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를 침범한 가상 세계의 몬스터들

우리에겐 포켓몬go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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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섭(neopenta)등록 2016.07.14 10:15
아바타가 되어 모니터 속에 빠져들어 가상의 공간을 탐험하는 게임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게임 속 캐릭터가 모니터 밖으로 뛰쳐나와 내 눈 앞의 현실세계를 활보하는 진풍경을 지켜보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알파고가 바둑 게임을 통해 인간의 미래에 던진 질문만큼 '포켓몬go'의 등장도 인류 문명사에 나름의 질문을 던질 것이다. 하지만 포켓몬go의 경우는 그 문제적 사건의 현장에 대중들이 능동적 참여를 하는 역동성을 지니는 만큼 질문에 대한 해답도 가변성이 큰 질문이 될 것이다.
인터넷과 웹 관련 기술의 등장이 일으킨 다양한 사회 변화 중 특징적인 현상 하나는 '혼종(hybrid)'으로 인한 경계 허물기라 할 수 있다.
국경을 초월한 실시간 상호작용은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허문 다양한 혼종문화들을 만들고 있다.
문어와 구어의 경계는 온라인 채팅에서 허물어진 지 오래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자율적 상거래 참여는 전통적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허문 '프로슈머'를 탄생시켰다.
이제 '현실(오프라인)'과 '가상(온라인)'의 전통적인 이분법도 곧 허물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증강현실과 상황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포켓몬go의 대중적 열풍 조짐이 이러한 추측의 근거이다.
한국에서는 정식 서비스될 확률이 낮다고 하니, 이런 소소한 즐거움조차 모르고 살아가야 한다는 내 처지가 문득 불쌍해진다.

속초는 한국이 아닌가요? 속초에서 포켓몬go가 된다는 소식에 SNS 공간이 들썩이고 있다. ⓒ 속초시청 트위터


단순히 즐거움을 못 누린다는 차원에서의 불쌍함이 아니라, 선진국이라면서 다른 선진 국가의 국민들이 누리는 혜택 대다수가 안보와 대기업 우선 정책에 그 우선 순위를 빼앗기는 후진성의 맥락 속에 그 불쌍함의 원인이 들어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포켓몬고 경험에 대한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 안 변기에서 오리 형상의 포켓몬과 후라이팬 위에서 잉어 형상의 포켓몬이 출몰하는 등의 엉뚱함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잉어킹은 구워 먹는 건가요? 황당한 장소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 포켓몬들 ⓒ 위키트리 기사 사진


포켓몬이 출몰하는 실외에서는 포켓몬을 포획하기 위해 모인 낯선 사람들끼리 반가운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계산이 빠른 식당은 자신의 가게에 출몰하는 포켓몬을 이용한 호객 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간혹 희귀 포켓몬 출몰 지역에는 와우나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흔히 보아왔던 대규모의 사람이 운집한 시끌벅적한 광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니터에 빠져들어 현실과 단절된 가상 공간을 살아가던 게이머들이 '증강현실'과 '상황인식' 기술,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현실을 가상처럼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넘나듦의 매개에 '게임'이 놓여있다.
끊임없이 일을 하면서도 행복을 느끼고, 실패의 경험조차도 웃어 넘길 수 있을 만큼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고,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동작업을 통해 웅장한 프로젝트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온라인 게임의 미덕이다.
가상과 현실을 매개하는 게임의 등장을 게임의 미덕이 현실 공간에서도 구현되는 단초로 보는 것은 현재로서는 예측이 아닌 호들갑에 가까운 희망사항이겠지만, 게임의 가장 큰 특성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주어진 상황이 변화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아직은 호들갑에 가까운 희망의 가능성을 확정하는 것은 '게임화'된 현실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몫으로 돌리겠다.
이 시덥지도 않은 게임에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포켓몬고 게임도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다가 스마트폰 화면에 포켓몬스터가 보이면 포획하는 게 전부인 아주 단순한 게임이다. 하지만 규칙이 단순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참여할 수가 있다.
한 사람이 시덥지 않은 일에 몰두하면 바보나 X라이 취급을 당하고, 몇 사람이 이 시덥지 않은 일에 몰두하면 매니아 내지는 덕후의 칭호를 얻는다. 그런데 그 무리의 규모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그 시덥지 않은 일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제도가 되고, 문화가 된다. 놀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시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역사학자 호이징아의 '호모루덴스'에서도 인간이 만든 사회의 법적 제도를 비롯한 문명의 근간에 '놀이'가 있다고 보고 있지 않은가?
이제 포켓몬고 열풍이 불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 네티즌들의 포켓몬고를 열망하는 목소리 또한 날로 커질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포켓몬go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속초는 이미 포켓몬go의 성지가 되고 있다. 한 온라인 쿠폰 업체도 이 호재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 트위터러 jen_0818님


한국 정부가 그러한 목소리에 화답하여 이른바 '한국형' 포켓몬고를 내놓겠다고 뒷북을 치면서 MB 각하의 '명텐도'의 뒤를 잇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이미 기업은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VR만 만든다고 다 성공하는 줄 아니? ⓒ 국민일보 신문 기사 캡쳐


기술 몇 가지 모방해서 그 겉모습 흉내나 내는 데 세금을 쏟아 붓는다고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재미'를 줄 수 있을까?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허용하는 방법의 하나로 구글 지도와 관련된 봉인을 해제하는 것이다.
정말로 그게 불가능하다면 제발 좀 나서서 뭐 만들겠다고 하지말고 '재미'와 '놀이'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고 게임을 중독 물질, 게이머들을 환자로 보는 사회 전반의 구시대적인 인식을 바꾸어 게임 또한 하나의 문화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지원이나 넉넉하게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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