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의 즐거움

일상의 생활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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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희(hanyunhi)등록 2016.10.10 12:04
돼지풀꽃이 아름답다.

민락천변의 돼지풀꽃 아침 산책길에 흐드러지게 핀 돼지풀꽃이 아름답다. ⓒ 한윤희


아침에 일출을 보고 산책나가려니 밖에 안개가, 안개가 자욱하다. 일출은 글렀고 6시 조금 넘어 아파트를 나서니 조경으로 심어놓은 노송의 무리가 양쪽에서 날 반긴다. 아직은 뿌리를 내리지 않아 관리를 잘 해야겠지만 저렇게 고풍스런 노송을 심어놓으니 아파트가 산사인듯  고즈넉함에 물든다. 청도의 운문사 노송길을 생각나게 한다.

의정부시 민락2지구에 새롭게 조성된 민락천 전경 의정부시 민락2지구에 새롭게 조성된 민락천 전경이다. ⓒ 한윤희


사람들이 관리하여 깨끗한 민락천변길을 걷고 10년정도 살았던  예전 아파트를 지나 울창한 장미덩굴길을 따라 걸어 오르면 의정부의 허파숲인 추동공원 숲이 나온다. 경모제란 동래정씨 사당이 있고 그 옆으로 텃밭이 있어 농작물을 기르는 농부들을 볼 수 있다.

경모제란 사당은 원목의 기둥과 대들보 그리고 기와를 얻은 2채정도의 한옥이다. 사람도 살지 않으면서 죽은자를 위해 만든 것이다. 무덤도 그렇고 사당도 그렇고 죽은자를 위한,  그것도 먼 조상을 위해 상당한 예산을 소모함이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무덤이든 사당이든 죽은자에 대한 시설은 그것이 크든 작든 아름답든 추하든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산자에게는 혐오시설이다. 다수에게 혐오시설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가 뭘까. 유교의 허례허식의 잔재다. 내가 죽은자라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듯이 , 흔적없이 왔다가 흔적없이 사라짐이 산자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물론  제사나 성묘, 벌초  등은 산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행위이기에, 사람에 따라 일정기간  필요하기도 하다.    

텃밭에는 움막을 치고 노지딸기, 수박, 참외, 산딸기, 상추 등을 기르던 그리고 개도 한마리 가져다 놓고 정성들여 키우는 부부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젠 울타리로 겸사겸사 쓰던 산딸기 나무도 다 캐내어 없어졌다. 다른 작물들도 , 개도 , 움막도 없어져 폐허가 된 느낌의 텃밭이 됐다. 이제 그만 정리한다는 거구나.   7년 뒤 혹은 10년 뒤 나의 모습인것 같아 관심있게 보았던 노부부의 모습이었다. 내년엔 다시 볼 수 있을까.

조금 걸어 오르면 용현사가 있고 더 오르다 보면 약수터가 있다. 어릴적 TV로 드라마를 보다보면 산행하던 산객들이 산사에 들러 산사의 풍경을 감상하고 약수터에 들러 약숫물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어릴적 내가 살았던 충청도 부여에는 뒷산은 많으나 산사도 없고 약수터도 없어 아쉬움이 있었다.  이 추동의 숲에는 조그만 산이면서 없는게 없다. 용현사라는 조그만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에 약수터가 있어,  맑은물 먹고 오래살고 싶어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매일같이 물길어 간다. 정상의 효자봉에는 산림감시를 겸한 팔각정 정자가 있어 의정부 시내와 도봉산, 수락산을 조망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점은 숲이 우거져 있고 나무의 수령이  백년이상은 됨직한 큰 수목이 많다는 것이다.

추동공원의 우거진 숲길 추동공원의 아름다운 숲길이다. ⓒ 한윤희


추동숲의 능선을 한바퀴 돌고 숲의중턱에 있는 과학도서관으로 간다.  며칠전 아침에 93.9MHZ의 CBS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출근하려니 익숙한 디제이의 멘트가 나온다. " 나는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좋아한다. 정선을 거쳐 동해로 넘어가다 보면 맛있는 맛집이 있는데........"   어 . 이게 누구지. 이 작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하며 생각하니 바로 작가 김경의 국도의 재발견 이란 칼럼이었다.

아. 김경. 내용이 솔직하고 나와 정서와 리듬, 생각이 많이 비슷한 것 같아 그녀의 책을 예스24를 통해 사본적이 있었다. "나는 실패자에게 끌린다. "라는 약간 상식을 벗어난 제목의 책이었다.  그녀의 칼럼이 책이 좋아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을 찾아 읽어 보고자한다.  그녀가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 " 라는 소설책도 하나 썼다. 자신의 삶을 소설화 시켜 쓴 책이다.   다 읽고 나니 각인 된 내용 몇개를 적어 놓고 싶다. 

우선 섹스에 대한 생각이 드러난 부분이다.

"영희씨, 영국 남자랑 사귄적 있었잖아? 어땠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혀 당황하는 기색없이 태연하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냥 툭 던지듯,

"별로였어요. 특히 잠자리에서는........ 전희는 없고 지 하고 싶은 대로 아주 제국주의적으로 들이대죠."

"선배, 그럼 프랑스 남자는요?'

여름이가 신이 나서 물었다.

"걔들은 금기를 좋아해서 상대방에게 묻지도 않고 뒷문을 찾는 경향이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

여기저기서 '꺅'소리가 터져 나오며 난리가 났다.

"그럼 미국남자는 어때요? 예를 들면 뉴요커요."

"내 경험으로 양말신고 한다는 것만 빼고 괜찮아. 영국남자들처럼 뻔뻔하게 막무가내로 오럴을 요구하지도 않고 말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달콤하게 느껴지는 건 캐나다 남자뿐이야. 나보다 5살이나 어렸는데 내 이마나 정수리에 자주 입맞춤을 해 주더라고 . 길거리에서 조차."

몇몇 후배들이 감탄 어린 시선으로 나를 우러러보는 가운데 이쯤에서 쓸데없는 동경심의 싹을 잘라 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근데 중요한 건 섹스가 아니야. 기껏해야 넣다 뺐다, 넣다 뺐다 하는 몇분이야. 지겨운 일이지. 내 말은 처음엔 황홀하던 그것도 나중에 다 지겨워진다는 말이야. 게다가 아이 낳고 나면 한 달에 한두번도 안 한다며? 중요한 것은 대화야.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한국 남자가 최고라는 말이지. 말 통하고 , 정서 맞고, 같은 리듬으로 살 수 있는 남자. 이마나 머리에 키스하는 남자라면 금상 첨화고. 섹스보다 중요한 게 키스거든 , 적어도 나한텐 그래."

키우던 고양이를 잃고 상념에 빠져 사랑에 대해 나누는 대화이다.

"생각해 보면 개와 고양이는 우리에게 진짜 사랑이 뭔지 가르쳐 주는 존재인 것 같아. 학교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배우잖아. 정작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인데. 사랑이 없으면 누구도 결코 행복할 수 없는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만 강조하는 교육을 시키는 거지. 그 때문에 사람들은 연애를 무슨 헤게모니 싸움처럼 생각하게 됐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는 둥 하면서 말야.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사랑에는 그런 저울질 자체가 없어.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는 법도 없고 . 상대가 변화하길 바라지도 않고.  그냥 아무 요구없이 상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라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런 점에서 난 사실 그들이 인간보다 더 신성하게 느껴져. "

많은 독서의 힘으로 위인들의 명언도 많이 인용하였는데 , 그리스 극작가 카잔차키스의 글을 인용한 문장이다.

이 세상에서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담과 벌을 심어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나는 격분해서 소리쳤다. 현재의 삶에서 하찮은 것을 내놓고 내세에서 불멸의 재산을 주도록 알량하게 계산하는 주님의 계획서 같은 종교는 얼마나 약삭빠른가! 얼마나 단순하고 , 얼마나 간악하고 , 얼마나 인색한가! 그렇다, 천국을 바라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게 말한 카잔차키스의 크레타섬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는 버나드쇼의 묘비명보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더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사는게 따분하고 지겨울 때, 산책을 나선다. 이른 아침의 산책길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알리고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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