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남성, 먹히는 여성

비타민C부터 쿡방까지, 미디어는 '먹는 것'을 통해 젠더를 어떻게 재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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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distract0218)등록 2017.01.04 13:19
음식과 젠더,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사소한 주제다. 그러나 사실 이 두 영역은 끊임없이 페미니즘 영역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여기서 다 말하기 어렵겠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대강 다음과 같다.

Ⅰ 여성의 몸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의 몸은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어 왔다. 그리고 그 몸 자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자 수단이 바로 음식을 먹는 것이다. 혹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되겠다. 우리는 여기서 수전 보르도(Susan Bordo)의 말마따나 거식증, 폭식증이 굉장히 최근에 발생한 '질병'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Ⅱ 음식을 하는 것, 즉 노동의 문제와 연결된다. 산업화 시대는 성별 이분법적 노동을 요구했다. 근로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에 따른 임금을 받는 시스템은 기존 농업이나 가족 사업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 내 분업을 요구했다. 그에 따라 남성은 나가 일하고 여성은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현재의 성별 분업이 정착되었다. 자연스럽게 요리와 관련된 모든 것, 즉 요리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가족들을 다 먹인 뒤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이 총체적인 노동의 과정이 '모성'이라는 이름하에 지속되어 온 것이다.

Ⅲ 욕망의 주체는 항상 남성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남성에게는 이 욕망을 통제할 이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여겨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성과 합리성은 상황에 따라 정당화하기 나름이었다. 똑같이 간음을 해도 "여자가 꼬셨다"라는 수사가 항상 지배적인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남성은 진정 욕망의 주체였다. 그리고 이 욕망은 인간의 3대 욕구라고 하는 식욕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여성의 식욕은 남성의 식욕과는 상당히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죄의 일종이 된다. 더군다나 주체성도, 합리성도 갖추지 못했으니 얼마나 위험한 것이겠는가?

이렇게 음식을 둘러싼 인간의 모든 행위, 음식 그 자체는 항상 젠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실제 미디어에서 생산된 이미지를 이용한 해설을 해보겠다.

1. 건강한 몸? 날씬한 몸?

서구 기준으로는 1990년,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 건강한 몸, 웰빙 식품 등이 큰 인기를 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젠더 프레임을 사용하도록 한다.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건강의 이미지는 몸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특히나 여성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남성에 비해 심하다. 여성의 건강한 몸은 외형적인 몸의 '라인'의 문제가 된다. 반면에 남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건강한 몸을 이야기할 때 몸의 라인 및 외형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다. 다음 광고들을 보자.

이효리가 등장한 마시는 비타민C 광고 "따먹는 재미가 있다"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다. ⓒ 쿠키뉴스


유이 비타민 음료 광고 부각되는 것은 유이의 바디라인이다. ⓒ 광동제약


유재석이 등장하는 비타민 음료 광고 전형적인 남성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 고려은단


우리가 주목할 점은 우리 사회가 '건강'을 '음식'으로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이효리와 유이의 광고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이미지는 한결 같이 그녀들의 '라인'에 대한 강조다. 건강한 여성은 즉 '보기에 좋은 여성'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이효리 광고는 당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바로 아래 문구 때문이다. "따먹는 재미가 있다". 반면 그림3에 유재석이 나오는 비타민 광고를 보면 넥타이를 한 직장인의 이미지가 보인다. 이처럼 남성이 건강식품을 소비하는 방식은 결코 몸의 외적인 부분이 아니다. 직장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몸의 내적인 활력을 제공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도 결국 대상화를 하는 주체(남성)와 대상화를 당하는 객체(여성)는 명확하게 갈린다. 여성은 남에게 보이는 부분, 몸의 외적인 라인을 위해서 즉 남을 위해서 비타민 음료를 마신다. 남성이자 주체는 몸의 내적인 피로 회복, 즉 자기 자신을 위해서 비타민 음료를 마신다. 그리고 남성에게는 화이트 칼라의 직장인이라는 계급적 이미지가 있는 반면에 여성에게는 그 어떠한 계급적 지위를 나타내는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 다는 점 또한 눈 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먹는 여성, 먹히는 여성

2-1) 욕망 그중에서도 식욕은 남성에게 정복의 대상이 된다. 가령, 미디어에서 남성들이 맛있게 먹는 것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입 주위에 양념을 묻혀가며 "캬!" 등의 감탄사를 연신 내뱉는 것이다. 반면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번에도 성적 대상의 위치를 요구받는다. 얼마 전 논란이었던 '잘먹는 소녀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 프로그램이 전형적으로 그려내듯 여성이 음식을 먹는 이미지가 전형적으로 포르노그래피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사실은 이미 광고업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령 밑의 쯔위 먹방은 '쯔위 혀'라는 이미지로 소비, 유통되었다.

아이돌 여가수 쯔위의 먹방 이 사진은 '쯔위 혀'라는 제목으로 유통된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나아가 여성은 음식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따먹는다"라는 언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의 욕망 중에서 성욕은 식욕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주체적인 행위다. 왜냐하면 [먹는다] 이전에는 [소유한다]라는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따먹는다"는 언술도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먹는 주체 = 남성, 먹히는 객체 = 여성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앞서 이효리 광고에서 보았듯이 천박하게 대놓고 광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디어에서 여성=음식의 이미지는 더 교모하다. 일례를 들면 비교적 최근 혜리가 출연한 너구리 라면 CF를 들 수 있겠다. 보통 라면 CF에서 배우들을 상상해 보자. 대부분이 남성들이었고 이들은 후루룩! 소리와 함께 '전형적인 남성적 먹기'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최근 라면 CF에서는 혜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문제 없어보이는 이 라면 CF에는 지금까지 너구리 라면 CF와 다른 점이 보인다. 바로 혜리가 너구리가 된다는 점이다. 그녀는 "너구리 한 마리 잡고 가세요"라고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남성은 단  한번도 이런 식으로 음식과 동일시 된 채 소비된 적이 없다.

너구리 CF 속 혜리 "너구리 한마리 몰고가세요"라고 말하는 당사자는 다름아닌 헤리 자신이다. ⓒ 농심 너구리


2-2) 음식을 먹는 여성, 욕망으로 가득찬 여성의 이미지는 빅토리아 시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그런데 상업 광고 등 미디어에서는 여성에게 모순적인 행위를 주문한다. 그것은 바로 "코르셋을 벗지 않고 먹는 것"이다. 현대사회 미디어에서는 남녀노소 끊임없이 먹을 것을 요구한다. 이때 가장 취약한 계층이 바로 젊은 여성이다. 젊은 여성은 마른 몸매를 요구받는 동시에 먹을 것을 요구받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게 필요한 태도는 욕망을 초월한 상태가 되는 것 이다. 먹고 싶은 욕망에 얽매이지 않는 동시에 먹어도 찌지 않는 초인이 되는 것이다. '배고픔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 과정은 가히 정신분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실연당한 여성이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올린 채 양푼에 비빔밥을 해서 게걸스럽게 먹는' 이미지 혹은 '밤에 몰래 허겁지겁 그 많은 비빔밥을 먹는 이미지'가 왜 이렇게 자주, 많은 공감 속에서 소비되는지 이해해볼 수 있다.

드라마 '그대 웃어요'에서 이민정(극중 정인)의 양푼비빔밥 먹방 양푼비빔밥과 여성 그것은 자아분열적이다. ⓒ SBS 드라마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가장 꾸밈없는 모습이 되어서야 내 안에 자리 잡은 욕망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허락되기 위해서는 실연, 즉 남녀관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때 먹는 것은 자신에게 내리는 벌인 동시에 억압에 대한 저항이다. 벌과 저항은 먹는 것이라는 같은 행위에 모순적으로 자리 잡는다. 그것은 정말이지 자아분열의 이미지다.

3. 요리하는 남자

먹방에 이어서 쿡방이 큰 인기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는 그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불과 2, 3년전과 비교하면 쿡방의 인기는 말 그대로 엄청나다. 집밥백선생, 쿡가대표, 냉장고를 부탁해 등의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었고 출현하는 셰프들은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CF에 더 많이 나온다. 쿡방으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이미지는 바로 '요리하는 남성'이다. 그들은 가정적이다. 지친 아내,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방이 여성만의 공간이라는 공식을 표면적으로는 부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쿡방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면 그 내면에 자리잡은 음식-젠더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다..

3-1) 대부분은 남성 출연자다. 그리고 이들은 '학생'이 된다. 그들에게는 요리 전문가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요리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서 진지하게 요리를 '교육받는다'. 요리는 전문적인 것, 교육이 필요한 것 나아가 공적인 것이 된다. 계량컵, 계량 스푼 등 정밀한 측정도구로 측정되는 양념의 양, 듣도 보도 못한 요리재료나 요리기구가 등장한다. 정확한 레시피가 주어지고 출연자들은 성실하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한다.

TVN '집밥 백선생' 전문가와 학생, 전문적 요리도구와 남성 이 모든 것은 무관하지 않다. ⓒ TVN


이것은 우리가 알고있던 요리라는 행위와는 너무나 다르다. 요리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또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에게 어깨 넘어 전수받은 것이 바로 요리다. 그래왔기 때문에 그래야하는 것, 그만큼이나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던 것이 요리였다. 그러나 미디어가 재현하는 요리하는 남성은 마치 그 순간 특별한 이벤트를 하고 공적인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으로 그려진다.

3-2) 요리라는 과정은 비단 주방에서만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다. 장을 보고, 그것을 다듬고, 요리를 하고,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 이 과정 전체가 바로 '요리'라는 완성물에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대부분 미디어에서 남성 출연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그들은 장을 보지도, 설거지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잘 다듬어진 재료를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서 지지고 볶으면 되는 것이다. 즉 요리를 위한 전체 과정 중에서 겉보기에 가장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과정, 주방에서 만드는 과정까지만 남성에게 주어진다. 또 다시 여성들의 일상노동은 효과적으로 삭제된다.

전형적인 '장보기' 요리는 비단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다. ⓒ http://www.freedomsquare.


3-3) 이처럼 가정 내 성별 분업에 참여하는 남성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성별분업을 하지 않는 남성을 문제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성별 분업을 하는 남성을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에 한 공개된 스마트 냉장고 CF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나가있는 동안 남편은 스마트 냉장고의 기능을 십분 활용해 아이에게 요리를 해준다. 그리고 아내는 뿌듯해하고 가족은 행복해진다. 바로 이런 방식이다. 여성의 부재, 그것이 전제조건이 될 때 남성은 스마트 냉장고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주방에서 여전히 남성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그저 특별한 순간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일상을 주도하는 미디어, 그것을 낯설게 보는 순간 우리는 보다 섬뜩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한 진실은 요리부터 섭취까지, 먹는 것을 둘러싼 모든 행위는 결코 젠더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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