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이중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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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cwleekr)등록 2016.11.28 09:42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하니 '이중권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참여자의 수가 많은 것(서울만 150만), 긴장 대신 이완이 지배적인 분위기, 동일하게 반복되어 온 지난 한달간의 상태. 요컨대 정권에게서 느끼는 공포가 전 사회적 축제의 에너지로 활용되다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교착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
경찰과 시민 양쪽 모두의 평화전술은 시민들의 준법정신 때문도, 경찰의 선의 때문도 아니다.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상반된 크기의 비등한 힘들이 서로를 마비시키면서 태풍의 눈같은 무풍지대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중권력 상황은 마치  힘의 작용이 없는 무중력처럼 느껴진다.  자연계에서든 인간계에서든 힘들의 현존이 부재로 체험되는 것은 우리 인식의 관성을 착란시키기 때문에 마법처럼 나타난다. 대통령을 마음껏 격하하고, 자동차들에 빼앗겼던 대로에 관한 권리를 도보자가 통째로 되찾은 초현실주의적인 경험, 자정이고 우리모두 뭔가에 취해 있지만 범죄의 염려가 없는 기적같은 밤, 한 마디로 공동체가 재생하는 해방구의 시공간.
  그러나 이 시공간에는 힘의 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권력 사이에 작용하는 힘들의 합력이 영인 것이다. 이는 세 가지를 일깨워준다.
  첫째, 경찰 치안, 자동차, 밤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과거의 나날들에 그 당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없는 줄 알았던 힘의 작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보이지도 않고 일종의 자연질서처럼 고정된 줄 알았던 그 힘들은 인간이 임의로 설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힘은 조절될 수 있고, 지금은 그 힘을 최소한으로 조절한 순간이다. 반대로 말하면 힘을 증가시키는 조절(가령 7,80년대 전체주의적 삶으로의 회귀)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체험하는 시공간에 작용하는 힘은 고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라는 것, 그 변화에 따라 이러저러한 전혀 다른 생활양식들이  마술처럼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둘째, 유감이지만 이중권력은 영속적이지 않다. 그것은 계곡의 골 아래 놓인 구슬이 아니라 정상에 놓인 구슬, 즉 불안정한 균형이다. 이중권력은 제도를 와해시킬 정도로 대중의 힘이 강하지는 않지만, 제도를 정상화시킬 능력을 권력이 이미 잃어버린 시점에서 탄생한다. 이는 역사의 한 과도기일 뿐이다. 봉기한 민중에 의해 궁정에 연금된 루이16세가 민중을 박살내줄 군대를 보내달라고 외국 군주들에게 끊임없이 구조 요청하던 프랑스 혁명 초기의 수년간이 하나의 예다. 또 다른 사례로는 1917년 2월과 10월 사이 자유주의 부르주아였던 케랜스키 정부와 노동자 권력이 대치하던 혁명 러시아를 들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이중권력의 표면을 장식하는 것은 해방 분위기 (연일 계속되는 민중의 축제) 였지만 종국에는 혁명 내지 반혁명으로 제도화할 것이다. 
  셋째, 이중권력 기간에  그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던 각 분야의 제도들을 실질적으로 고쳐야 한다. 이중권력 상태를 금기가 풀려 버린 정치비판을 만끽하는 축제의 기간으로 소비해버려서는 안된다. 이미 산송장이 되어버린 최고 지도자에 대한 조롱은, 더 이상 그가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위험을 향하여) 비판하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이중권력 상태에서 시민을 상대로 농성중인 지도자는 우리의 구체적 삶과 연결된 긴장이 끊겨버린 추상적이고 우화적인  존재일 뿐이다. 물론 정파를 갈아치우는 일련의 상위 정치일정( 탄핵, 체포, 특검, 국정조사, 대선, 개헌 등)이 전개될 것이다. 이 일정은 이중권력 기간이 지속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혹은 이중권력을 마감시키는) 장치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분산적인 개선이 더 중요하다. 대기업 소유구조 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노동개혁, 선거제도 개혁과 같은 우리 삶의 직접적인 고통을 개선하는 실질적 혁신이 광장에서 분임토의의 형식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최고 정치지도자의 무력화한 상태가 지속하는 것은, 마땅히 퇴진해야 할 사람이 자리를 지키는 열통터지는 상황인 것만이 아니다. 이중권력은  시스템 전반의 개선이 용이할 수 있도록 말랑말랑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인격에 대한 비난으로 뭉뚱그려진  시민 일반의 권리 운동을 배경으로, 대중의 각 분야를 담당하는 운동조직들(노조, 시민단체, 정당 등)이 구체적인 개혁안, 정책 목표를 공적 토론에 붙이면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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