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백합을 보며

꽃은 치유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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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광석(kshong25)등록 2016.06.21 14:20
노란 백합을 보며

북극패랭이는 여러해살이식물로 키가 작고 꽃은 귀엽고 잔잔하다. 
꽃은 수선화 진 뒤에 피는데 겨울에도 잎이 푸르고 번식력이 매우 강하며 다른 풀을 밀어내는 특징이 있다.
철쭉 앞에 수선화를 심고 그 앞에 북극패랭이를 그리고 북극패랭이 앞에는 은배초를 심었는데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자연스럽게 잔디밭과 꽃밭을 가르는 3중 울타리가 되는 셈이다. 그런 울타리는 잔디가 철쭉 밭으로 파고드는 것을 방지하고 다른 풀이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있어 1석 2조의 도움을 준다.
이제 북극 패랭이는 사라지고 은배초만 남았다. .
은배초 은잔화라고도 하는데 땅 바닥을 포복하여 번식하며 생명력이 강해 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하는 식물이다. 꽃은 작은 은잔 모양으로 귀엽다.
꽃이 피는 시기는 봄에 절정을 이루지만 이후에도 가을까지 있는 듯 없는 듯 쉬엄쉬엄 피어 심심찮게 한다.

빨간색 백합 백합 중에서 개화시기가 가장 빨랐다. ⓒ 홍광석


요즘 숙지원에는 백합과 접시꽃이 한창이고 글라디올러스와 달리아가 뒤질새라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나만의 경험일 수 있겠지만 봄철 꽃들은 대체로 앙징맞고 귀엽다는 느낌으로 남은 반면 여름철에는 꽃잎이 시원스럽게 크고 원색적인 꽃들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봄에도 5월의 철쭉이나 장미처럼 큰 꽃들이 있고 여름에도 채송화 봉숭아 같은 작은 꽃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아무래도 봄 꽃 하면 복수초 수선화 튤립 패랭이 등이 먼저 떠오르고 여름에는 백합 달리아 접시꽃 글라디올러스 천사의 나팔 부용화 등의 꽃이 재빨리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얀색백합 얼마전까지도 세상의 백합은 하얀 색만 있는 줄 알았다. ⓒ 홍광석


어제, 비 오는 중에도 노란 백합이 피었다.
백합이라면 이름처럼 백색 꽃만 있다고 여겨 한자로도 흰 白을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유월 들어 숙지원에 빨간색 백합이 가장 먼저 피고 하얀색 백합이 이어 분홍색 노란색 순서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여태까지 나는 백합이 그렇게 다양한 색이 있는 줄은 몰랐다.
백합이란 한자어가 백 百자를 써서 백합(百合)이라고 쓴다는 사실도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찾다가 비로소 알았다.
백합은 무조건 하얀색이라고 여겼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지를 드러낸 셈이다.

분홍백합 하얀 백합 다름으로 핀 꽃이다. 색상이 은은하다. ⓒ 홍광석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새로운 품종을 구하여 심고 가꾼다.
아마 아내는 백합 구근을 구입했다는 말을 나에게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까맣게 잊었다가 꽃이 피고 나서야 다양한 색의 백합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꽃의 모양과 색이 다르듯 꽃을 보는 사람의 감성도 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꽃이 다르다고 한다.
나 역시 모든 꽃이 나에게 선(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특별히 눈을 끌거나 깊은 인상으로 남은 꽃도 많지만 이름도 모르는 꽃도 많다.
그래도 꽃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다.  
꽃의 선호도에 따라 머무는 시간은 다르지만, 신비로운 모습과 오묘한 색상을 칭찬하는 것은 꽃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가물면 물을 주고, 가끔 벌레는 달려들지 않는지 살피며, 버티기 힘들어하는 꽃대는 지주를 세워주는 일은 꽃들이 나에게 주는 평화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꽃과 대화를 시도했고 더러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꽃들의 이야기 혹은 글로 남겼음을 안다.
꽃들에 관한 설화나 꽃말도 그런 상상력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삭막한 탓인지 꽃을 보면서도 시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꽃들에게도 정령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면서 나에게 꽃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할 뿐이다. 

노란백합 다른 백합에 비해 꽃송이가 크고 수술의 색이 강하다. 그렇다보니 조금은 도발적인 느낌을 준다. ⓒ 홍광석


이른 봄날의 서리에도 굽히지 않은 여린 수선화, 숙지원을 붉게 달군 철쭉, 귀여운 꽃을 하늘거리던 패랭이들의 모습을 기억에서 내려놓고 노란 백합을 본다.
꽃 중에는 간호하듯 가까이 보아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꽃도 많지만 멀리서 볼 때 신비감을 더하는 꽃들도 많다.
노란 백합은 꽃송이가 크고 수술의 색깔도 짙어 조금 멀리서 보는 꽃이다.
그렇지만 모든 꽃들이 그렇듯 노란백합도 기원과 희망의 상징이면서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약이요 평화의 다른 이름이다.
며칠 후면 노란 백합도 시들어가는 하얀 백합의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꽃들에게 죽음은 환생의 세계로 이동하는 과정일 뿐 슬픔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난날을 돌이키고 내 여생 방향을 가늠한다.
오늘은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다. 2016.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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