
워싱턴에서
조화유
덧붙이는 글 조화유 기자는 미국 거주 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슬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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