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바이러스 연구 공개에서 배워야 할 점

[주장] 좋은 취지 오픈 엑세스, 하지만 강요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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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yital)등록 2016.06.03 13:08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임산부와 태아에 영향을 끼쳐 신경계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선 지카 바이러스 감염으로 의심되는 노인 환자가 사망한 바 있다. 국제적 대응이 필요한 가운데, 한 신생 저널이 지카 바이러스 감염 지역도를 연구 및 배포해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e라이프(https://elifesciences.org)'라는 곳이다.

지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해 있다. 공동연구진들이 지카 바이러스 감염 지역도를 만들어 무료 공개 저널인 에 게재했다. 논문 ‘Mapping global environmental suitability for Zika virus’ ⓒ


공동 연구진들은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 유명한 저널이 아니라 왜 <e라이프>에 투고를 했을까? 한 마디로 빠르기 때문이다. 논문 심사부터 게재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전통적인 저널에 비해 <e라이프>는 신속성(Pan-free)을 제 1 서비스로 내세우고 있다. <e라이프> 생명과학 분야 저널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공동 연구진들은 자율적으로 <e라이프>를 선택하고,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유의미한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그 누구도 강요한 바 없다.

아울러, <e라이프>는 OA(오픈 엑세스. Open Access) 저널이라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심지어 현재는 출판 관련 모든 비용이 무료다. 물론 모든 저널의 OA가 무료는 아니다. 대개 120만원 ∼ 240만원(1000달러 ∼ 2000달러) 정도다. <e라이프>는 신생저널이기 때문에 무료로 출판을 하고 있다. 앞으로 좋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 다각도로 수익 사업화를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다. OA는 기존의 출판방식에서 발생하는 제반 비용(편집·교정·디자인·심사·종이 출판·관리 등)의 거품을 모두 뺐다. 그래서 비용이 저렴한 편이다. 

OA엔 e저널 아카이브형, 무료 공개형, 이중 모드형, 엠바고 설정형 등 그 유형이 다양하다. 각 유형에 따라 가격 역시 차이가 난다. 위키백과는 OA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행 학술커뮤니케이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 중 하나로 법적, 경제적, 기술적 장벽 없이 전 세계 이용자 누구라도 자유롭게 무료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저작물 생산자와 이용자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오픈엑세스는 저자의 비용 부담, 이용자의 무료 접근, 시공간을 초월한 상시적 접근, 저자의 저작권 보유 등의 4대 원칙을 강조하는 정보 공유 체제이다."

학자들이 국민들의 세금으로 진행한 결과물을 공유하고 배포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R&D 기금으로 만들어진 논문은 국가의 재산이고 전 인류가 공유해야 할 지성의 총합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는데 내홍을 겪고 있다. 이미 지난 2015년 3월에 국회와 숭실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OA 도입과 관련된 학술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핵심 내용은 학술 논문을 공개하는데 관 주도로 강제하고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7일엔 2016년 학술단체협의회 연합심포지움 '지구화시대 대학의 위상과 역할-한국대학, 선 자리 갈 길'에서 <OA제도와 학술지의 국제화 담론> 토론회가 다시 한 번 열렸다. 이번 토론회 역시 공공성을 둘러싼 대학(연구자)과 연구재단, 학술 DB기업의 쟁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정작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참석자가 없어, OA를 강요하는 기관의 입장을 들어볼 수는 없었다.

학술단체협의회 연합심포지움 중 OA 관련 세션 토론회 OA를 둘러싼 여러 논의들이 진행됐다. 핵심은 관 주도로 강제하는 게 과연 맞는지 여부이다. ⓒ 김재호


비뚤어진 공공성, 순종하는 연구자, 망가지는 대학사회

<OA제도와 학술지의 국제화 담론>에선 총 3개의 세션이 열렸고, 주요 논의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한국연구재단의 지원과 평가, 특히 OA 제도 강요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훼손한다. OA를 공감한다 해도 연구자의 자발성에 기인해야 한다. 둘째, 학술지의 국제화는 서열이 아니라 개별 연구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차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영어 논문 확산보다는 한글 논문을 번역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공공서비스는 표절시스템, 빅데이터 시스템 등 기초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공공서비스가 법적 근거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편, 민간은 새로운 차원의, 서비스 고도화를 이뤄내야 한다.

공공재라고 국가에서 지원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을까? 『공공성』(김세훈 외, 미메시스, 2008)에 따르면, 꼭 그럴 필요는 없고, 공공재라고 반드시 국가 지원의 근거가 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특히 시장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실패를 따져봐야 한다. 책에선 공공재의 역설도 감지할 수 있다. 인용해보자. "공공재에 대한 경제적 정의를 볼 때, 공공재라는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개입하다 보니 공공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부 역시 사적 이윤(공적 부문의 확장)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특정 재화 공급을 과다하게 생산하다보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많은 재화는 공공재가 되어 버린다. 이는 공공 선택 이론(public choice theory)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면, 국민들은 3차선 도로를 원하는데, 정부에서 10차원 도로를 제공하면, 그 도로는 공공재가 되어 버린다. 세금이 훨씬 더 들어갈 것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보편적 논리는 결국, 공공 부문이 비대화되는 비용을 국민들이 내야 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질적인 차원에서의 고려 역시 언급된다.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당연히 민간 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공공성이란 이름으로 정부에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민간 경제는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질이 낮아진다. 공공재라는 명분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대개 보편적인 형태로 보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차별화된 서비스가 나오기 힘들다. 민간과 공공이 서로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서 주도하는 것이 모두 옳을 순 없다. 정부 지원금으로 진행된 연구결과가 국정 방향과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분명 그 연구결과를 감추려고 할 것이다. 만약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가 나온다면, 억지 춘향식으로 확산시키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4대강 관련 환경 감시보고서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자율성이 훼손되면 그 의미를 상실한다. 현재 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오픈 엑세스가 딱 그와 같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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