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길이면 가라. 혼자라도 가라. 쉬지 말고 가라."

필리핀 30년 봉사, 신성균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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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수(motif1)등록 2016.05.20 11:32

사도 바오로(Paulus)가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전도여행을 수행했듯이 신선교사는 카이로프랙틱의 의료봉사를 통해 자비량선교를 30년 동안 감내해오셨습니다. ⓒ 이안수


"쟁기 잡은 손으로 뒤돌아보지 말라."

사랑은 세상의 모든 미사여구를 합한 것보다 아름다우며 그 아름다움은 오직 실천으로만 구현될 수 있음을 목도했습니다.

1986년 쉰하나의 나이로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되어 30년간 선교지에서 단신으로 자비량선교를 해 오신 신성균선교사. 아버지를 북에 두고 오신 이산가족의 삶을 남쪽에서 홀로 감당해 오신 어머님의 유골을 화장해서 품에 안고 필리핀으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이는 신 선교사님께서 필리핀의 선교지에서 순교하시겠다는 속내의 대외적 표현으로 읽혔습니다. 저는 이분이 헌신하신 그 땅이 궁금했습니다. 3월 31일부터 4월 5일까지 필리핀의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오직 기도만을 쟁기로 삼아 필리핀 제도 중부, Negros 섬 남부의 두마게테(Dumaguete)에서 사역을 해오셨습니다.

파송 1년 만에 파송교회의 목사와 선교정책이 바뀌어 선교비는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선교사님께서는 시작하신 일을 그만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사도 바오로(Paulus)가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전도여행을 수행했듯이 신선교사는 카이로프랙틱을 통한 의료봉사를 통해 자비량선교를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신교사님께서 처음으로 파송될 때인 86년은 첫째가 고등학교 3년,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으로서 파더링(fathering)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를 홀로 걷는 그 길을 앞만 보며 갈 때 품었던 말은 "쟁기 잡은 손으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파송목사의 한 마디였습니다.

네 딸을 부인에게 지우고...

"저는 아버지 없이 월남한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섬겼다고 할 만큼 귀하게 대했습니다. 저는 먹다 남은 김치를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땅에 묻힌 김장독에서 바로 꺼내온 포기김치의 머리 부분을 잘라내고 가운데를 썰어 제게 주셨습니다. 아내는 제주 여자였습니다. 오빠가 3대독자인 집안의 다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원치 않았던 딸이었던 거지요. 자랄 때 보살핌을 받지 못했습니다. 혼자 놀고, 혼자 울고 지치면 스스로 울음을 그치는 성장기였습니다. 아내가 시집와서 저의 대접받는 식습관부터 고치게 했습니다. 제주 여자가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선교지로 떠난 후부터는 아버지의 몫까지 더해서 아이들을 양호(養護)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의 경제적  필요를 스스로 조달해야했고 나중에는 선교비까지 보내주었으니까요."

온전하게 가정을 홀로 지고 간 강한 부인덕분에 신선교사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소명을 받드는 일에만 맹진할 수 있었습니다.

신선교사님은 내 일신, 내 가정을 넘어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 그들의 자활을 돕는 방식으로 공생의 삶을 실천해왔습니다. ⓒ 이안수


베데스다봉사단을 창립해서 장애우들 돕는 일을 중단 없이 펼쳐왔습니다.

신선교사님의 길에 항상 용기가 되었던 분이 스승이신 치유선교학의 개척자 일보 이명수 박사님이셨습니다. 말씀으로가 아닌 눈빛으로 신선교사님이 갈 길을 가르치고 믿어주셨으며 스스로 모범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이 곧 신선교사님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옳은 길이면 가라. 혼자라도 가라. 쉬지 말고 가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혜와 명철을 징검다리삼고 근면과 성실로 고난과 외로움의 수많은 급물살들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다시 백의종군

올 2월에 베데스다봉사단의 3대 단장님으로 오석재 (주)레미기술연구소장님께서 뽑혔습니다.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를 대체할 새로운 냉매를 개발하는 등, 지구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신물질 개발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과학자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이타의 실천으로 채울 결심을 굳힌 분입니다.

이번에 신선교사님은 두마게테인근 다우인(Dauin)지역, 뒤로는 쌍봉의 화산(Cuernos de Negros)이, 앞으로는 보홀해(Dagat Bohol)의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역민들의 복지시설을 만들기 위해 마련해두었던 1만 2천여평의 땅을 베데스다봉사단에 기부했습니다.
"저는 이 봉사단의 고문이니 이사니 하는 어떤 직함도 사양합니다. 오직  이 땅의 쓰임은 새단장님과 단원들의 뜻에 따라 활용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단지 베데스다봉사단의 선교사로서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이어갈 수 있길 원합니다."

선교사님은 이 봉사단의 명예직함이라도 가질 경우 기부된 땅의 쓰임에 대해 자신의 눈치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스스로의 염려를 백의종군하는 것으로 쐐기를 치길 원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콩(Bacong) 지역의 700여 평의 땅에 여생을 보내며 이 지역의 미혼모와 어린이들을 돌볼 여성과 어린이 센터(Bethesda Women & Childen Center)'기공식을 했습니다.

이 소박한 기공식에는 지렁이 농장을 운영하며 신선교사님과 함께 살고계신 알렉스 아모르(Alex Amor)씨 부부와 아들이 참석해서 신선교사님의 필리핀 생활을 소개했습니다.

"신선교사님은 매일4시에 기상하셔서 저와 치료를 위한 운동으로 일과를 시작하십니다. 오직 기도와 의료봉사로 채우는 청빈과 근면의 나날이지요. 존경이 절로 우러나는 선교사님 곁에서의 생활이 우리가족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의사인 저의 아들은 선교사님을 할아버지 삼고, 저와 저의 처는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함께 참여하신, 가족이 전재산을 기부해서 세운 '세인트마리아미션클리닉(St. Maria Mission Clinic)의 원장님께서는 그 병원에 매일 나오셔서 환자들의 척추교정을 시행하는 신선교사님의 봉사에 대해 감사와 존경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의 쓰임을 위해 필리핀 선교 10년 만에 그 땅을 마련하고 심었던 망고나무 묘목이 20년 만에 아름드리 큰 나무로 자라서 일행에게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필리핀을 방문한 일행이 다시 망고나무 묘목을 심었습니다. 이 나무가 필리핀 미혼모와 그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수가 되길 기원하면서... 신성균선교사님이 약물과 폭력의 길을 걷던 청소년을 정성으로 돌보아 양아들을 삼은 베드로가 그 모든 것을 준비해주었습니다. 신선교사님은 베드로를 목회자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며 베드로는 신선교사님의 기대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실한 삶으로 보답하고 있습니다.

미혼모와 그 아이들을 돌보는데 여생을 받치기로 결심한 신선교사님의 '여성과어린이집' 기공식에 함께하신 분들 ⓒ 이안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

어릴 때 아버지 같은 오빠였던 선교사님의 외로운 분투가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던 동생 신공자선생님과 신정균선생님께서도 이번만은 감사로만 가득 채운 선교지 방문이 되었습니다.

이명권목사님도 신선교사님의 발자취를 함께 더듬으며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보탰습니다.

신선교사님은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혜와 명철, 근면과 성실로 이타의 삶에 가로놓인 여러 고난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 이안수


며칠간 신선교사님과 일정을 같이했던 오석재 단장님과 건양대학교 의료선교학과 박사과정의 제자들도 이번 여름 방학 때는 이 지역의 산간벽지와 외진 섬들에서의 의료봉사를 계획하면서 두마게테를 떠났습니다.

저와 함께했던 아내는 신선교사님의 사역의 노정을 목도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앞날의 삶에 모델이 되어주셔서 고맙다, 는 속마음을 꺼내보였습니다. 함께했던 모든 이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난 사울. 로마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 그리스도 교도를 잡으러 다녔던 사울이 그리스도의 출현을 경험하고 사도 바울로가 되어 로마까지 지중해를 아우르는 대전도여행을 수행했습니다. 그 위대한 선교사 바울로가 50년경 마케도니아에서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목회서신(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신선교사님께서 기거하시는 알렉스댁의 아래채 작은 방벽에는 서예가 동생이 써서 보낸 붓글씨가 붙어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主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_소엽 신정균"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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