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파리의 택시 운전사는 <쎄느강은 좌우로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신작을 냈다. 벌써 17년 전에 일이다. 유신 시대 정치 사건에 휘몰리며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한 작가 홍세화는 자신의 경험이 녹아든 전작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 이어 프랑스 사회와 우리 사회를 비교한 비평 에세이로 돌아왔었다. 작가는 프랑스의 좌우 정치를 파리의 좌우를 가르는 세느강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그의 망명지 내부를 소개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가장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선 시절이었고, 정치 선진국인 프랑스 사회를 묘사하며 작가 홍세화가 널리 알린 관용이란 의미의 프랑스 단어 '똘레랑스'는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렸다. 세월이 흘렀다. 정권이 바꿨고, 목수정이라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망명이 아니라 유학을 한, 뼛속부터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은 우리에게 그녀의 방식으로 프랑스 '좌파'를 소개한다. 목수정의 <파리의 생활 좌파들>은 15명의 진보적인 파리지엥을 만나 직접 인터뷰한 글이기에 더욱 입체적인 감각으로 그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얼핏 '파리의 생활 잡화들'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파리라는 도시가 정치면 정치, 문화면 문화, 예술이면 예술.... 뭐든 들이대도 다 되는, 워낙 그런 곳이다. 잠시 오해를 하고 책을 들춰보면, 기대했던 신발, 피혁 제품, 생활 잡화들이 아니라 '좌파'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좌파!" 생소하진 않아도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단어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좌파의 의미를 대략은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에 힘입어 좌파란 무엇인지 감을 잠지 못하는 이들도 꽤 많을 것이다. '우'로만 치우친 주류 언론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이면 '좌'에 대한 무조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과 특정 세대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터넷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좌파보다 좌파를 비하하는 '좌빨'을 더 많이 봤을 지도 모른다. 이가 대변하듯 한국 정치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조차 좌파는 아니다. 국제적 기준의 정치 스펙트럼을 적용한다면 지금의 여당은 극우(나는 그들을 수구 세력이라 부르고 싶다), 야당은 우파와 중도 사이쯤에 있지 않을까. 물론 한국에도 진정한 진보를 외치는 소수 정당이 있고, 소중한 의석 몇 개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자주 이름을 바꾸는 관계로 나는 현재 그 당의 이름조차 헛갈린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그렇다 보니 좌파란 단어의 친밀도는 우리에게 그만큼 옹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한국 좌파 정당의 최전성기이던 2000년대 중반 민주노동당에 몸담았으며, 벌써 223년 전에 왕을 단두대에서 공개 처형한 혁명의 선진국에 살고 있는 작가는 우리에게 좌파란 무엇인지를 소개한다.작가가 만난 좌파라는 사람들(그 중 자신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일지도 모른다고 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은 지혜롭고, 열정적이며,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는 특히 '어떤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3장에 나온 사람들이 좋았다. 그 중 한 명인 사라는 1942년 파리에 살던 유대인 소녀였다. 그 해에 사라는 불과 13세 살 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가족 중 유일하게 아우슈비츠로 향할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그 버스에 올라탄 부모님을 사라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부모님 뿐 아니라 이모, 이모부, 사촌들 모두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녀의 인터뷰는 그녀가 어떻게 열렬 공산당원이 되었으며 현재 80대 노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공산당원으로써 그 끈이 놓지 않는가를 말한다. 그녀의 삶 자체가 홀로코스트라는 비극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프랑스 극우파 Front National의 약진이다. 극우파는 사람을 포용하는 인류애적 감성이 부족하고 '우리'와 다른 '너희들'을 분리해 배척하기 때문이다. 15명의 사람에게 작가는 "당신은 좌파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좌파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그들의 신념이 드러났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 투영되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대답을 소개하자면. 좌파는 부(富)를 나누고 사람들 사이의 평등을 말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좌파는 사회적 약자, 자본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데 노력하는 사람들 아닌가. -토마 페루아 좌파와 우파는 돈에 부여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 나는 돈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에릭 브로시에 좌파는 익숙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좌파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현상에 대해 반대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좌파 활동가는 그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샘물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 이것을 다양화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단 한가지의 투쟁에 몰두하게 된다. 이건 아주 전형적으로 위험에 빠지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솔렌 페랑도 좌파란 보다 평등하고 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브누아 켄더 나는 좌파가 아니라 극좌파다. 극좌파란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렌 장이들 중 가장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프랑스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가 68혁명의 소용돌이 속을 관통하고, 이후에도 질풍노도의 삶을 살아온 루이즈 포르의 대답이었다. 나에게 좌파란, 다른 먼지들이 진정한 자유를 갖지 못하고 있을 때 '나'라는 먼지만 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 루이즈 포르루이즈가 말하는 좌파라는 사람들은 인류애를 몸소 느끼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루이즈를 비롯한 이들의 삶의 기저(基底)에는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적잖은 감동을 받았고, 감동은 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당신은 좌파인가? 지구상에서 여전히 나 홀로 냉전이 종식되지 않은 한국에 사는 나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진다면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15명의 파리 좌파들의 삶과 견해가 내 마음 속에 공명하고 있지만 말이다. 당신은 좌파인가? 생태주의자인가? 페미니스트인가? 아나키스트인가? 라는 질문이 주어진다는 나는 이것들이 내포하는 사상과 운동에 동의할지라도 선뜻 그 범주에 속하는 '~주의자'로 나를 소개하기란 참 어색하고도 낯 간지럽다.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사상과 성향을 드러내기보다는 00학교 0학년 0반 0번 아무개, 00대학교 00학과 00학번 아무개, 어디 살며 무슨 일을 하는 아무개, 라고 소개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익숙하기 때문일까. 혹은 어느 범주에도 가두지 않고 '나'란 개인으로 고유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한쪽으로 가두지 않았던 마지막 인터뷰이 심영길 씨의 대답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20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40년 넘게 타국에 살아온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좌파라고 해도 반감은 없지만 어찌 보면 우파일 수도 있는 사람이다. 나는 과거로의 회귀성이 강한 사람이다......(중략) 동시에 나는 항상 걸어가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좌파라고 규정하고 우파를 적으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우파에 장점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을 찾아서 본받고 싶을 뿐이지 적으로 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작가가 소개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들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들 이야기를 더 하고 싶긴 하지만 나는 지금 책 소개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직접 그들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목수정 작가의 책 <파리의 생활 좌파들>을 통해서 말이다. 첨부파일 R155x225[1].jpg #좌파 #프랑스 정치의 이해 #목수정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