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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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춘(cusdamato)등록 2016.11.18 15:13

버려진 리어카 정자동 123번길에 멈춰있는 펑크난 리어카 ⓒ 강봉춘


할아버지께서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강아지 같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 갈 때마다 뵈었는데. 2주일은 족히 넘은 거 같다.

이 그지같은 동네가 내가 살아야 할 곳이라고 깨달아버린 순간 내가 제일 먼저 했던 게,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던 그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린 거였다. 할아버지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인사를 받아주셨다. 고개를 까딱이는 시간들이 제법 쌓이자 서로의 눈동자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엔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어주시기도 하셨다.

다섯살 여섯살 난 우리집 꼬마 두 녀석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어린이 집에 다닌다. 나는 본디 촌사람이라 아이들이 동네 길가에서 제 맘대로 놀고 다니는 모습을 늘 꿈꿔왔다. 골목은 지금, 저기 자리만 차지하고 도대체 움직일 줄은 모르는 자동차들이 대장행세를 하고 있다. 그래서 저 차들을 몰아내고 아이들이 주인이 되게 꾸미려고 나는 이 전쟁의 책사를 자처했다.

혹자는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라며 성범죄자를 집마다 고지하고, 수시로 경찰 순찰을 돌게 하였지만 내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택한 방법은 길가에 나와 계신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것이었다. 등원 길과 하원 길에 매번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실 수호신일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스승의 말을 새겨 나부터 그러고 다녔다. 또 스승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골목골목 다 다녀보라고 하셔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낯선 길로 오기도 했다. 길눈이 익어가자 우리집 꼬마들이 이젠 제법 어린이집에서 집까지 나없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 길가에 나와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 아이들의 수호신이라 여겼다.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고 경고장이 붙어도 쓰레기는 여전히 그 곳에 모인다. ⓒ 강봉춘


맞은 편 빌라앞에 버려진 오렌지색 소파는 치워지지 않고 몇 년째 그대로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 계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바로 앞 전봇대 밑은 매번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다. 그 곳엔 예쁜 분리수거함 대신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다. 나는 이 그림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 사진처럼 내가 사는 동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버려진 소파, 그 버려진 소파에 앉아 있는 노인, 그 노인 앞에 놓인 지저분한 쓰레기들, 쓰레기를 치우고 가는 청소부, 그래도 여전히 쌓이는 쓰레기들, 마침내 나타난 감시카메라와 경고판. 그 앞에 쭈그려 앉아 동네 청소도 하고 벌이도 하고 건강도 좋아져 자식들 눈치볼 일도 없어 좋다고 말씀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까지.  

마침 지나는 다른 할아버지가 보였다.

" 안녕하세요. "
" 예, 안녕하세요 허허. "
" 할아버지, 그런데 여기 매일같이 다니시던 리어카할아버지 혹시 어디 가셨나요? "
" 어, 저~어 기. 몇 주 전에 술 먹고 퍼진 뒤로 일어나질 못해 누워 있어. "
" 아.... "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내가 몇 주 전 300번 버스를 타러 파장시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할아버지 한 분이 시장통 가운데 길에 앉아 크게 소리 지르며 앉아 계셨던 그 장면이었다. 그런 일은 그저 내 가는 길의 흔한 배경에 지나지 않은지라 얼굴을 얼핏보고 훌쩍 지나갔었는데...... 그래도 그 허옇고 짧은 머리가 내가 아는 분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해서 찜찜함이 약간 남아 있긴 했었는데......

연달아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반갑게 떠들다 돈 많이 벌어 시골에 내려가겠다는 녀석에게 내가, 나랑 같이 폐지 주우러 다니자고 우스개소리를 던졌던 기억도 났다. 같이 다니면 폐지줍는 것도 재밌을 거라고 낄낄대었던 나였다.

햇빛을 찾아 나온 노인 햇빛이 드는 곳에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 계시다. ⓒ 강봉춘


오늘도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길가에 놓인 평상에 앉아 계셨다. 늘 햇빛이 잘들어 다쓰러져가던 나무판대기를 평상 삼아 할머니들이 날 좋을 때마다 옹기종기 모여 얘기 나누시던 그 곳. 그래도 여름 지나고 누가 괜찮은 평상으로 바꿔 놓은 걸 보고 우리 동네도 눈 달린 사람이 있긴 있구나 마음 속으로 안도하며 겉으로 무심하게 지났었다. 그 곳에 늘 보이던 할머니들이 안보인다는 사실이 이렇게 갑자기 서운함으로 온 적이 없었구만......

저 홀로 계신 할아버지의 옆자리에 다가가 앉아 볼 용기가 없는 걸 보면, 나는 분명 내 앞에 펼쳐진 내 미래의 모습을 보고 달가워 하지 않는게 분명한 게다. 시간 여행을 떠나왔던 스쿠루지는 마침내 깨달아 변했지만, 나는 아직 내 미래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절대 내 미래가 아니 될 것이라고 부정하고 있는 극 1막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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