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지 벌써 2주가 되어갑니다. 대통령의 업무를 정지 시켜 놓았더니, 국민들이 왜 대통령의 탄핵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는지, 200만 촛불은 함성은 안중에도 없이 반성 없는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행동은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고 있습니다. 황교안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에 기생해 저지른 다양한 악행들, 부역 또는 적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탄핵이후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시민들은 계속 촛불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야기 하고 싶은 적폐는 바로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정부의 불인정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사회로 가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우리사회가 풀고나가야 할 숙제임은 분명합니다. 최근 어지러운 정국 속에, 그리고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역사가 베트남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430명의 베트남 빈호아 마을의 사람들이 한국군에 의해 잔인하게 죽어간 날, 50년 전 12월이었습니다.
전쟁의 피해국으로 일본에 사과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가해국이니 먼저 사과해야한다고 말씀하셨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님들. 그 뜻을 이어받아 빈호아 학살 50년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5일 베트남 나비평화기행의 여정에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과 함께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이 베트남에 방문했습니다. 직접 겪은 피해자와의 만남, 그리고 베트남 민간인학살에 대한 고민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기자 말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손길로 시작된 베트남 나비평화기행
베트남 평화기행을 떠나기 전, '위안부'할머니들이 많이 생각났다. 이번 기행은 '나비기금'과 함께 하는 평화기행이기 때문이었다. '나비기금'은 2012년 3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뜻을 이어 받아 전시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금이다. 일본군'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은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삶을 넘어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자신과 같은 전시성폭력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피해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국으로서의 책임도 다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비기금으로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에 의해 전시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 하미학살의 생존자이자 이제 고인이 된 팜타호아 할머니의 아들과 참가자 만남 ⓒ 마리몬드
닮아있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와 베트남전쟁 한국군 학살 생존자
현재 생존해 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은 대부분 건강이 매우 좋지 않으신 편이다. 그래서 할머니들께서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장 가까이에서, 누구보다 경청하며 말을 들어주시고는 한다. 베트남에서 만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피해자 도안응이아씨와 이제 고인이 된 팜티호아 할머니의 아드님(전후 피해자)께서는 참가자 한명 한명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마음으로, 진심으로, 눈물로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 모습이 너무나 닮아있었다. 자신의 피해를 다시 떠올리고 기억하기에도 힘든 과정일텐데 다른 이들과 진심으로 아픔을 나누고 함께 하고자 하는 모습에 더욱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 빈호아 학살 50주기 위령제에 찾아가 사죄의 마음을 담아 묵념했습니다. ⓒ 마리몬드
원망과 용서의 눈빛, 한국군 학살 피해 주민들의 마음
이번 베트남 평화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빈호아학살 50주기 위령제에 함께 했던 것이다. 마을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우리 눈을 사로 잡은 것은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와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고 새겨진 한국군 증오비였다. 당시 피해자였던 도안응이아씨는 매년 위령제가 되면 비가 내린다고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의 슬픔이 내리는 것처럼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위령제를 준비하고 있는 마을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참배에 함께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내내, 가해국으로서 한없이 무겁고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바로 들 수가 없었다. 아직도 슬품과 분노, 원망과 용서로 뒤섞인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생생하다. 향을 올리고,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릴 때마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학살 현장이었던 구덩이를 둘러싸고 절을 할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사나운 비를 몸으로 맞으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날의 비는 마치 '더 진심으로,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사람이, 베트남전의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응하고 사과하기 전까지 피해자들의 눈물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는 호된 꾸짖음을 하는 듯 했다.
▲ 빈호아 학살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도안응이아씨와의 만남 ⓒ 김연희
우리는 한 곳에선 피해자였고, 다른 한 곳에서는 가해자였다
일본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줄곧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냐고 묻고는 한다. 그리고 사과는 언제 할거냐며 항상 따져 묻고, 누군가 한명은 그 언짢은 대화에 기분이 나빠하며 대화를 끝내기 일 수였다. 나를 포함해 국민들의 반일 감정은 말로 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 일테다. 짧은 여행기간동안 우리가 직접 만났던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큰 반한(反韓)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학살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 학살 후 단 한명의 생존자라도 나올까 무서워 풀 한 포기마저 베어버린 텅 빈 마을에서 살아야 남아야 했던 주민들, 학살 피해자의 대부분인 여성들과 아이들… 이들이 지난 50여년간 가지고 있었던,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가지고 살아갈, 한국에 대한 적대심은 엄청날 것이다. 잠시 만나 뵈었던 피해자 가족 분들 또한 당시를 생생히 떠올리며, 온 가족이 죽어갔던 것에 대한 크나 큰 아픔과 분노를 비추셨다. 하지만 사죄를 하러 온 우리들의 손을 꼭 잡고, 어깨를 꼭 안아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어쩌겠어요. '사과하고 싶다'며 이렇게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을 제가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어요"라는 피해자 가족분의 말을 들으며,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 밀라이 학살 박물관 전시사진 전쟁의 끔찍한 기억, 피해국으로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가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일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 김연희
피해자 아픔의 증언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베트남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도 참을 수 없는 괴로운 증언들을 수 없이 하고 있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증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죄와 반성 그리고 참혹한 전쟁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진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진실어린 사죄를 받기 위해 수십년간 아픈 고백을 해야만 한다는 것 또한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임을 알아야한다.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라고 말씀하셨던 우리 '위안부'할머님들의 고통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의 심정이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기억하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군 학살에 대해서도 우리가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 전쟁을 정당화하고 기념해온 우리 역사를 반성하는 것,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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