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필자의 당시 나이 26세, 오로지 젊음과 열정 하나만 믿고 사회에 몸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것은 실패라는 상처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여행이 아닌 도피에 가까운 여행이 시작되었고 길 위에서의 다양한 어울림 속에 저 스스로도 치유하지 못한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직은 세상을 담아내기엔 조금 부족한 나이가 아닐까 하는 어린 10대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들 또한 여행이 주는 의미를 배우길 바랐고 또 여행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작은 용기의 시작이 되길 바랐습니다. 약 8년이 흐르는 현재까지도 청소년들과 세상에 나아가 길 위를 걸으며 온몸으로 부딪혀 배우고 있습니다.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제 지난 삶의 일부분들을 이 연재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기자 말
▲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순례길 늠름한 모습으로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 ⓒ 황준승
길 위에 모인 사춘기
2015년 어느 가을, 국제 NGO 생명누리에서 주관하는 인디고 청소년 여행학교를 통해 10명 남짓 사춘기들을 만났다.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인 공통점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것과 '길 위의 학교'를 통해 또 다른 배움과 성장을 꿈꾸는 것.
학업을 중단한 채 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난 이유는 개인마다 다른 사정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800km라는 고난의 길에 동행하게 된 이유 역시 달랐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참가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현재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일탈을 꿈꾸는 친구들이 있고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부모님의 권유로 참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나의 가을은 전혀 일관성 없는 아이들이 모인 채 어떻게 50일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다.
▲ 합숙 모임 여행 준비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 황준승
꿈을 향한 작은 발걸음
50일간의 여행, 더군다나 800km를 걷는 까미노 순례길은 결코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참가를 결심한 청소년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합숙 모임 프로그램을 통해 여행에 필요한 사전 준비 단계를 거치게 된다. 높은 체력을 요구하는 여행길인 만큼 사전에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체력훈련, 걷는 방법, 안전교육은 물론이며 고난의 길을 걷는 동안 자신과 만나 대화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약 일주일간의 합숙 모임을 통해 여행 안에서의 작은 삶의 변화를 꿈꾸기 시작한다.
▲ 순례 중 고민에 빠져있는 학생 ⓒ 황준승
엄마는 왜 나를 여기에 보냈을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된 순례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단했다. 젊음과 패기 하나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갈수록 다리는 말이 듣지 않았고 발 또한 물집으로 인해 성한 곳이 없었다.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아픔에 기분 또한 좋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도 더 이상 반갑지 않다. 여행 전 설레며 구입한 멋진 배낭과 옷가지들도 의미가 없어지고 두 손에 쥐어진 일정표 또한 꼴 뵈기가 싫어진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제일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다. 그립고 보고 싶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여기에 보낸 엄마가 갑자기 미워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길만 걸어도 모자랄 젊음인데 막상 거울에 비친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게 비틀어진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또 다른 '시작'이라는 엄마의 작은 선물을...
▲ 인디고 여행학교 보고회 참가자 유승오의 어머님께서 소감문을 발표하고 있다. ⓒ 황준승
나는 몸으로 엄마는 책으로
여행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히는 청소년들... 그 뒤에는 책을 통해 아이들의 발자국을 쫓는 엄마들이 있다. 기분 좋고 풍성한 여행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록 현지에서 아이들의 고달픔을 함께 나누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이 다녀온 글이나 책을 통해 그 아픔을 느끼며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 끝이 나면 보고회라는 작은 모임을 통해 다녀온 청소년들과 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들을 함께 나눈다. 아이들이 여행을 하며 느낀 소감뿐만 아니라 아이가 없는 동안의 그 공허함을 버텨낸 부모들의 허심 탄해한 속마음 또한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온몸을 부딪혀 또 다른 세상을 통해 성장하는 동안 기다림 속의 부모들은 지난 기억들을 되짚어 본다. 그간 첨예하게만 대립하던 아이와의 장면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마음과는 다르게 강요만 하던, 부모로서의 자질을 한번 더 되새겨 보기도 하며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새로운 다짐과 반성의 반복 속에 부모 또한 성장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고회 인터뷰를 통해 이 여행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크고 감동적인지를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 800km 완주했어요!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순례길 완주 수료증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 황준승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
글을 마치기에 앞서 800km의 고단한 순례를 두 다리로 버텨낸 사춘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50일간 함께 하며 나 역시 새로운 10대들의 문화 속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함께 했기에 버틸 수 있었고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더 아름다웠던 이 시간들이 앞으로의 삶에 일어설 수 있는 작은 거름이 되길 바라고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이 사회의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꽃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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