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를 누가 'SNS 난민'으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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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komsy)등록 2016.08.18 16:51
리우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여자배구대표팀을 향해 일부 네티즌들이 과도한 비난을 하고 있다. 8강 진출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삐뚤어진 팬심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선수와 감독을 거쳐 배구협회까지 소용돌이쳤다. 그러다1993년생의 어린 선수 박정아를 사냥감으로 잡았다.

몇몇 어긋난 사명감을 가진 이들은 박정아의 SNS까지 찾아가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박정아는 끝내 자신의 개인 SNS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SNS를 소통의 도구로 본다면 비공개는 곧 폐쇄다. SNS가 또 다른 하나의 세계관이 된 시대에서 이 어린 선수는 졸지에 난민이 됐다. 올림픽 오륜기 아래서 빛나고 있는 해당 선수의 프로필 사진이 더욱 씁쓸하다.

어떤 네티즌은 심지어 "너도 프로냐"라고 따진다.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사실 올림픽에도 못 나간 남자농구, 여자농구, 남자배구는 더 할 말이 없다. 심지어 여자배구는 이 겨울 프로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평균 연봉이 낮은 축이다.

선수 SNS까지 찾아가서 욕한 사람들은 명백히 갑질을 한 것이다.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리고 자신의 분노를 배설했던 '갑질 사태'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배구와 선수와 관중이라는 각자의 위치를 해제하면 결국 남는 건 사람이라는 알맹이다. 모든 것은 사람이 움직이기에 기능한다. 사람은 그 안에서 약속된 역할과 지위를 일시적으로 얻는다. SNS에 욕설을 퍼부은 이들은 알맹이를 보지 못하고 약속된 역할을 잊은 채 일시적인 지위만 과도하게 사용했다.

물론 스포츠와 특정 선수를 향한 맹목적인 추종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선행돼야 할 점은 사람이 세계를 움직이고 스포츠를 돌린다는 인식이다. 선수는 운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코트나 경기장 안에 들어있는 부품도 아니다. 관중 혹은 팬이라는 집단의 힘을 이용해 선수에 대한 어그러진 관념을 가져선 안 된다. 선수는 관중의 현실 패배를 승리로 바꿔주는 유희적 부속품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스포츠는 광란의 파티로 전락한다. 그때의 스포츠 현장 역시 노예 검투사가 볼거리를 위해 싸우던 저 옛날 콜로세움 풍경으로 회귀한다.

스포츠 관람은 팍팍한 삶에 칠하는 윤활유로 기능한다. 일차적인 목표가 그렇다. 당연히 관중과 팬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대리만족시켜주는 도구가 아니다. 선수를 통해 자신의 경쟁 본능을 표출하는 4D 영화 관람도 아니다. 그런데 박정아의 SNS까지 찾아간 극성인들은 이 모든 사고를 건너뛰고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해당 선수의 이름을 계속해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려둔 인터넷 포털이다. 요즘은 실시간 검색어에 특정 인물이나 단어가 뜨면 그게 곧 여론의 출발점이 된다. 여러 언론사가 막 떠오른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키워드로 삼아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면 적극적인 네티즌들이 해당 기사에 가서 댓글을 달고 저마다의 의견을 개진하는 식이다. 포털이 떡밥 하나만 던져 놓으면 사안은 물고기들이 몰리듯이 관심이 모인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선정 자체가 하나의 여론 형성을 위한 시발점이자 그 자체로 어젠다 세팅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따금 되새겨봄 직한 훌륭한 코멘트가 기사 댓글에 달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악의를 품고 있거나 인신공격적인 어구가 흩뿌려진 댓글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한 댓글은 또 다른 가십거리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뻔한 여론 전달 시나리오가 이번 박정아 사태에서도 재탕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정아는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이 주도한 공동 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예전부터 실시간 검색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음모론과 의문부호가 달린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처럼 검색어 순위 조작이 가능하다면 이를 방치한 해당 담당자는 한 선수를 향한 폭력에 동조한 공범이다. 정말로 검색어 순위 조절을 할 수 있다면 어느 선에서는 박정아라는 이름을 내렸어야 했다.

이번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달라진 세태 때문이다. 과거 인터넷은 '가상'과 동의어였다. 인터넷 접속 그 자체가 가상현실로의 진입이었다. 그러나 SNS가 나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SNS는 가상의 인터넷 안에서 또 다른 사회를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봤다"고 하던 말들은 누구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봤다는 말로 대체됐다. 그 자체가 논쟁의 근거로 우뚝 섰다. 그와 동시에 SNS 논객들이 등장했다. 유명인과 평범한 일반인의 경계가 단번에 무너졌다. 유명 인물의 목소리를 길어 올리던 언론의 역할도 축소됐다. 유명인이 직접 SNS에 쏘아 올리는 조명탄이 곧 여론의 신호가 됐다. 사람들은 가상으로 인식하던 인터넷에서 한 발 더 들어가 SNS라는 개인 계정과 아바타가 꿈틀대는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 결과 네티즌 수사대로 불리던 이들의 기동력이 더욱 민첩해졌다. 누군가에 대해 알고자 할 때 포털 검색어에 그의 이름을 적는 것과 더불어 그의 SNS 계정을 찾는 문화가 생겼다.

그러한 SNS를 어린 선수가 자의도 아닌 타의로 껐다. 그것도 한국 운동 선수라는 엘리트 체육 울타리에 갇혀 있는 사람이 말이다. 이것은 현실에서 나라를 떠난 난민과 같은 처지다. 그런 갑질을 관중과 팬이라는 다수적 우위와 익명성이란 안전장치에 기대 몇몇 네티즌이 저질렀다. 욕구 불만자처럼 보이는 일부 네티즌들의 박정아 드잡이는 비겁한 폭력이자 번지수를 잘못 짚은 현실 탈피다. 현실이 힘들다고 해서 모든 운동 선수를 자신의 유희를 위한 존재로 여겨선 안 된다. 박정아 사태는 그러한 어긋남이 계속 맞물려 돌아간 부끄러운 일이다.

폐쇄된 박정아 인스타그램. ⓒ 임정혁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스포츠카스테라(https://sportscastella.blogspot.kr)에도 올라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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