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學問(묻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學文(인문)을 위한 공간이다.

도구가 목적인 현실.

검토 완료

남현우(kyeco)등록 2016.06.02 10:44

길에 대한 고찰. ⓒ 남현우


대학은 學問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學文을 위한 공간이다. 전자가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삶의 근본을 밝히고 그 근본을 실천하는 방법을 익히려고 배우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전자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학교라는 의미의 스콜라 어원은 스콜레이다. 스콜레는 여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학생 중에 공부를 여가로 하는 학생은 몇이나 될까? 이미 대한민국에서 공부는 여가가 아니라 의무다. 본연의 의미를 잃고 학생들의 족쇄가 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본다면 백에 백 직업을 말할 것이다. 그들의 장래에 희망이 노동인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직업이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반론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은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도구가 목적이 되서는 안 된다.

배움을 함(삶)으로 옮기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평상시에 함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는 않다. 성공한 사람들의 강의를 감명 깊게 듣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슴으로 느낀 것을 행하는 것도 어려운데 대학은 학생들에게 목적 없는 함을 강요 한다. 함이 있기 위해서는 배움이 선행 되어야 한다. 현재 대학 교육은 후자만을 강조하는 형태로 변모해 가고 있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목적 성취 후에도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도구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직업이나 물질적인 도구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용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가 되서는 안 된다.

대학은 개인의 내면적 성찰과 가치관 형성을 선행한 후 기술을 교육해야 한다. 또, 그것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런 본질을 밑바탕으로 기술을 습득해야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또, 대학은 학생들에게 완성된 자아를 바탕으로 균형 있는 시각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도제식 교육으로 취업에만 몰두 하고 있다. 자아의 완성을 포기하고 기술에만 집중하는 형상이다. 그들은 경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취업을 하기 위해서 라고 반박할 수 있다. 사회에서 요하는 것을 비판의식 없이 따라가고 있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것이 지성인들이 모여 있는 대학에서의 본질이자 목표일까? 사회에 수긍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처리하는 기계를 만드는 곳이 대학의 존재이유가 아니다. 주객이 전도된 현실을 누군가는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이다.   

                                                            남현우 mingzi93@daum.net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