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화여대 체대입시 실패생이었습니다."

이화여대 체대입시 ‘실패생’은 ‘청년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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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newlate)등록 2017.02.28 11:18
나는 이화여대 체대 입시 실패생이었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원래 내길이 아니었기에' 실패한 것이라는 위안으로 다른 학교, 다른 학과를 졸업하였다.

잊고 있던 나의 체대 입시 실패 경험이 떠오른 것은, 최순실씨의 자식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체육대학 입학부정 의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매일 운동으로 지친 몸으로 밤을 세워가며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운동으로 손에 피가나고, 무릎이 망가지고, 결국엔 입시 실패로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실패의 기억들이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 쟤한테는 참 쉬웠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굴욕감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다는 타당한 명제는 저들의 시스템 하에서는 간단히 무시되고 있었다. '내가 좀 더 잘 했어야 하는데,' '내가 좀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같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우리들을 비웃듯, 누군가는 혼자 출전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2위를 한 경기에서는 관계자를 대통령이 경질시키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딸 미안해, 엄마가 최순실이 아니라서..."

그리고, 그것은 나만이 겪은 굴욕감과 무력감이 아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뉴스를 보며 '딸, 미안해. 엄마가 최순실이 아니라서 잘 못해주고...'라고 말했다. 정유라씨의 '돈도 실력이야. 부모를 원망하라'던 말에 상처를 받았던 것은 나와 같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 부모들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 '미안해'야 할 것은 우리들이 아니다.

문제는 정유라씨와 최순실씨, 박근혜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재벌, 기득권 정치세력들, 정부 고위관료직까지 모두 한패가 되어 권력을 남용하였고, 각자의 이득을 위해 움직여 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불순'한 '종북'세력이 되어 '그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숨죽여야 했다.

노력한 내가, 청년들이 겪는 좌절감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밖으로 나서기로 했고, '미안함이 없는 사회'를 위해 이제는 그들이 숨죽여야 할 차례라는 생각으로 청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블랙리스트 우리가 만들기로 한 날, 1차 선정위원 회의 ⓒ 김영욱


그래서 시작한 '우리들이 만든 블랙리스트'

그리고 시작한 것이 '청년이 만드는 블랙리스트'였다. 박근혜 정부를 비롯하여 이 사회구조를 공고히 만든 사람과 정책들, 기관들을 적어내었다. 온라인과 광장에서 시민들은 호응하여 열띈 마음으로 리스트를 함께 만들어 주었다.

광장에서 '우리가 쓰는 블랙리스트' 광장에서 시민들의 열띈 참여로 블랙리스트가 쓰여지고 있다 ⓒ 김영욱


한 달여 기간동안 '우리들이' 함께 만들어 나간 과정이 있었다.
1월 25일부터 2월 3일까지 5백여명의 시민들이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해주었다. 그리고 6회의 청년 선정위원 모임으로 블랙리스트 상위 10명을 추리는 과정이 있었다. 2월 4일부터 2월 9일까지 1,341명의 투표로 상위 블랙리스트 TOP4를 선정할 수 있었다. 블랙리스트 TOP4에 대한 시상도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서 플랜카드를 만들어 시상식을 가졌다.

블랙리스트 3위에 대통령 코스프레상에 입상하신 황교안 대행 시상 플랜카드에는 많은 시민들이 '축하'의 말들을 적어주었다. ⓒ 김영욱


김기춘과 이재용의 구속, 그래도 바로 오지 않는 세세상

청년들이 만드는 블랙리스트 1호로 공작정치를 일삼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몰래 정했던 김기춘, 2호로 청년과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도 뒷배를 불렸던 이재용이 뽑혔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가고 피켓팅을 했다.

김기춘이 블랙리스트로 뽑히고, 특검 조사에 찾아간 피켓팅 결국 이 다음날 김기춘이 구속되었다 ⓒ 유지연


이재용을 구속하라 ⓒ 김영욱


김기춘과 이재용은 구속되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노력으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들의 블랙리스트' 활동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조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70여명의 블랙리스트는 앞으로 새세상을 만들어갈 우리의 기억과 실천으로 청산되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변화의 힘들을 믿고 기억하는 것. 앞으로 '우리들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갈 세세상일 것이다.

더 많은 활동보기: https://www.facebook.com/youthblack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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