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선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삶에서 필요한 것.

검토 완료

신희라(yuohao88)등록 2016.12.14 10:21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라."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찾아라."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이너처럼, '00하는 00'으로 자신의 직업을 설정 해라."

"메시지(혹은 가치)를 전달하다보면 돈은 따라온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어봤나요?
한국의 조직에서 구성원을 부속품처럼 여기고 성과만 뽑아내려하는 성과주의, 나이와 연륜에 따라 존중의 정도가 달라지는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끼면서 새로운 일의 정의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타고 위와 같은 메시지가 더욱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재밌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가치를 날카롭게 다듬고, 재밌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존재 자체가 지지받는 분위기'를 연구하며 이 것을 퍼뜨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서 독자들이 이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환기시키거나, 직접 그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일을 하며 느낀 것은, 가치를 전달하며 재밌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려면 생각보다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 외에 말이죠. 요새 주위에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가치나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하거나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익한 프로그램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죠. 그러나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저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바로 '함께 하는 사람의 중요성' 입니다.

저는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이 많았습니다. 25살까지 모든 일이나 공부를 '이 정도면 됐어.'라는 정도까지만 해서 성취감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능력을 칭찬받아 본 적도, 스스로 '난 00을 잘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약 1년 동안 '일을 못 한다'는 조롱이나 화를 감당하는 시간을 겪었습니다. 제 능력에 대한 확신이 약한 상태에서 경험한 회사 생활은 제 자신감을 떨어뜨렸고 저는 사회에서 인정 받을 만한 무언가를 만들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족할만한 일을 만들거나 찾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신나고 재밌는 활동도 일이 되는 순간,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지면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워졌습니다. 예를 들어 쓰고 싶은 글은 많았지만 저에 대한 의심과 반응에 대한 오만가지 걱정들 때문에 글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을 지지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인터뷰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개의 의심과 걱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를 비웃거나 욕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무관심하면 어떡하지?
나도 몰랐던 논리적 오류가 있으면 어떡하지? 멍청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이렇게 스스로를 '넌 못 할거야'라는 늪으로 끌어내릴 때마다, 제 자신을 끌어올릴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동료들의 관찰과 공감에 기반한 진심어린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찰에 기반한 응원은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해주는 때가 많았습니다.

"00과 인터뷰를 하며 제 자신이 정리되었고 지지 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보여요."
"00이 쓴 글을 읽어봤는 데 전문성이 느껴졌어요. 멋있었어요."
"글이 굉장히 정돈되어 있고 잘 읽혀요. 읽기 편했어요."

또한 공감에 기반한 응원은 다음과 같을 때가 많았습니다.

"저도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전 그냥 해야하는 일을 해요."
"누구나 그런 불안은 있어요. 저도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 번 같이 해봐요."

이런 응원을 들을 때마다 제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하고 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을 느끼며 일을 시도해 볼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한편 제가 갖고 있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그 한계를 깨고 나갈 수 있는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시각은 가치관, 특성, 밟아온 삶의 역사에 따라 형성되어서 그 사람의 개성과 한계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각대로만 진행하면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도 일이 만족할 만큼 풀리지 않거나 그 다음 스텝을 모르겠는거죠. 그랬을 때 동료들의 의견을 듣고 더 다양한 시도를 하며 한계를 깨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제가 전문성으로 어떤 역할을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방황할 때 한 동료가 저에게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머리가 복잡할 때 정리를 하기 위해, 인생에서 의미있는 순간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써 왔습니다. 저에게 글은 잘 하는 무엇이 아니라 머리를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한 습관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전문성으로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료가 제안을 해주면서 글쓰기를 전문성으로 키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습관이기에 진입장벽이 낮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는 글 쓰는 일을 시작했고 이제는 글이 제 전문성을 이루는 하나의 큰 축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원하는 만큼의 글이 안 나올 때 '전문성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시도를 하며 기존의 능력에 지식과 지혜를 덧붙여가는 과정이다'라는 동료의 말을 버팀목 삼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시점, 문체, 형식, 길이 등 글에 다양한 변주를 주며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적합하고 제가 쓰기에 가장 편한 글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조언을 통해 시야를 넓히며 제가 원하는 일을 구체화하고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위에 동료가 없거나 적더라도 자신만의 일을 찾는 여정을 잘 걸어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무엇과 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해주고 넓혀주는 동료가 있다면 이 여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장애물을 조금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 글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면 여러분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지지해주고, 넓혀줄 수 있는 동료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러분이 타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런 동료가 되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바로 그런 사람을 딱 만날 수 있을 지 없을 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시도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포함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중력이 있습니다.
그 중력이 이끄는대로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당신을 이해해주는 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서툴고 거친 글 속에서 제 진심의 중력이 전해졌을 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제가 말하고 싶었던 전부입니다.

- <유유자적 피플(무중력 사회를 사는 우리)>에서-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