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숭고함 앞에 놓인 인간, 그 처절한 몸부림

[리뷰] 이승우 『지상의 노래』가 보여주는 죽음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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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yital)등록 2016.08.30 15:27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죽음은 전승이라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의 역사가 고스란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죽음은 죽음이라는 형식을 초월한다. 죽음은 죽음에 그치지 않는다.

나의 죽음은 또 다른 이에겐 탄생과 희망을 전하기도 한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게 바로 인간의 숙명이고 모든 인간 앞에 놓인 명제이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정말 숭고한 것일까. 죽음에 그치지 않고 이유가 있으며 무엇인가를 전승한다는 의미는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인가. 『지상의 노래』(민음사, 2014)를 읽으면서 죽음의 숭고함을 생각하게 된다.

책 표지 죽음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상의 노래>는 개인의 죽음이 개인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 민음사


이승우의 소설 속에는 세 개의 죽음이 엮여 있다. 이 죽음들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유발하고 전승한다. 죽음이 스스로 의미를 찾으려는 것 같다. 소설은 강영호가 죽으면서 시작한다. 강영호는 천산벽서 관련 원고를 남겨놓고 죽는다. 그는 전국의 명승지를 찾던 중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천산에 도달했던 것이다. 천산벽서란 수도자들이 성경 구절을 벽에 써놓은 것을 뜻한다.

죽음의 숭고함, 욕망과 운명 사이

소설 후반부에 가면, 이 장소는 강영호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강영호의 죽음은 동생 강상호로 하여금 그곳을 찾아가게 하고, 공간이 지난 역사성을 추적하게끔 한다. 그 역사성이란 결국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종교, 공동체의 일부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개인이다. 그리고 개인의 비극이자 죽음의 숭고함이다. 

두 번째 죽음은 사촌 누나인 연희를 흠모하지만 결코 사랑의 구원을 얻을 수 없는 후이다. 후는 박영민 중위를 칼로 찌르고 도망치듯 천산수도원에 들어가 종교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후는 종교적 영허함을 체험한다. 다행히 박 중위는 죽지 않았지만, 후는 '사랑, 또는 죄'라는 2장의 제목처럼 사랑이 죄가 되는 역설을 맞이한다. 이 역설은 후를 죽음의 숭고함으로 이끄는 동력이 된다. 후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자처한다. 압살롬은 다말의 친오빠이다. 압살롬은 이복동생 다말을 겁탈한, 다윗의 또 다른 아들 압논을 오랜 기다림 끝에 죽인다. 

후는 천신만고 끝에 연희를 찾아가지만 이미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고 더러워질 대로 더럽혀져 있다. 본인의 사랑이 결국 연희와의 동침을 바라는 것이었다는 자각은 후를 궁극의 상태로 몰고 간다. 후는 나중에 다시 천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이미 벌어진 죽음들을 숭고한 의식으로 처리하고 맞이한다. 죽음을 처리한다는 것은 다른 죽음들을 종교적인 구원으로 이끈다는 의미가 있다.

세 번째 죽음은 아내의 죽음으로 개종하는 한정효이다. 군인으로서 철저하게 권력의 하수인으로 살던 한정효. 그는 아내가 죽으면서 전달한 성경책을 통해 종교적 체험을 한다. 도미하려던 한정효는 천산에 억지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참회의 심정으로 종교적 구원을 갈망한다.

교회사 강사 차동연은 천산에 쓰인 벽서를 보면서 단지 필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산수도원 72개 방에 얽힌 비극을 발견하게 된다. 차동연은 천산의 벽서는 믿음과 아름다움의 숭고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깨닫는다. 책에선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둘 모두 근본적이고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라는 것"이라며 "사람은 숭배하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으로 표현했다. 

3개의 죽음, 5개의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지상의 노래』는 한 편의 영화로 제작해도 좋을 만큼 독특한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총 3개의 죽음과 5개의 이야기가 운명처럼 얽혀있다. 5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형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형의 미완성된 원고를 쓰고, 그 죽음이 지닌 미스터리를 밝히는 강상호의 이야기.
2. 강상호가 완성한 원고가 덧붙여져 강영호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다. 이를 추적하는 교회사 강사 차동연. 차동연은 천산수도원이 죽음의 숭고함을 간직한 '카타콤(기독교 공동체 신자들의 무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그 의미를 찾아 나선다.
3. 군인 출신 장은 차동연의 칼럼을 읽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천산수도원의 비밀을 드러낸다. 4. 그 비밀의 장본인은 군사정권의 하수인에서, 아내의 죽음으로 개종하게 된 한정효의 이야기다. 한정효는 장군으로 불리는 권력자에게 계륵 같은 존재로 낙인찍힌다.
5. 마지막 이야기는 후와 박영민 중위, 후의 사촌누나 연희와 함께 펼쳐진다. 연희를 짝사랑 하던 박 중위는 사랑을 손에 넣는 순간 돌변한다. 이에 연희는 떠나고, 후는 박 중위를 칼로 찌른다. 후는 천산수도원으로 도망친다. 후는 연희를 흠모했다. 후는 자신의 행동과 반성을 통해 죽음의 숭고함에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죽음의 미학을 보여준 『지상의 노래』이지만, 6장 카타콤은 표절 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주인공 후가 연희를 찾기 위해 전국의 미용실을 떠돌고, 남성 미용사로서 기술을 배우는 설정과 캐릭터 등이 닮았다는 이유였다. 이승우 작가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럴 일이 없다고 항변했으나, 2012년 당시 일간지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서 『허물』을 평가했던 전력이 있다. 『허물』은 나중에 액자소설 형식으로 문학계 권력과 표절 사건을 다룬 『표절』(나남, 2014)이란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상의 노래』는 제49회 동인문학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표절 시비는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표절일까? 이승우 작가는 남성 미용사 등 관련 부분이 일반적인 내용이고, 이전 작품들에서도 미용사 관련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둘도 아니든 간에 작품 속 캐릭터와 플롯 등이 비슷하다는 점은 넓은 의미의 표절에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승우 작가로선 억울한 점이다. 이 빼어난 작품이 부디 오명을 벗어나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는 폭압적인 사회가 한 개인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그보다 한 개인의 죽음이 어떻게 숭고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지 독자들은 목도한다.

죽음의 숭고학은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순서를 밟아간다. 이승우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적으며 성경을 인용했다. 이승우는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라며 "죽음이란 삶의 균형 상실이다"라고 적었다.

누군가의 욕망에 따라, 죽음의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숭고함으로 이끌어 가느냐는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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