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국가" 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미신에 맞서 미신으로 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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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cwleekr)등록 2016.10.28 20:11
주술을 믿지 않는 합리적 인간은 주술 현상을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추미애 야당 대표는 '몬스터 자매(?)'가 "심령대화"를 나눈다든가,  "독재정치를 넘어서 신정정치"를 주도한다고 비판했다. 탈주술을 주창하는 진영이 오히려 주술적 담론을 채용하는 현상이 흥미롭다. 인터넷의 수많은 댓글  "한낱 무당의 푸닥거리에 이 나라가 놀아났단 말이냐?"도 마찬가지 어법이다. 정말로 샤마니즘을 믿지 않는다면 누군가 굿을 해도 전혀 으스스하지 않다. 그런 것은 무시해도 될만한 아무 효력 없는 무의미한 행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미신적 행동을  온몸으로 퇴치하자고 소리친다면, 그 사람은 미신의 악영향을 인정하는 셈이고, 그 말은 결국 비판 대상과 마찬가지로 귀신을 믿는다는 얘기다.

아서 클락의 어느 SF소설이 생각난다. 적도 상공위의 정지위성과 엘리베이터로 연결할 지구상의 어느 최적지에 하필이면 오래된 사찰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보상을 제안하고 이 우주 프로젝트의 인류사적 중요성을 설득해도 신심이 강한 스님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주  프로젝트는 하릴없이 연기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디선가 나비떼가 날아와 절의 스님들을 습격한다. 덕분에 그 절은 텅 비게 되었고 프로젝트는 실행될 수 있었다.

미신적 대상을 몰아내기 위하여 은연중에 미신 담론 안에 진입하는 현상은 대상을 모방함으로써 대상을 몰아내려는 미메시스전략이다. 인간은 동물의 탈을 쓰고 춤을 춤으로써 동물로부터의 공포를 이기려 했다. 스님을 몰아내려면 보상금이 아니라 나비떼가 필요하다. 할로윈 데이의 괴물 가면은 재액을  퇴치하기 위하여 인간이 재액의 형상을 모방하는 행위다. '선거의 여왕', '박통의 공주'라는, 특히 어르신 세대에 근절되기 어려운 영적 마력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적으로 푸닥거리 벌이는 의례를 통과해야 한다. 요 며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불꺼진 샤마니즘 박물관  복도를 걷는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이때 탈주술, 합리성, 계몽이 확보되려면 선의의 목적으로 미신을 활용한 미신 비판이 불가피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보자. 박정희의 신화란 사실 공식적 미신 아닌가? 어떤 미신이 공식적이면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데, 나날의 실천, 눈에 보이는 물질 효과를 낳는 사회경제적 순환과 접속함으로써 미신처럼 보이지 않고, 국가 이념 따위로 승격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많은 정부 비판자들이 푸닥거리 담론을 승인하는 것은 결국 자기 안의 오랜 어떤 믿음과 결별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이제 몬스터 자매와 그들을 따르는 극소수의 일당만이 은밀하게 믿는 어떤 사교(최태민 운운)를 한심하다는듯이 이야기 하지만, 그 사교는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굳건히 믿었던 '근대화 계획'이라는 국가 신화였다. 그러므로 몬스터 자매의 조야한 사교가 부상한 것은 (몬스터 자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신체 현상이다. 신체 일부에 굳건히 자리잡던 어떤 것이 어느날 갑자기 이물질로 느껴지면서 신체는 배출을 준비하고 이에 상응하여 따라온 지각 현상이 바로 '자매의 심령대화' 같은 혐오스러운 이미지인 것이다.

주술에 대한 진정한 작별은 주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누군가를 몬스터 자매로 표현하는 주술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지불식간에 감염시켰던 이데올로기를 비로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들이 추하게 보이면 보일 수록, 그간 우리의 신념, 우리의 이데올로기의 상당한 지분 또한 추했음이 결과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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