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에 가까워오자 먼저 도착한 홍사마 회원들이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회원들의 몸짓은 점차 환호성으로 귓전을 울렸다. 그 울림에 5시간을 달리며 뻣뻣해진 허벅지의 피로가 가시고 발걸음까지 가벼워졌다. 바로 앞에 홍사마 휘장을 뻗쳐든 찬규 선배와 병규 후배도 신이 난 듯 속도가 빨라졌다. "병규 후배, 조금 천천히~" 우린 멋진 피날레를 상상하며 결승선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섰다. 1시간 넘게 기다려준 회원들이 고마웠다. 2016년 어느 가을날, 우리는 춘천에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전설을 남겼다.
▲ 가을의 전설 춘천에서 ⓒ 김경수
▲ 한국인의 열정 춘천 호반에서 ⓒ 김경수
김구 선배를 처음 만나건 3년 전 송년회 자리에서다. 앞이 안 보이는 김 선배를 동기 선배가 데리고 온 터였다.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그 후 나는 김 선배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내가 춘천마라톤 대회 신청을 하고 며칠 지나 홍사마 회원의 부친상 빈소에 조문을 갔다 선배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경수 후배, 이번 춘마 신청했나?", "예", "어~ 그럼 잘됐네. 시각장애 내 동기, 김구가 춘마 신청했거든. 김 후배가 도우미 좀 하지?" "예? 예~" 이런 연유로 김구 선배와 나는 각자의 삶을 살다 다시 만났다. 어쩌다 춘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김구 선배는 몇 년 전부터 망막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아오다 점차 시력을 잃었다. 지금은 밝고 어두운 정도만 구분한다. 원래 등산을 좋아했던 김 선배, 마라톤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는데 눈이 멀어 이제는 혼자 트레드밀 위를 뛰는 것뿐이다. 야외 활동을 접은 김 선배는 그 해 동기들의 손에 끌려 나온 홍사마(*마라톤을 사랑하는 홍익사대부고인) 송년회에서 다시 마라톤의 꿈을 키웠다.
▲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경기 출발 전에 ⓒ 김경수
▲ 춘천마라톤대회 코스맵 ⓒ 김경수
14년 만에 다시 춘천을 찾았다. 잔뜩 낀 구름, 서늘한 바람, 가을 향수치곤 음산하기까지 했다. 춘천마라톤 대회장인 의암호 옆 공지천공원 주변은 2만4천 여 명의 출전선수들과 수많은 스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9시, 앞뒤로 꽉 찬 선수들 틈에 끼어 떼밀리듯 앞으로 나아갔다. 박찬규 선배와 병규 후배는 앞에서 주로를 확보하고 진성 후배와 내가 김구 선배를 양 옆에서 호위하며 주로를 밟았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의암댐을 건너 삼악산 입구(10km)를 지났지만 춘천 호반길은 여전히 선수들로 꽉 찼다.
나 또한 김구 선배 만큼이나 홍사마 덕에 고교 동문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내 청춘의 소중한 부분을 잊고 살았다. 어쩌면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너무 먼 길을 돌아 50줄에 들어서야 모교 교정을 다시 밟았다. 그때 나에게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 준 사람이 뒤 늦게 만난 홍사마의 선후배들이다. 내 인생의 단절된 흔적을 치유해준 홍사마를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 선수들 가을 단풍에 젖다 춘천 의암호에서 ⓒ 김경수
▲ 관성의 법칙 달리고 달리고 ⓒ 김경수
오전 11시를 넘겨 신매대교(20km)로 들어섰다. 풀코스의 거의 절반을 온 샘이다. 여럿의 도우미들이 김구 선배의 손목을 번갈아 잡고 달리다 보니 김 선배의 페이스가 다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춘천댐으로 향하는 오르막에서 김구 선배, 도우미 모두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언제부턴가 비치던 빗방울이 빗줄기로 변해 얼굴을 때렸다. 한기를 느끼기는커녕 가을비의 운치가 더해져 선수들의 환호성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나의 두 다리는 여전히 관성의 법칙에 충실했다.
김구 선배는 홍사마를 만나고 나서 다시 마라톤에 도전할 마음을 먹었다. "뛰는 순간만큼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잊게 해 주겠다."는 동문들의 말에 이끌렸다. 홍사마 운영진은 약속대로 시력을 잃고 세 번째 마라톤에 도전하는 김구 선배를 위해 회원 4명을 붙였다. 사막과 오지 레이스 경험이 있는 내가 김 선배와 끈으로 팔을 묶었다. 도우미 4명은 풀코스를 3~4시간 정도에 주파하지만, 오늘은 김 선배의 수준에 맞춰 5시간에 완주하도록 페이스를 늦췄다.
▲ 의암호 붕어섬을 품다 ⓒ 김경수
▲ 선수들의 역주 춘천에서 ⓒ 김경수
주로에 선지 4시간을 훌쩍 넘겨 춘천 시내(35km)로 들어섰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김구 선배의 고개가 자주 뒤로 젖혀졌다. 그래도 도우미와 보조를 맞추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선배의 투혼에 고개가 숙여졌다. 나도 이제껏 없던 버릇이 생겼다. '이제 남을 거리는?' 빗줄기는 잦아들었지만 노면은 여전히 질컥했다. 소양2교를 넘어섰다. 인도에는 먼저 도착한 선수들과 응원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이제 40km 지점 통과!'
주로에서 도우미는 레이스의 주인공이 아니다. 도우미는 오직 시각장애인의 분신이어야 하고, 한 순간도 떨어지면 안 되는 그림자여야 한다. 시작장애인을 온전히 책임지고 보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도우미는 지면이 고른 길은 시각장애인에게 양보해야한다. 시각장애인이 지루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도우미는 자신보다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어느덧 완주의 기미가 선명해 지기 시작했다. 에너지는 진즉 방전됐지만 김구 선배, 도우미 모두 마지막 안간힘을 쏟았다.
▲ 우리는 하나! 자랑스러운 홍사마 회원들 ⓒ 김경수
▲ 선배님 우리는 해냈습니다 결승선에서 ⓒ 김경수
5시간 1분 16초! 우리는 결승선 앞에서 기다리던 9명의 홍사마 회원들과 한 무리가 되어 결승선을 넘어섰다. 그리고 서로 간 격정의 포옹으로 그간의 노고를 위로받았다. 도우미로 나선 4명 선후배 모두 풀코스 기록과 연배는 다르지만 김구 선배와 42.195km 장도에 섰던 5시간만큼은 하나가 되었다. 모두의 기록은 같다. 우리는 그를 위해 달렸고, 그는 우리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겼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김구 선배는 '동창들 덕분에 꽃가마 타고 달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완주 후 그간의 고난을 씻고 다시 쓴 감흥이 녹아난 한 마디였으리라. 어쩌다 춘천을 갔지만 우리는 춘천의 만추보다 더 멋진 아름다운 전설을 남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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