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5,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심상정'

우리 가족이 모두 심상정으로 돌아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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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daresay)등록 2017.05.04 18:05

춘천시민들에게 지지 부탁하는 심상정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명동길에서 유세를 하며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부모님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다. 평소에는 민주당 과실을 욕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에 한 표를 행사해왔다. 이와 달리, 나는 줄곧 진보정당을 지지해왔다. 그 때문에 선거 때마다 우리 가족은 '사표론'과 '민주당의 노선 비판'을 두고 논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다. 지난겨울 손수 손팻말을 만들고 촛불 집회에 만근한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양당 구도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때 열성 노사모 회원이었던 어머니는 '정권교체는 기정사실이니 안심하고 심상정에게 투표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유로 심상정 지지에 뜻을 모았다. 매일 야근을 반복하는 여동생 역시 심상정 말곤 찍을 사람이 없어 보인단다. 저마다 이유가 다르지만, 우리 가족이 최초로 선거 방침을 통일한 셈이다.

확실히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압도적 당선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남은 5일, 이를 뒤집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바른정당 국회의원 12명이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을 선언했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이 집단 행동이 발휘할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단일화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홍준표와 단일화할 가능성은 미미하다. 일단 박근혜 정권에 책임이 있는 자유한국당 측과 후보 단일화를 할 명분을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섣부른 판단은 기존의 호남 지지층마저 빠져나가게 할 위험이 크다. 개헌을 빌미로 한 반문연대 역시 모멘텀을 상실했다. 대선 패배 후 정치적 활로의 모색을 고민한다면, 그런 어리석은 판단을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은 완전히 끝난 게임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마지막 관전 포인트가 남아있다.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심상정이 '얼마나 득표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대선 레이스 후반에 접어든 4월 말 이후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인상적이다.

한국리서치가 4월 29~30일 조사하고,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심 후보는 지지율 11.4%를 기록했다(EBS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조사, 유선(25.8%)무선(74.2%) RDD 전화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응답률 17.6%,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상승세가 보인다. 2002년 대선 당시 진보정당 소속 권영길 후보는 3.9% 득표율을 보인 바 있다.

심상정의 막판 스퍼트는 상징적인 바가 있다. 첫째, 흔히 '정치 무관심층'으로 분류되던 20대에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심상정이 TV토론에서 보인 발군의 실력이 지지율 상승의 주된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여성들의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가부장제와 성차별, 청년실업의 한파를 맨몸으로 겪고 있는 20~30대 여성들의 호응이 높다. 최근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여성혐오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셋째, 다른 연령대의 방향 전환도 감지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양당 구도에 대한 대중적 환멸 역시 심상정과 정의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넷째,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 직면한 오늘, 미국과 영국, 스페인 등 세계 각국에서 목격할 수 있는 기존 세력에 대한 환멸과 대안 세력에 대한 열망이 '부족하나마' 반영된 듯하다.

효과 못 볼 민주당의 '사표론'

성소수자 눈물 닦아주는 심상정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앞에서 연설을 마친 뒤 성신여대 성소수자 모임(Qrystal) 회원들을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줬다. 이들은 심 후보가 연설하는 동안 ‘1분 감사합니다’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심 후보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심 후보는 지난 25일 생방송 TV토론에서 ‘1분 찬스’를 사용하며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는 이성애자이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중요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 권우성


심상정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민주당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 2일,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자 민주당 원내대표인 우상호는 "이번에는 정권교체에 집중"하고 "정의당 지지는 다음에"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문재인이 압도적 1위를 달리는 상황에서 보수정당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진보정당 후보를 노리고 있다'고 비판받았다.

사실 민주당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중'을 말해왔다. 나는 스무 살 첫 투표를 한 2002년 이래 15년간, 민주당 세력과 열성 지지자들에게 '나중에'란 말을 들었다. 선거 때는 진보정당 후보에게, 속칭 '비정규직양산법'으로 불리던 파견법 개정할 땐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이번엔 보수기독교 득표를 위해 성소수자들에게.

지난해 10월 28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국민들이 촛불을 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우상호 원내대표는 "정의당처럼 탄핵과 하야 움직임을 같이 갈 생각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나중에민주당'이란 말도 나온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의 으름장은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실망과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촛불이 만든 대선이다. 문재인 후보가 사드 배치에 대해서 '다음 정권에서 결정'이라는 입장만 내놓고, 자유한국당과 협치를 이야기하는 작금의 상황은 촛불의 열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기 정권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경제와 국제 정세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소한 상상력, '15퍼센트' 득표의 의미

그래서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완벽한 진보정치인은 아닐지언정, 그가 15% 이상 득표하는 건 미래의 가능성과 사회운동의 활로를 조금 더 여는 일이다. 득표수만큼 가능성은 더 넓게 열릴 것이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대한민국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절박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선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총체적 정치 위기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한다. 진보정당과 사회운동, 촛불,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가 유의미한 지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덧붙여, 문재인의 압도적 당선보다 홍준표를 누르는 심상정의 득표가 보다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홍준표 후보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 노동조합을 향한 강경 발언 등은 대부분 심상정 후보의 의견과 대치된다. 홍준표 후보가 2위로 선거를 마무리한다면 패배보다는 승리한 선거로 평가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심상정의 15% 이상 득표만으로 진보 정당의 부활을 점치긴 어려울 수 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20대 여성, 노동자 지지자라는 '확인된 가능성'을 토대로 혁신을 재개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 운동과 접점을 늘려 함께 성장해야 한다. 위기의 자본주의를 넘어 근본적 대안과 전망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기 정권의 잘못을 당당하게 비판하고, 차별성도 높여야 한다. 그래야 15% 지지를 넘어 진정한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최근 심상정 지지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정치적 대안'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심상정'이라는 매개를 통해 방향타를 수정한 사람도 있고,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수십 년 간 반복된 'A냐 B냐', '수구보수냐 자유주의냐'가 아니라, '제3항'을 떠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소한 상상력, 우리 가족의 오랜 논쟁마저 불식시킨 새로운 판단 기준이 희망의 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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